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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May 12. 2020

정의연이 이용수 할머니를 설득하려면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어제 기자회견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분들이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위안부 문제를 접하는지 보게 됐다. 참으로 참담하다. 지난 30년간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일궈낸 싸워온 세계사적 인권운동사를 이런식으로 훼손할 수 있을까. 기자들이 그 역사를 알고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 뭐하고 있었을까 여러분들은. 책 한 줄 읽었을까? 위안부 문제 해결에 번번이 걸림돌이 됐던 가장 큰 방해세력과 동조해 이 문제를 폄훼 훼손하고 피해자와 활동가 분열하고, 국내 모든 운동가와 전 세계 시민 마음에 상처를 입힌 기자 여러분이 반성하시길 바란다"고.


정의연의 기금 운용 문제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께서 제기했다. 누군가 부추겼을수도 있겠다만 할머니가 직접 언론에 밝힌 내용이다. "수요집회에 학생들 돈을 걷었는데 한번도 돈을 받은 적 없다"는 거였다. 핵심은 재정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거였는데 정의연 기자회견은 "우리는 일제식민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왜이렇게 우리를 부당하게 몰아가냐. 언론 너네는 뭐했냐"고 징징대는 걸로 밖에 안 들렸다. 정의연은 결국 세부적인 회계상태는 공개하지도 않았다. "세상 어느 NGO가 활동내역을 낱낱히 공개하고, 세부 내용을 공개하느냐”고만 했다. 의혹은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논란만 더 키웠다.  


기부금 등을 모두 할머니들께 드리라는 게 아니다. 당연히 재단도 사업이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고,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면 투명한 공개로 의혹을 해소하는 게 먼저 아닌가. '우리 너무 힘들었어. 근데 너네는 뭐했어' 식의 본질을 벗어난 얘기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자꾸 시민단체에 몸 담았거나, 현재 몸담은 교수들 중심으로 '시민단체 재정, 회계는 좀 달라야 한다'는 식의 실드가 횡행하고 있는데 왜 달라야 합니까? 위안부 할머니들 잘 케어해달라고 낸 성금과 기부금인데 어디서 감히 국민에게 '너희가 잘 모르는게 있다' '알 필요 없다'고 가르치려 들어.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오늘 또 MBC 라디오 나와서 또 제대로 된 해명이 아니고 울분만 토하다 가셨다. "시민단체 운영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시민단체가 의혹에 몰려서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다른 시민단체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도 했다.


이 워딩으로 비로소 명확해졌다. 우리나라 시민단체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어 왔는지. 이나영 이사장이 언급한 '외부 회계감사가 초래할 악영향'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만 시민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로 들린다. 근데 그 가치가 정의기억연대가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케어해야 할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의혹 제기보다 우선하는가. 정의연 혹은 시민단체, 또 그 계열 분들이 자꾸 누군가 할머니를 부추겼다는 식 또는 할머니의 기억력을 탓하는 뉘앙스로 얘기하는 게 화가 난다. 할머니가 주체적으로 나서서 이런 의혹을 내지 않았을거라는 폭력적인 객체화 시도가 짜증났다.  


자꾸 인원과 여건 부족을 들먹이며 본인들의 실수는 축소하고 국세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설익고도 허접한 자료 가지고 "이미 공개했다. 기자들 공부부터 하라"고 정신승리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


윤미향 당선인 가족에 대한 신상털기 등은 분명 무리한 구석이 있다. 보수언론들이 신난 것도 맞다. 다만 본인들의 흠결을 자꾸 적폐세력 혹은 친일세력의 음모라고 치환하는 작태가 황당하다. 일반 국민들 상당수도 정의연 의혹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똑똑한 국민들이다. 언론의 선동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필부들도 정의연이 말하는 '시민단체 운영을 모르거나, 윤 당선인의 국회입성을 두려워하는 친일파 혹은 토착왜구'인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선인데 왜 별것도 아닌걸로 꼬투리를 잡느냐 하는 오만이 정의연을 넘어 시민단체 전반과 일부 민주당 의원의 뇌리에 깊숙하게 뿌리내린 것 같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회와 역사를 위해 노력해 오신 활동가들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언제까지 관습에 젖어서 세련되게 조직을 운영하지 못하고 이를 지적하면 "너네는 뭐했느냐"고 할 건가. 정치 혹은 이데올로기 반대파의 더럽고 추잡한 음모에 맞서싸우겠다고 정신승리하기 전에 대다수 일반인의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부터 풀어주시라. 외부 회계감사는 굴복이 아니고 보수언론 등에게 짜릿하게 한방 먹일 기회다. 보다 떳떳하게 이용수 할머니와 화해할 찬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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