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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14. 2020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거에요


어제 휴일이었다. 조선일보 김지수기자의 인터스텔라에서 임지호 요리연구가 얘기를 봤고, 그의 삶을 다룬 영화 '밥정'을 보러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충무로 대한극장서 10시50분 영화였으니 9시30분쯤 출발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1호선 열차 사고가 났다고 20분을 기다려도 지하철이 오지 않았다. 버스로는 2번이나 갈아타야해서 일단 택시를 잡으러 역밖으로 나왔다. 나같은 이들이 벌써 길게 줄을 이뤘다. 5분여간 기다리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고, 40분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평일 오전이니 금방 가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서울역 부근에서 꽉 막혀서 차가 도저히 가지 않았다. 영화 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계속 역 근처서 맴돌았다. 결국 택시에서 내렸는데 이미 시간이 지나있었다.


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지하철 사고야 항상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서울도시철도 공사 쪽은 "양해를 바란다"고만 하고 아무 보상도 없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1000만이 사는 서울살이에 대한 짜증도 났다. 아니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자고 서울에 살아야 하나. 물론 시골이면 영화관도 없겠다만 운전하면서 모두가 짜증내고 욕하고 기분나쁜 이곳에서 내가 행복을 찾을 수있을까 싶었다. 


생각이 커지니 독과점이 횡행하는 영화 산업에까지 울분이 생겼다. 어벤져스 이런 상업영화에는 90% 상영관을 할애하면서 독립영화는 왜이렇게 걸지를 않는지. 아니 어차피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 새로운 스트리밍 서비스에 밀려 기존의 방식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할 국내 영화업계 아닌가. 또 한편으로 대한극장은 모바일 환불 시스템이 없다. 늦어질 것 같아서 찾아봤는데 직접 상영 20분전까지 영화관에 와야 환불할 수 있다. 21세기 시대에 이건 또 무슨 쌍팔년도 행정방식인가. 황금같은 휴일 아침부터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너무 기분이 잡쳐서 마음속으로 수많은 공무원과 운전자들, 영화 산업 관계자를 욕하며 다른 영화관을 찾아봤다. 3시간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어서 메가박스 이수 쪽으로 이동했다.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도 괜히 울컥했던 건 행복하지 않은 내 현재의 생활 때문인 것 같다. 요즘 나는 정치분야 온라인 기사를 쓴다. 조회수가 잘 나오는 기사가 따로 있는데 국회의원을 포함해 유명인의 말을 꼭지따서 쓰는 것이다. 다들 어쩜 그리 말을 쉽게 많이 하는지, 말이 홍수가 되어 인터넷에 차고 흐른다. 나는 주로 논란이 될 말을 잡아다 제목으로 쓴다. 기사가 포털에 걸리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와 욕하고 조롱하고 씹는다. 입에서 나온 칼로 서로를 난자한다. 생각없이 말 하는 이, 그 말로 장사하는 이, 힘들고 지친 생활에 풀 곳없는 이들이 한데 엉켜 가히 말의 각축장을 이룬다. 그 말을 팔아 먹으면서도 나쁜 말이, 그 말에 담긴 미움과 분노가 천천히 내 안에 들어와 엉키고 쌓인다.  


진짜 요새 별로 사는 재미가 없다. 무기력하게 그냥 하루하루 산다. 내년이면 30대 중반인데 삶의 목표가 사라진 것 같고. 남의 약점과 치부와 실언을 제물 삼아 하는 노동은 무기력함의 크기를 계속 키운다. 



우여곡절끝에 영화를 봤다. 영화는 80분 정도인데, 십여분이 지나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끝날때 되니까 그냥 너무 울어서 머리가 깨질 정도였다. 임지호 셰프의 일생을 담담히 다루는 영화였는데 스포상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다만 임지호 셰프가 울면서 극중에서 한 말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임지호 세프에겐 생모가 있고, 양어머니가 따로 있었다. 그는 생모를 찾아 평생을 떠돌았다. 정확히는 생모의 그림자와 발자취, 생모의 마음을 따라 전국을 돌았다. 나이가 들고 난 뒤에야 양어머니가 보였다. 생모가 1순위이던 그에게 양어머니는 최선을 다했다.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던 그를 정성껏 보살핀 양어머니를 떠올리며 임지호 셰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죽기살기로 살아왔어. 항상 치열하게 뭔가를 찾으면서 살았어. 양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주신, 삶으로서 내게 알려주신 삶의 방식이야. 그러니까 힘들고 지치고 무력할때에도 계속 노력해야돼. 행복을 찾으려고,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 계속 찾고, 갈구해야 돼."


스크린 내내 비춰지는 산과 들, 바다와 강의 가운데에서 임지호 셰프는 무언가를 들쳐메고 식재료를 모으러 다녔다. 누군가는 못 먹는다고 손사래치는 재료를 씻고 데치고 무치고 하며 음식을 만들어내자 사람들은 경탄과 감탄으로 음식을 먹었다. 직접 모아서 준비하고 만들고 장식하고 하는 숭고한 노동의 현장은 마치 종교의식처럼 보였다. 그가 지리산 어머니를 위해 3일간 108개의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3일간 비가 쏟아지고 처마에서 잠든 임지호는 슬프지만 단단해 보였다.


임지호 셰프는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를 찾기위한 내 여정이 영화 밥정을 통해 끝났다"고 했다. 그가 기인처럼 요리와 식재료에 집착했던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는데 이번 영화로 어느정도 짐을 내려놓았다는 뜻이겠다. 요리할 때마다 그의 눈빛에 돌던 어떤 광기같은 것도 조금은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보았다.


영화 하나가 주는 울림은 작지 않았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까.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 같고. 내가 손과 발을 움직이며 매일 먹고 마시고 하는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되는 참 좋은 영화였다.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 있을 수 있고 그때마다 새롭게 적응하며 살길을 찾고 고민하고 해야할 텐데 고개 숙이고, 땅만보며 한탄하면 더 좋은 기회와 행복을 놓칠 수 있지 않을까.

 


난 요새 만나는 이들에게 항상 행복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어떤 것에 대해 행복을 느끼느냐고 다시 질문한다. 가족과 아이, 일과 봉사활동, 퇴근 후 술한잔이나 골프, 연애와 얼마전 산 집값의 상승, 땀흘리며 운동하는 것 등을 언급하는 이가 많았다. 다만 많은 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굳이 행복해야 하느냐, 나는 그냥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행복에 정해진 조건은 없겠지만 나도 행복해야지, 하는강박이 생기면 더 힘들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흘러가는대로 중심을 잡고 그렇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겠지만 부서지는 멘탈을 붙잡기 위한 무언가를 만들도록 계속 찾고 고민해야겠다. 이제 내년이면 서른다섯살, 나도 중년으로 달려간다. 외롭고 힘든 서울생활 가운데 되새겨야 할, 임지호 연구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을테다. 그래도, 다시 살아갈 수 있을거에요. 




김지수 기자님 인터뷰 기사도 함께 보세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66&aid=000061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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