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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20. 2020

류호정, 그래도 잘 하고 있다


류호정의 시작은 찜찜했다. 정의당 비례대표로 영입되자 곧바로 대리게임 논란이 터졌다. 대리게임이란 실제 게임 계정의 주인이 아닌 자가 게임 플레이를 함으로써 게임 상의 레벨, 등급 등을 높여주는 행위다. 그게 뭐가 문제냐 하는 사람도 있겠다만 업계에서 대리게임은 게임상의 질서 및 규칙을 파괴하는 행위다.


류호정은 League of Legends(LoL) 계정으로 대리게임 행위를 벌였다.  LOL은 게이머들이 한 게임의 승패결과에 따라 그들에게 일정한 등급을 부여한다. LOL의 일반적인 게임 형태는 5:5다. 유저 개인의 실력만으로 등급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다. 류호정은 2014년 본인의 LOL계정을 지인과 공유해 ‘다이아 5티어’까지 등급을 올렸다. LOL 상위 2.5%에 해당하는 실력자가 모인 등급이었다.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로 따져봤을 때 류호정의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계정 명의자를 대신해 게임을 해 게임상의 점수나 등급을 받게 하는 행위를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지인들 간에 단순히 게임을 대신하여 주는 정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류호정은 2014년 대학 e스포츠 동아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가 대리게임 사실이 알려진 뒤 회장직을 사퇴했는데 한 라디오에서 "금전적 대가나 계정등급 상승 자체를 목적으로 계정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법이 아니었다. 류호정은 2014년 동아리 회장직을 그만두고 2015년 스마일게이트라는 게임사에 입사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LOL 등급을 적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류호정은 본인의 SNS에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될 때는 이력서에 게임 최고 랭크를 다이아 4로 적었는데 그 등급은 계정 공유가 아니라 제 실력으로 직접 승급해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게임회사에 입사하고, 정의당 경선을 통해 공천받은 과정에 가운데 LOL 다이아 5등급이라는 랭크가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다면 대리게임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정의당은 류호정을 내치지 않았다. “청년 정치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논란끝에 류호정은 국회의원이 됐다.


지난 총선 이후 류호정은 화제와 관심, 논란과 질타를 몰고 다녔다. 그는 같은 당 장혜영 의원과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을 공개 거부했다. 정의당을 탈당하겠다는 행렬이 이어졌다. 류호정은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장했고 비판이 쏟아졌다. 류호정은 당당했다. "국회 권위는 양복에서 나오지 않는다" "50대 중년 남성 중심의 국회가 어두운 색 정장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측면이 있어 그 관행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굳이 여성과 젊은층 뿐 아니라 일부 아재들도 류호정을 응원했다. 꼰대이면서 아닌척 하고 싶어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가 어딘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류호정의 옷차림은 좀 우려스럽긴 하다. 이후 노란색 원피스나 파란 점프수트를 입은 그를 보며 "아무리 그래도 좀 선을 지키면 어떨까" 싶었다. 이제 국회의 관행을 깨는 시작의 종을 울렸으니 의원답게 법안과 제도 개선으로 승부를 띄워야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 



류호정은 21대 국회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 출입증을 이용한 삼성전자 임원의 의원실 무단 출입과 삼성전자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밝혀내 삼성의 사과와 국회 차원의 대책을 주도했다. 류호정은 고 김용균씨에 이어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한 한국서부발전 국감에선 배전 노동자들의 작업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사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옷을 입은 노동자가 사장님과 일대일로 맞서 묻고 따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래서 입고 왔다"고. 욕하는 사람이 많다. 쇼 일수 있다. 난 그래도 노동자를 돕겠다는 노동자 출신의 류호정의 깡과 용기가 부럽고 장하다. 같은 밀레니엄 세대로서, 원피스에서 그치지 말기를 그렇게 바랐던 류호정이 패기있게 국회를 흔들어대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홍보고문을 지내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던 최창희 공영홈쇼핑 대표가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어이”라고 발언해 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공영홈쇼핑 측은 최창희 대표의 “혼잣말이었다”라고 해명했고, 최창희 대표 본인은 “‘허위’라고 말했던 것 같다”며 사과하자 류호정 의원은 “존중하는 태도로 답변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해명을 보고 헛웃음이 났다. 저걸 말이라고 하는가. 손녀뻘 되는 여성이라도 국회의원인데, 최창희가 평소 얼마나 꼰대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난 그래도 희망을 본다. 최창희의 편을 드는 일부 극렬 지지자를 제외하면 최창희가 과했다는 의견이 많다는 게 신기하다. 이번 국회에서 거의 처음보는 풍경이다. 1. 그만큼 젊은 국회의원이 없었고 2. 있었대도 기성 정치인의 악세서리처럼 작용하다 스러져갔기 때문이다. 그냥 고만고만한 386 486 들이 겉으로는 당적과 이념, 신념에 따라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의나 국감이 끝나면 웃으며 인사하고 밥약속 잡고 하는 식으로 국정을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최창희도 놀랐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를 개국한 인사로서 평소 하던대로 말이 나왔는데 이렇게까지 비판이 클 줄은 몰랐을 터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류호정은 그렇게 본인의 소신대로 기성세대가 쳐놓은 당연함이라는 벽을 깨부수고 있다. 


국민의힘 청년위원회의 괴상한 포스터


류호정은 아직 부족하다. 류호정을 싫어하는 막연한 무리들이 많다. 아직 미숙하다, 어려서 뭘 모르고 나댄다, 청년을 대표하는 자격이 있느냐.. 일견 맞는 소리지만 반대의 경우를 보시라. 좋은 학교 나와서 엘리트코스를 밟아 의원이 됐는데 헛소리나 해대는 수많은 의원님들을. 지역구만 챙기면 또 당선된다는 생각에 예산 챙기러 국토위나 희망하지 제대로 일하는 의원은 몇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리고 관행을 바꾸는 류호정이라는 존재는 그나마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류호정의 남은 의정 활동이 기대된다. 당의 논리에 휘둘리며 존재감 0인 민주당 청년의원들이나 괴상한 헛짓거리로 이상한 포스터나 만드는 국민의힘 젊은이들이 좀 보고 배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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