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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May 20. 2020

영원하라, 소장파


민주당 출입기자 여럿을 만났다. 김해영이 21대 총선에서 떨어진 것에 대해 모두가 아쉽다고 했다. 일부는 울컥한 듯 눈물도 보였다. 이렇게 떨어질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친 언론 정치인이라 그런것 같지 않았다. 그가 보인 순수함, 뚝심, 눈치보지 않고 할말은 하는 소신에 반했으리라. 난 그를 잘 모른다. 다만 많은 기자와 국회 당직자, 보좌관, 심지어 청와대 사람들까지 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걸 보고 어떤 분일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의 발언과 행동에는 항상 '소장파'라는 딱지가 붙었다. 윤미향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데도 민주당은 함구 중이다.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사실 관계 파악이 먼저"라고 발을 뺐다. 정의기억연대 회계 사안이야 행정안전부 등이 들여본다해도 경기 안성시 위안부 쉼터 매매 문제, 우간다 '김복동 센터' 모금 문제 등 의혹이 넘쳐나는데 제대로 된 해명이나 조사 계획을 내지 않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커가는데 당 소속 당선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최고위에서도 이해찬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이 사안이 없는 일인양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눈치다. 180석 거대 여당의 비겁한 모습이다.


윤미향을 거론한 건 김해영이 유일했다. 그는 최고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미향 당선인 의혹관련해 이 사안 심각하게보는 국민 많아지고 있다. 이 의혹에 대해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릴게 아니다. 신속하게 진상을 파악해 그 결과에 따른 적합한 판단과 조치가 있어야된다. 윤미향 당선인이 과거 개인 계좌로 받은 기부금에 대해 즉시 거래내역을 공개하고 사용내역 검증이 필요하다. 기부금 의혹이 국민적 사안이 된만큼 의혹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또 진상 파악을 위한 윤 당선인의 성실한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모두가 침묵할 때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초선의 패기 혹은 곧 의원회관을 떠나야할 낙선자의 용기라고 치부하기엔 상식에 기초한 그의 발언이 너무나 고맙다.


그는 선거에서 떨어진 지 5일째 되던 날 새로 들어설 국회와 21대 국회의원에게 조언했다. "99명이 '예'라고 해도 잘못된 일에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수(選數)에 주눅들지 말고 본인의 생각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국회의원이 도리입니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침묵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를 강하게 견제하고, 사회적 약자를 낮은 자세로 섬기는 국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조목조목 맞는 얘기다. 현실은 정반대다. 조국 국면을 비롯한 모든 사안에서 당의 이익을 우선해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는 국회의원이 즐비한 가운데 김해영의 소신이 유독 빛난다. 그래서 그는 당내에서 미움을 많이 받았다. '미래통합당으로 가라'는 당원들도 많았다. 그는 여러 언론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소수로서 사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김해영은 멈추지 않았다. 당을 너무 사랑해서 쓴소리를 했다. 건전한 비판도 해당 행위로 보고 미워하는 패거리 문화가 지배한 요즘 김해영의 고군분투가 아쉽고 안타깝다.


김해영은 민주당 소속 의원중에서도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언급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부산 출신 청년 정치인임에도 그랬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과 찍은 사진으로 선거 공약집을 도배하는 것과 달리 그는 유명인에 기대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다른 후보들이나 의원들이 '혼자 잘난척 한다'고 시기하고 질투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의 소신을 밝히고자 했던 김해영은 곧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다. 그가 뱃지를 내려놓고서도 우리 정치를 위해 많은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민주당 내 소장파 그룹은 더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낙천한 금태섭 의원이 있다. 박용진 조응천 의원도 소장파로 꼽힌다. 금태섭은 '조국 측근'으로 불리는 김남국 당선인에 일침을 가했다. 금태섭은 총선 전 "조국수호 총선으로 (다가올 총선을) 치를 순 없다. 조국수호가 이슈화되는 선거는 미래를 바라보는 선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박용진은 정봉주, 김의겸, 문석균을 비판했다. 그는 "당의 균형감각이 왜 깁자기 흔들리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은 언제나 국민의 민심을 살피고 포용해 온 정당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행여나 국민들에게 오만과 독선, 아집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일은 용납돼선 안 된다"고 했다. 조응천 역시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사퇴가 올바른 처신"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김종민 의원 등이 조국 투사를 자처했을 때 나온 워딩들이다. 당원들은 반발했고 금태섭 의원 전화기로 수천개의 욕 문자가 도착했다. 다들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 것이다. 다만 누군가는 당을 위해 해야 할 소리였고, 감내했다. 그 결과 금태섭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영혼을 버리고 당을 따르지 않아 생긴 결과였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 자율성이 생명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한 청와대 인사가 민주당과 청와대 분위기를 설명한 적이 있다. 신기한 것이 비서관이나 행정관, 혹은 당 보좌관이나 비서관등이 서로를 '형 동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386 세대 암울했던 시절 운동을 같이 했거나, 당 비서로 같이 시작했거나 하는 인물들이 당과 청와대, 혹은 산하기관에 가득하다. 그러니 중간에 합류했거나 처음보거나 하는 이들을 멀리하고 미묘하게 따돌린다는 거였다. 정말 맞는 얘기인게 취재원들과 얘기하다 다른 사람 얘기가 나오면 '아 XX형? 나랑 ~~활동 같이 했어' '그 형 참 좋은사람' 하다가도 외부 영입인사 가지고선 '평가가 별로 안좋던데'라는 말부터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어떻게 이룬 정권인데, 어떻게 따낸 180석인데, 감히 네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딴죽을 걸어? 하는 심리다. 그러다보니 실수를 해도 아이구 형님 봐주시오, 아이고 아우님 살펴드려야지 하고 넘어간다. 오히려 정적보다도 우리 편 내 소신파를 더 미워하고 핍박하고 왕따시키고 아예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를 대라며 끊임없이 사상교육을 한다. 날것의 여론과는 점점 멀어지고 인의장막이 하늘끝까지 올라가서 결국 본인들, 혹은 본인이 속한 세력을 위한 정치를 한다. 소장파는 이런 폭주기관차를 멈추고 국민의 여론을 주입하는 소중한 존재다.





누구나 주류에 들고싶어 한다. 인생이 편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비슷하다. 당의 논리에 앞장서면 공천 받기도 쉬워지고 지지자도 늘어난다. 그러니 이은재 장제원 의원처럼 오바를 하게 된다. 유승민은 보수적 가치를 지닌 의원이지만 여당에서도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꼽힌다. 기자들도 유승민 의원을 인정하는 이가 많다. 여당의 합리적 주장에 대해서는 동조하고 함께 힘 합칠건 합치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두고 통합당 내부에선 "여당 스파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세력 논리,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잡아먹고 현안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빅브라더의 감시에 놓여있는 1984 시대처럼 입을 다문다. 소장파의 용기는 그래서 더 대단하다.


21대 국회에도 모두가 예스할때 노를 외칠 수 있는 이가 많아지길 기도한다. 비록 '형 동생'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거리를 두며 당 보다는 국민을 위해 뛰는 소신있는 의원들이 범람하길 바란다. 소장파에서 소장은 '어리고 씩씩하다'는 뜻이다. 윤미향 사태는 참 좋은 기회다. 21대 국회 첫 소장파들이 비겁한 민주당 지도부를 규탄하고 김해영처럼 소신과 국민적 여론에 근거해 제대로된 진상조사를 당에 요구해보자. 젊고 똑똑한 우리 초선 의원님들께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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