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un 02. 2020

민주당의 '역사왜곡금지법'이 위험한 이유


주요섭의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배운 게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당시 국어 선생님은 옥희의 극중 역할에 대해 몇 번이고 강조했다. 자칫 치정으로 비화할 뻔했던 과부와 전 남편 친구 간의 위험한 ‘로맨스’가 옥희의 순수한 눈망울에 투영돼 보다 천진난만하게 가공됐다는 거다. 아무리 요즘 애들이 영악하다해도 세상 풍파에 찌든 우리 어른들보다야 순진하고 순수하다, 어른들은 그런 애들을 보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너희들도 나름의 맑은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라는 말과 함께 수업이 끝났다. ‘알겠습니다’ 라고 힘차게 대답한 일진 몇 명은 그길로 교실 뒤편 화장실로 몰려가 담배를 맛나게 피웠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는 옥희처럼 어리고 순진한 주인공이 나온다. 히틀러 시대 독일 포로 수용소장을 맡은 군인의 아들이다. 우연히 집밖을 나섰다가 철창너머 유대인 소년을 만나고,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스포 탓에 여기까지).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는데 선혈이 낭자하거나 끔찍한 귀신은 없었지만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을 외국판 옥희의 눈으로 풀어내 ‘네가 생각하는 게 정말 맞는 거냐’라고 되묻는 좋은 영화였다. 정말 마지막 장면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직접 보시라.  


이상한 노릇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근혜 정권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오버랩됐다. 아직 어리고 철없어서 모든 게 궁금하고 이상했던 주인공이 묻는다. “왜 유대인들은 저렇게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쇠창살 안에 갇혀 있어야 하나요?” 어른들이 답한다. “유대인은 해충 같은 존재야. 저들은 악마야.” “유대인은 그래도 돼. 죄를 지었거든.” “유대인은 짐승이야. 짐승은 우리안에 살아야 하지.” 무슨 죄를 지었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세뇌한다.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신성하고, 정당해. 악을 상대로 싸우는 군인들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거든.”


2차 대전 발발 이후 30여년이 흐른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게토’ 기념비 앞에 섰다. 비에 젖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념비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사람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30년 만에 참이 거짓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렇게 역사란 건 획일화 되면 안되는 것이라고 본다. 모두가 인정하는 진실된 역사가 무엇인지, 이를 증명해 줄 객관적이고 훌륭한 사료를 모아 집필할 훌륭한 학자가 누굴지 도저히 모르겠다. 결국 역사책도 인간이 쓰는 거고,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국정 교과서라는 말 자체에 수많은 오류와 획일화가 담겨져 있다.



교육부 출입할 때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교육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금 교과서 대부분이 좌편향 되어있어요. 지금은 모르지만 이 학생들이 크면 다 편향된 사고를 갖는다니까. 이 나라 세운게 산업화 세대 아닙니까. 이런 내용을 좀더 비중을 둬야지, 이러다간 정말 우리나라 큰일나요.” 다른 과목과 달리 역사가 주는 특수성, 분단을 거치며 우리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이데올로기 충돌 등 다양한 조건들을 그는 언급했었다. 과잉됐다는 느낌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피해의식도 느껴졌다. 그가 좌편향의 증거로 제시한 것들은 내가 볼때 일리있는 사료에 의해 작성됐다. 오히려 논리가 부족한 건 당위성과 위기만 강조하는 그의 말이었다.


무산되어서 다행이다만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만드려는 작업을 벌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산발된 역사 논의로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한 명분이었다지만 글쎄. 역사를 누군가의 시각에서 획일화시키려는 노력은 사라져야 할 것 같다고 거듭 생각했다.



아침부터 기사를 쓰는데 더민주 양향자 의원실에서 보낸 보도자료를 보고 소위 깜놀했다. 양 의원은 최근 '역사왜곡금지법'을 대표발의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폄훼하거나 피해자 및 유가족을 이유없이 모욕하는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2회 이상 재범시 곧바로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고, 피해자나 유족의 고소가 없더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조항을 넣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최근 극우 유튜버 등이 5.18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를 폄하하고 하니까 이를 사전에 막자는 건데 뜻은 좋으나 방법이 틀렸다. 역사적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사료 등에 의존해야 하니까 뭔가 발견할 때마다 새로운 학설과 이론이 따라붙는다. 학계의 다른 학파가 이를 증거로 갑론을박을 벌인다. 당연하다. 우리가 그 시절에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함부로 역사적 사실을 입에 올리는가. 세월호만 봐도 마찬가지다. 여러번의 국정조사가 이뤄졌지만 유족들은 아직 진실이 100% 알려지지 않았다고 항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이 역사적 진리인가. 양향자 본인은 뭐가 진리인지 알긴 아는가? 의원 본인과 정부, 혹은 여당이 조물주라 역사적 진실과 사실을 다 알지 못하는 이상 이런 법은 발의해선 안 된다. 다분히 박근혜 시절 국정교과서 제정 움직임과 똑같거나 더 심하게 역사를 쥐고 흔들려는 의도로 밖에 안 보인다.


이미 국회에는 5·18역사왜곡처벌법이 계류돼 있다. 법률적, 역사적 평가가 완료된 5·18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행위를 단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5·18이야 북한에서 넘어온 세력이 저질렀다는 괴소문 등이 많고 상대적으로 관련 연구와 증언들이 많이 쌓였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양향자 씨가 5·18을 넘어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을 거쳐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방대하지만 비루한 법을 내놓은 것은 아마도 21대 국회 1호 법안에 대한 욕심과 세일즈 마인드가 99% 정도는 될 것이다. 비슷한 조항을 담고 있는 법이 병합심사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씨의 법안이 안고있는 문제점 때문에 5·18역사왜곡처벌법까지 단체로 야당의 공격을 받고 통과 안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민주당 사람들의 지적이다. 아휴..



나는 이래서 법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정확히는 법 만드는 국회의원의 역량에 분통이 터진다. 분명 법은 우리네 실생활에 정말 중요하고, 법이 바뀌는 건 정말 큰일이건만 자꾸 아마추어들이 현안이 터질때마다 앞다투어 별 생각없이 법을 내고 이게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해 효력을 발휘했을 때 역효과를 내는 경우를 수도 없이 목도했다. 민식이법을 비롯해 셀 수가 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현실을 잘 모르고, 알면서도 한순간의 여론과 기류에 반응해 법을 사유화하기 때문이다. 법의 중요성을 알고, 법 앞에서 책임을 느끼기는 커녕 너무 쉽고 가볍게 여긴다. 


특히 이번 국회 여당 의원의 경우 거의 금치산자 수준의 야당을 본인의 실력이 아닌, 당 빨로 가볍게 이기고 입성한 사람이 많다. 이들이 이상한 열의를 가지고 역사왜곡금지법 같은 법안들을 쏟아내면서 "아 난 잘하고 있어. 난 국민을 대표해 법을 만드는 헌법기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이럴까봐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겨레의 1면 사과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