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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May 22. 2020

한겨레의 1면 사과문


한겨레가 22일 자 신문 1면과 2면에 오보 사과문을 냈다. 내용을 일단 옮겨본다.




<한겨레>는 2019년 10월 11일 치 1면과 온라인에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 검찰, ‘윤중천 진술’ 덮었다’는 제목 아래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에 들러 접대를 받았다는 윤 씨의 진술이 나왔으나 추가 조사 없이 마무리”됐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주간지 <한겨레 21> 1283호(10월 21일 치)도 ‘윤중천 “별장에서 윤석열 접대했다”’는 제목 아래 표지이야기로 같은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470926


이 기사의 취지는 윤중천 씨의 발언이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조사보고서에 적혀 있으나, 이를 넘겨받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 검찰 수사단’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차례’ ‘접대’ 등 보고서에 없는 단어를 기사와 제목에서 사용하고, 신문 1면 머리기사와 주간지 표지이야기로 비중 있게 보도함으로써, 윤 총장이 별장에서 여러 차례 접대를 받았는지 여부에 독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보도 뒤 여러 달이 지났지만 한겨레는 윤석열 총장의 별장 접대 의혹에 대해 증거나 증언에 토대를 둔 후속 보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책임 있는 언론을 지향하는 한겨레는 이 기사의 정확성을 스스로 평가하고, 취재보도 과정의 문제점도 살펴 독자에게 투명하게 알리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4월 초 구성된 ‘윤석열 관련 보도 조사 티에프’(팀장 백기철 편집인)는 한겨레가 언론활동의 기준으로 삼는 취재보도준칙에 비춰, 이 기사가 사실 확인이 불충분하고, 과장된 표현을 담은 보도라 판단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한 점에 대해 독자와 윤 총장께 사과드립니다.


보도 경위


한겨레 21은 윤석열 총장이 법무부 과거사위 보고서에 언급돼 있다는 정보를 법조계 주변 복수의 취재원에게 확인해 기사화를 결정했습니다. 기사의 중요도를 고려해 한겨레 신문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보도의 목적은 검찰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총장의 공적 지위에 주목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의 핵심 인물 입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고, 이를 담은 과거사위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점은 기사에 밝혔듯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보도가 나간 뒤 오보 또는 과장보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보고서에 그런 발언이 기술돼 있다는 사실을 넘어, 윤석열 총장과 윤중천 씨가 실제 유착 관계인지에 독자들이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보도의 문제점


먼저, 사실 확인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도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언론은 취재원이 어떤 말을 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말의 내용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확인해야 합니다. 한겨레는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등으로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 근거로 윤중천 씨의 발언이 과거사위 보고서에 짧게 언급됐다는 것 외에 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수감 중인 윤중천 씨를 접촉하거나 윤석열 총장에게 직접 확인하지 못함으로써, 보도 뒤 윤중천 씨가 “윤석열 총장을 안다고 한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을 때 한겨레는 이를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표현이 부적절했습니다. 취재원에게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내용임에도 윤중천 씨에게 들은 것처럼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윤중천 “윤석열 별장에서 접대했다”’와 같이 인용 형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기사 본문에서도 “강원도 원주 소재 윤 씨 별장에서 윤 총장이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진술도 받아냈다”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보고서에 기술된 윤 씨의 발언은 “윤석열 검사장은 ○○○ 소개로 알고 지냈는데, 원주 별장에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였습니다. 한겨레가 제목과 기사에서 쓴 ‘수차례’, ‘접대’ 같은 단어가 없었고, “왔다”가 아니라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라고 모호하게 기술돼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겨레 뉴스룸의 게이트키핑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더 시간을 두고 반론도 충실히 받고 물증도 확보한 뒤 보도해야 했으나, 편집회의 등에서 충분한 토론 없이 당일 오후에 발제된 기사가 다음날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나갔습니다. 사후 대응도 원칙을 벗어났습니다. 독자의 궁금증에 후속 보도로 답하지 못할 상황이면 보도의 문제점을 신속히 설명하고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독자에 대한 약속


한겨레는 최근 취재보도준칙 등을 재정비하고 신뢰받는 언론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언론은 항상 오보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신뢰받는 언론과 그렇지 못한 곳이 갈립니다. 지난 18일 한겨레신문 지령 1만 호를 맞아 김현대 발행인은 “보도의 작은 허물이라도 독자와 취재원의 입장에서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부터 실천”해 한겨레가 ‘신뢰의 연결점’이 되겠다고 독자에게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한겨레는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취재보도의 원칙을 체화해 가겠습니다. 사실 확인과 게이트키핑의 규율을 재정비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진실 보도에 최선을 다하는 언론이 되겠습니다.




전에 글 (https://brunch.co.kr/@highstem/61)에서도 썼지만 기자에게 오보의 위험은 항상 있다. 이름이나 지명, 숫자와 철자를 틀리는 오보는 노력하면 갈무리가 된다. 근데 사실관계 오류라는 영역은 너무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런 사회라서 기사에도 빈틈이 생긴다. 그러니 결벽증 걸린 듯이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손가락만 한 빈틈을 메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한쪽 말만 듣지 말고 상대방 해명도 들어야 한다. 공격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의 반론과 해명도 듣자. 본인이 비위를 저질러 놓고선 처벌 등에 앙심을 품어 상관이나 기관을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제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장자연 사건에 있어 윤지오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니까 그에게 휘둘리다 수많은 오보가 양산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론사의 생명은 신뢰인데, 오보는 언론의 생명줄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존재다. 평기자부터 데스크, 부장 부국장 편집국장 사장이 특히 민감한 기사는 여러 번 크로스 체크해서 오보를 낼 확률을 0%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이름 있는 언론사는 이런 절차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다. 그래도 오보는 계속해서 나온다. 또 고민하고 다시 돌아보는 것이 맞다.




한겨레의 사과문을 분석해 보자. 분석의 틀은 임양준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의 논문 '한국과 미국 일간신문의 정정보도 기사 비교연구'를 참고했다. 우선 한겨레의 사과문은 '날짜+면+보도 내용+오보 내용+오보를 내게 된 경위+보도 과정의 문제점+독자에 대한 사과+언론사의 다짐'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 언론은 미국 등 다른 국가의 언론사에 비해 사과에 인색하다. 언론사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한겨레는 기사의 문제점을 인정했고 무려 1면에 실었다. 앞서가는 언론사일 수도 있지만 윤석열 별장 접대 오보가 너무나 큰 건이라 사과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사과문을 훑어보니 윤석열 접대 기사는 다분히 취재원 한쪽의 말만 듣고 쓴 기사였던 듯하다. 3명의 취재원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니까 맞는구나 싶어서 지른 것이다. 건설업자 윤 씨는 감옥에 있어서 접촉이 쉽지 않고 윤석열 검찰총장 측에도 해명을 요청했으나 아예 답이 오지 않은 듯하다. 언론사 데스크는 이런 상황에선 기사를 일단 스탑 하고 더 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한겨레는 윤석열에게 직접 얘기는 못 들었고 대검 쪽에 해명을 요구했는데 대검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단독 기사에 대한 반론을 요청하면 대개의 기관들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 기자들은 생각한다. "다 맞는 얘기인데 숨기려고 하는구나. PG(프레스 가이드라인)으로 그냥 하는 말이구나"하고. 그냥 언론중재위원회를 피하기 위해 반론을 의무적으로 넣어주고, 기사는 그대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번 건에서는 대검의 해명이 진실이었던 듯하다.


윤중천 씨 성접대 의혹을 수사했던 여환섭 대구지검장은 한겨레 기사를 두고 이렇게 회상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수사 권고가 넘어올 때 (윤중천) '면담 보고서'가 넘어왔고, 일방적인 청취 보고였다. 거기 한상대·윤갑근 등과 함께 윤석열이란 이름이 언급돼 있긴 했다는 것이다. 과거사위원회 조사위원 중 한 명이 윤중천과 차를 마시면서 작성한 건데 정식 조사 보고서가 아니다. 그냥 소파에 앉아서 '당신 법조인 많이 알지'라고 물어보니까, 자랑삼아 얘기한 것으로 보였다는 거다. 윤중천이 유명한 법조인들을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며 언급한 정황인데 안다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되어 있었다. 과거사위가 며칠 후 윤중천을 불러서 그 부분을 묻는데, 윤중천은 그런 얘기를 한 적 없다고 진술했다. 한마디로 업자 윤중천의 과세 혹은 허세가 보고서에 담겼고 한겨레는 이 부분을 듣고 "아 정말 윤석열이 윤중천과 친했구나" 하고 지른 것이다.



난 아직도 윤석열 기사가 한겨레에 실린 그날을 기억한다. 지난해 10월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스크랩마스터로 조간을 챙기는데 저 기사가 떡하니 1면 탑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와 이거 뭐야 장난 아니네"하고 기사를 천천히 보는데 뭔가 엉성한 기분이 들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만한 기사가 촘촘하지 않았다. 기사가 사실이면 검찰뿐 아니라 청와대 국회 등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런 대단한 기사의 근거가 과거사위 관계자 3명의 워딩 밖에 없었다. 과거사위 보고서를 입수해서 그 가운데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있고 별장 접대와의 연관성을 적시한 부분이 있다면 일단 1차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한겨레처럼 제목을 '윤중천 '윤석열 접대' 발언 뭉갠 검찰'이라고 달 것이 아니고 좀 더 톤을 낮춰서 '과거사위 보고서에서 언급된 윤석열' 정도로 안전하게 잡고 갔으면 됐을 것이다. 설익은 논거에 약간 어깨뽕이 들어가서 너무 위험하게 기사를 지른 게 문제였던 것 같다. 평소 한겨레 신문의 보도 방식과는 어딘가 동떨어져 보였다.


용기를 내서 사과한 것은 잘했다 싶으면서도 '언론은 항상 오보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신뢰받는 언론과 그렇지 못한 곳이 갈린다'는 구절은 조금 낯 뜨겁다. 100% 맞는 말임에도 엄청난 오보를 쓴 언론사가 사과하면서 갖다 붙이기엔 민망하다. 진보 언론계의 핵심 언론사인 한겨레가 오늘 내건 다짐처럼 더욱 신중하게 좋은 기사를 많이 써주길 바란다.

  



한겨레 사과문을 보고 새롭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와 통화하는데, 그분은 보수 쪽 마인드임에도 "한겨레 다시 봤다"라고 했다. 페친인 변호사도 한겨레를 호평했고 기자들 사이에서도 잔잔한 울림이 있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언론이 그만큼 많지 않다. 언중위와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와야지 마지못해 한다. 틀린 건 부끄러워하고 어쩔 수 없어서 사과를 한다.


미국 언론은 좀 다르다. 임양준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의 논문 '한국과 미국 일간신문의 정정보도 기사 비교연구'는 2005년 7월 1일부터 2006년 6월 30일까지 1년간 조선일보와 한겨레,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샌프란시스코 클로니 컬의 정정보도문을 비교했다.


이에 따르면 정정보도 횟수는 미국 일간지가 한국에 비해 4배 많았다. 미국은 주로 철자나 단어의 오류를 정정하는 비율이 많았지만 한국 언론은 사실관계 오류에 따른 정정보도가 미국에 비해 5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미국 언론은 비교적 사소한 실수까지 사과를 하되 기사 자체의 오류라는 부분에서는 실수를 최소화하고 있다. 정정기사 보도 방식에 있어서도 한국은 '날짜+면+보도 내용+오보 내용+정정내용'이 절대다수였다. 사과까지 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고 권력자가 포함된 기사가 많았다.


다만 미국의 경우 보도 내용+날짜+면+오보 유형+오보 원인+오보 내용+정정내용'의 형식이 많았다. 별거 아닌 배치 방식 차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큰 언론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 잘못 쓴 기사의 내용을 먼저 제시하며 매도 먼저 맞는다. 또 오보 유형을 짚으면서 왜 오보를 썼는지를 오보 내용보다 먼저 밝힌다. 독자에게 더 솔직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사실 나는 다른 나라의 언론사를 무조건 신뢰하며 우리네 언론을 공격하거나 하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뉴욕타임스가 정말 대단한 언론이지만 그 시스템을 우리나라 언론사에 그대로 가져온다고 대단한 언론사가 탄생하지 않는다. 기사 숫자와 규모, 미국 사회에서 저명 언론사와 기자가 차지하는 위치, 그 미묘한 위상과 관계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사이에서 선진 언론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뚝 떼놓고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 사실 별로 언론에 관심도 없으면서 '기레기들아 뉴욕타임스 BBC 가디언 좀 닮아봐라'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반성의 생각이 아니라 그냥 웃음부터 난다. 굳이 거를 건 걸러 듣고 내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래도 정정보도와 사과의 영역에선 다른 나라 언론사를 배울 점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굳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도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독자에게 사과하고 변화하겠다고 다짐하고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그런 자세 말이다. 100% 완벽한 인간은 없고 무결한 기자도 없다. 그런 기자들이 쓰는 기사로 먹고사는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이번 한겨레 신문의 1면 사과문이 단순히 이슈에 그치지 말고 한국 언론의 용기를 자극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혼날 건 혼나고 매도 맞고, 향후 더 잘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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