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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06. 2019

오보의 추억과 언론탄압


생존이 문제였던 수습시절, 오보는 선배의 쪼임을 피하려다 종종 생산됐다. 새벽녘 경찰서를 돌면 경찰들은 대부분 귀찮아한다. 그도 그럴것이 새파랗게 어린 기자가 이것저것 캐물으니 누구라도 짜증날 수 밖에. 자연히 수습들은 경찰서 근방의 사람들과 접촉한다. 술자리서 시비가 붙어 신고하러 온 사람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런 민원인들의 말을 듣고나서 대강의 개요를 파악한 뒤 오후에 다시 형사과를 가서 물어보는 식이다. 친한 경찰을 만들어서 다른 과의 이야기를 듣거나 하면 좋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쪽의 입장만 듣고 기사를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습때는 물불가리기가 힘들다. 잠을 잘 못자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선배의 갈굼과 자신에 대한 실망, 기자를 택한 후회가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오며 몽롱한 상태가 된다. 사기 사건 하나가 있었는데 자잘한 거였다. 민원인에게 듣고 보고했더니 써보자고 했다. 아마 수습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차원이었던거 같다. 부담감이 발끝에서부터 밀려왔다. 제대로 취재된게 하나도 없었다. 경찰서 경제과에 가니까 "조사중인 차원"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조사를 한다는 게 곧 입건된 거라서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정확한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설익은 기사가 나갔고 해당인은 무혐의 처리됐다. 크게 명예훼손 걸릴뻔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다. 그때 배운것은 기사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 오보는 곧 기자의 책임이자 나아가 데스크와 부장, 회사의 실책이니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최대한 완벽한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거다.


오보는 보통 언론사 간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는 상태에서 양산된다. YTN의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 등이 좋은 예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들었다고 바로 쓰는 것이다. 내가 안쓰면 누가 쓸거라는 위기감에 바탕한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지난 1월 3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한 날이다. 오전 10시30분쯤 자살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는 경찰 보고가 돌았다. 10분 후 ‘받은글’로 그가 학생일 때 보수우파 활동을 했다는 얘기가 전달됐다. 47분 한 매체에 그가 유서를 남겼다는 단독 기사가 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동명이인”이라고 확인했다는 내용이 51분에 카톡을 타고 전파됐다. 12시28분 신 전 사무관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얘기가 들렸고, 48분쯤 관악경찰서발로 “생명에 지장없다”는 소식이 돌았다. 2시간 동안 메신저 창 수십개에 불이 났다. 한 공무원은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건데 언론과 지라시가 너무 빠르다”고 했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규 뉴스 도중 총격으로 한 여성 하원의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타 매체가 사망 소식을 전하지만 해당 뉴스 제작진은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총격 사건 자체만 보도한다. 언론사 사장은 질책한다. 그때 다른 스태프가 외친다. “의원이 아직 살아있대요! 마취의사가 수술 준비 중이라고 확인해줬어요.” 한 스태프는 자막 담당에게 말한다. “이제 숨 크게 쉬어도 돼.” 제작진은 광고와 돈, 인간의 존엄성 가운데 후자를 택한 것이다. 철저한 확인과 신중함이 대형 오보를 막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고 강한옥 여사 별세 관련해서도 오보가 있었다. 한 매체는 위독한 상태였던 강 여사가 돌아가셨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병원과 지방 정치권에서 나오던 얘기를 정확한 확인 없이 바로 쓴 것이다. 이러니 기레기라는 욕설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조금 더 확인하고, 한번더 전화해보고 하며 자신의 기사에 좀더 떳떳하려 노력하는 것이 기자에게 필요한 모습일 거다. 그렇게 '오보'는 기자로서 치욕이다. 사실관계가 완전히 틀렸거나 없던 일을 있던 것처럼 쓸 경우 당연히 기자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강령에서도 '우리는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시인하고, 신속하게 바로 잡는다'고 돼 있다. 또 '회원은 오보가 발생했을 때는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 가능한 빨리 이를 정정보도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오보가 아닌데도 오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기자의 탓만은 아닌 현상을 무수히 목도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회의에서 언론 보도가 보고되면 '이걸 어떻게 오보로 만들까' 고민한다"고 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한다고 쓰면 '논의된 바 없다'고 하는 식이다. 


분명 물밑에서 회의하고 정부 차원에서 준비중인 게 맞았다. 다만 보도가 나오니 해당 정책을 덮고 일단 오보라고 PG(press guideline)을 낸다. 물먹은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받아 쓴다. 1~2년 지나서 보니 그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더라, 하는 게 부지기수다. 


맞다는 걸 증명하려면 관계자의 워딩 하나가 아니고 내부 문서 등 빼박 증거가 필요한데 유출하면 '국기문란 행위'라 법에 걸린다. 기자를 도와준 분도 색출되어 화를 입는다. 정보 접근성에 있어 약자인 기자의 '불가역적인' 단독이 어려운 이유다. 오보는 분명 쪽팔리지만 오보도 열심히 하는 기자나 쓴다. 가만히 앉아서 보도자료만 처리하고 브리핑만 쓰면 오보 낼 일도 없고 편하고 즐겁고 출입처도 좋아하고 모두가 해피하다. 


사실 해피하지 않다. 그런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개인은 뭐라도 해보는 것이고, 언론사는 수습 시절부터 오보를 쓰지 않기 위한 취재방법을 가르친다. 기사 하나 쓰면 출입처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고 끝이다. 뭐가 어떻게 틀렸는지 확인하는 것도 내부 기밀이라 안 된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법무부는 오는 12월 1일부터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시행키로 했다. 여기엔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원칙적으로 비공개에 부치고, 수사 내용과 관련해 오보를 낸 기자에겐 검찰청 출입 제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검찰이 자의적으로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얘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완벽히 틀린 기사를 취재해 보도한건 기자의 책임이다. 다만 정보접근권이 현저히 제한된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기자와 언론에게 돌리는 건 무리가 있다. 법무부는 명확한 오보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잇속과 다른 기사를 오보로 폄하하고 제재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인권 신장'을 갖다 붙이기엔 너무 비루하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논란이 되자 '언론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문제라는 지적에 동의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정부가 기자와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언론은 책잡히지 않도록 사실확인에 더 힘써야 한다. 그래야 정부의 오보 몰아가기에 당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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