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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n 04. 2020

시위의 본질과 방법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가혹 행위로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시위에 참여한 흑인들 사이의 논쟁 장면이 화제가 됐다. 트위터에 올라온 영상을 보는데 가슴이 저릿했다. 시위에 참여한 45세, 31세, 16세의 흑인 남성이 시위의 방법과 왜 시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한국 트위터 이용자 육아러장차장(@jangchajang)이 번역해 한글 자막을 달아 올려놨다. 


     

영상은 시위에 참여한 31세 흑인 남성이 45세 흑인 남성과 논쟁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45세 남성이 “우리식으로 해야돼!” “지금은 다같이 일어서야 한다고! 죽을 각오를 하고!”라고 하자 31세 남성은 “쟤들(트럼프 정부)이 실탄을 퍼부을 모양인데”라며 16세 소년을 데려와 말한다. 그는 16세 소년에게 “지금 이거? 10년 후에 똑같이 또 일어나”라며 “그때 너는 26살인데 10년 후에 너도 내 위치가 될 거라고”라고 말한다. 이어 “니들이 지금 16세에 해야할 일은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며 “왜냐면 지금 어른들이 하는 이 짓은 안 먹히거든. 저 아저씨는 45살인데 아직까지 분노하고 있고, 난 31살 먹었는데 아직 분노 중이고, 넌 16살에 분노하고 있어”라고 한다.


31세 남성은  “이렇게 위험한 길은 너가 가서는 안 될 길이야. 너랑 니 친구들은 다 같은 힘이 있어”라며 “너네들은 제발 더 나은 길을 찾아서 해. 우리 윗세대는 못했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내 아들이 5살이야. 그런데 아직도 이 모양이야”라며 “내가 4년 전에도 시위했거든. 키이스 라몬 스캇 사망사건 때. 이런 똑같은 짓을 매일 밤마다 주구장창”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 지나도 또 이 상태, 또 이 상태. 그런데 바뀌는 게 전혀 없어”라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봐. 그리고 네 몸부터 간수해”라고 한다. 키이스 라몬 스캇 사망사건은 201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흑인 남성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흑인의 부당한 죽음 앞에서 이 세명의 대화를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데 세 명 모두 동의하지만, 방법은 약간씩 다르다. 중년은 폭력을 써서라도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키자고 한다. 낀 세대인 30대는 10대에게 "나도 저 아저씨와 비슷하게 윗세대야. 우리는 바꾸지 못했다"며 시위에 참여하는 대신 이 엿같은 미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라고 한다. 나이가 어리지만 부당함을 느끼고 거리로 나온 젊은 세대와 이를 걱정하며 젊음으로 세상을 바꿀 방법을 찾으라는 낀 세대, 뭐라도 해서 우리의 존재와 요구사항을 알려야 한다는 old 세대가 진심을 내놓고 토론하고 있었다. 나는 동양인임에도 '흑인은 상대적으로 더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한방에 날려주는 광경이었다. 아마도 백인 위주의 영화, 드라마를 자주 접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백인적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세 흑인의 대화는 시위의 양상에도 접목해볼 수 있다. 과격파와 온건파, 그리고 시위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제3의 파다. 한국의 시위를 떠올려보자. 대규모 집회 때마다 적진으로 진격하듯 청와대 진출을 시도한다. 경찰이 차벽으로 막아서면 밧줄로 끌어내고 쇠파이프나 각목 따위로 부순다. 술병과 돌덩이를 집어던지기도 한다. 물대포와 최루액을 난사하면 시위대는 더 과격해진다. 양측에 많은 부상자가 나온다. 경찰이 폭력시위라고 비판하면 시위대는 과잉진압 때문이었다고 받아친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장면이다. 그 논쟁 와중에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사람들이 왜 모였고 어떤 걸 요구하며 사회 비리나 부조리는 어떻게 하면 바뀌는지 그래서 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일이 없도록 정치인이나 위정자가 어떻게 해야되는지 등 시위의 본질은 가려진다. 취루액을 쏘는 경찰과 각목든 시위진만 뇌리속에 남을 뿐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당시 시위는 좀 달랐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고, 경찰에게 무리하게 돌격하지 않았다. 경찰의 안내에 맞춰 착석해 노래와 춤을 따라부르고 평화롭게 진행됐다. 누군가 흥분에서 경찰에게 달려들거나 길 건너 박근혜 옹호 집회로 진격하려치면 옆에 있던 사람이 말렸다. 보수 언론이나 태극기 부대에게 욕 먹거나 책잡힐 일을 아예 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집회가 끝나면 알아서 청소를 하고 질서정연하게 퇴장했다. 선진 민주주의를 눈 앞에서 목도했고 박근혜는 퇴진한 뒤 감옥에 갔다. 





근데 이런 경우도 있었다. 3년전 회사 들렀다 저녁약속 가는데 서울 여의도 공원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건설노조 조끼를 입은 무리에게 한 할머니가 소리쳤다. 아저씨들 왜 이렇게 서민들을 힘들게 해요, 버스에서 내려서 30분넘게 걸었더니 허리가 부러질거 같아요, 했다. 마포대교 점거(?)에 따른 불만이었다.


지나가던 다른 시민이 대꾸했다. 오죽 먹고사는게 힘들면 추운데 저러겠어요. 저 사람들도 서민이에요, 라고 응수했다. 사실 그 장면은 매우 기이했는데 투쟁의 머리띠를 두른 이도 서민, 몸빼 바지의 할머니도 서민, 동원된 전경과 정보 경비과 경찰 아저씨들도 서민, 약속에 늦을까봐 지하철 역으로 짜증내며 뛰어가던 나도 서민인데 서민들끼리 서로 '같은 서민끼리 이러면 쓰나' 하며 싸우고 있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의 집회였다.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 2만명은 당시 마포대교 방향으로 행진하다 기습 연좌농성을 벌였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며 마포대교 양방향 차선이 통제됐다. 건설노조는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했다. 핵심은 하루 4000원인 퇴직공제부금(일종의 퇴직금 적립)을 5000원 이상으로 올려달라는 거였다. 2008년 이후 10년째 퇴직공제부금은 묶여 있는 상태였다. 


건설노조가 마포대교를 점거한 그날 건설근로자법은 원래 국회 소위를 통과할 예정이었다. 여야간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됐다. 여야는 건설근로자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다른 법안에 대해 갈등이 있었다. 이견이 없는 건설근로자법을 먼저 논의해 통과시키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과 하태경 당시 바른정당 의원이 “1명이라도 반대하면 의결하지 않겠다”는 말을 근거로 건설근로자법 논의를 막았다. 낙심한 노조는 우발적으로 마포대교를 점거했다. 


출근길 시민들이 대놓고 욕을 했다. 왜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저러느냐고. 퇴근길을 막으면 어떤 욕을 들어 먹을지 알면서도 '우리 좀 봐달라'고 온몸으로 피력하는 노조의 모습에서 폭력까지 불사하는 현재 미국 시위 양상이 오버랩됐다. 물론 일부 매장을 약탈하는 행위는 당장 중단해야겠다만, 아무리해도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울분이 폭력으로 발휘된 거 같기도 하다. 




시위의 양상은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른다. 시위의 뜻에 100% 공감해서 단합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걸 기회로 자신의 이득을 취해보려는 주변인들이 시위에 나오기도 한다. 명품 매장이나 한인 매장을 습격하는 이들도 다양한 생각을 할 것이다. 백인 위주의 헤게모니를 자본주의와 동일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껏 흑인이나 소수자들이 억눌려온 것을 풀고, 본때를 보여주려면 폭력과 약탈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의미한 폭력과 약탈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시위에 있어서 이런 방법론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 건너편엔 현실파가 있고, 절제하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사람들도 있다. 또 이런 어려운 시위나 현실정치는 어른들이 하고 젊은이나 식자층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법 개정과 로비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터다. 난 일제강점기 시절 의병운동의 건너편에 서서 애국계몽운동, 민중 교화 운동을 펼쳤던 지식인까지도 생각난다. 그 중 일부는 차라리 친일파로 변질하긴 했지만..


쓰면서도 결론이 안 난다. 우리네 촛불처럼 평화롭게 시위하면서도 이미지로서 원하는 바를 여러명에게 관철시키는 시위가 좋을 것이다. 다만 꿈쩍도 않는 트럼프 행정부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흑인들에게 평화 시위만 들이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또 모른다. 


현재 트럼프는 벙커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폭력시위' 딱지를 붙이고 있지 않나. 급진 좌파가 배후에서 시위세력을 조종하고 있다고 폄하한다. 시위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본질을 호도하면서 자신을 비롯한 백인 주류 사회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평화롭게 시위하면 아무 반응도 없고 폭력이 들어가면 국가 전복이니 위기니 하면서 여론전 펼치고. 대통령이 나서서 흑인을 비하하니 참 대단한 나라다 미국. 대통령과 정부가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할 의지조차 없으니 누군들 열불이 나지 않을까.. 당연히 약탈과 방화 폭력 절제하고 조심해야 한다. 애꿎은 이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걸 막아야 한다. 근데 수백년에 걸쳐서 바뀌지 않는 부조리를 고치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고 해도 안되는 상황에서 분노한 그 흑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시위의 방법론을 지적하는 게 맞는 건지 싶기도 하다. 


어차피 시위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일 터인데 보다 효과적으로 정부를 자극하고 흑인뿐 아니라 백인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그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힘을 발휘하게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번 미국 시위의 과정과 결과를 보며 우리들도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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