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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25. 2019

기자와 취재원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는 퍽 미묘하다. 한 타사 기자가 "내가 그 사람과는 정말 아삼육이야. 그 사람 잘 되어야해"라고 하길래 직접 확인해봤더니 정작 그냥 수많은 친한 기자 가운데 원 오브뎀 인 경우가 많았다. 짝사랑 일까.. 나도 진심을 다했는데 비즈니스였던 경험이 왕왕 있다. 일로 만났으나 친근감이 생기고, 친구로 착각하니 이따금 선을 넘고 상처받고 더욱 소원해지는.. 어렵디 어려운 영업의 나날!


확실한 건 있다. 모두가 친한 사람에겐 다가가기 꺼려진다. 회사 선배와 친한 취재원은 대뜸 "니네 선배 누구누구 잘 있느냐"고 한다. 동질감을 주어 어색함을 혁파하기 위한 아이스브레이킹의 요법인데 바로 그를 목록에서 손절하게 된다. 몇년간 공들여 취재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기사 하나로 모래성처럼 관계가 산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허망하다. 1진과 2진이 사람을 사귀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협력하되 적절한 긴장관계가 있는게 좋은 것 같은데,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옛날과 다르게 기자는 더 이상 갑이 아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기자가 취재원을 평가하듯 취재원도 기자를 평가한다. 일머리가 좋고, 출입처에 빠삭하며, 아는 이가 많고, 회사 내에서도 인정 받는지 아닌지를 물밑에서 확인한다. 한마디 한마디가 다 평가고, 관찰이다.


산업부 출입할 때 한 건설사 신년회를 갔는데 어디 매체인지도 모르는 기자 아재가 와서 "뭐 이런 싼거를 시켰어"라고 했다. 내가 대신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이제는 좀 이해가 간다. 아직도 소리를 지르고, 쎈 척하고, 갑인 듯 행세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자신을 감추기 위한 거다. 그냥 아무도 대접해주지 않고 본인도 실력이 없고, 아는 이도 없고 변변치 못한 기자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측은함이다. 진짜 선수는 시끄럽지 않다고 현재 중국에 계신 한 선배에게 배웠다.


일반 친구는 점점 사라지고 취재원들과의 만남이 주가 되면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어떨때는 적이고, 또 풀어져서 친해지고 힘들때 도와줬다가 잘나갈때 또 상처를 주는 이 복잡한 기자와 취재원의 세계에서 과연 나는 어떤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을까. 아 물론, 2년 전쯤 한 취재원이 술자리에서 타사 기자에게 내 험담을 하는 걸 몰래 들었다. '젊은 놈이 여우새끼 같다'고 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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