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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5. 2020

유튜브, 분노의 각축장이 되다


궁금하다. 유튜버는 공인인가. 최근 유튜브 컨텐츠 '가짜사나이2'를 두고 이어지는 폭로와 반박을 두고 상념이 든다. 절정의 인기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물론 사실도 많지만) 제보 혹은 폭로에 의해 하루만에 멸시와 질타로 바뀌고, 연예인급 돈과 명성은 차가운 대중의 욕설과 비아냥이 된다. 공인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크리에이터 시대를 맞아 유튜버의 말과 행동은 큰 관심사가 된다. 일부 여캠 유튜버의 학창시절 일진설 등이 네이버 뉴스 1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상황에서 유튜버가 되려면 과거까지 대중앞에 내놓을 각오를 하는 시대가 됐다. 아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공무원이나 임명직도 아니고 유튜버가 온 국민 앞에서 청문회를 해야 될 줄은. 그들이 누리는 인기와 맞바꾼 숙명이겠다만 유튜브 열풍이 낳은 신풍속도 치곤 씁쓸한 게 사실이다.



거짓말 논란으로 몰락한 차 유튜버 '카걸'과 테슬라 조작으로 사과한 유튜버 '야생마' 그리고 갑자기 터진 뒷광고 의혹으로 폭망한 한혜연과 많은 먹방스타, 피나치공 주작의 송대익, 장애 코스프레로 욕을 먹은 아임뚜렛 등 넘쳐나는 유튜버 논란을 보며 신기했던 것은 구독자 혹은 대중이 보이는 분노의 크기였다. 내 개인적 감상으론, 일부 유튜버가 잘못한 건 맞지만 너무나 과도하게 잘못의 정도보다 훨씬 광폭할 정도로 대중은 화를 냈다. 내가 좋아하고, 지지하고, 가끔 후원도 했던 사람이 사실은 나를 속였다는 배신감. 별거 아닌 컨텐츠를 올리는데 돈을 그렇게 잘벌고, 일부 TV 방송에도 출연하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불특정 다수가 보이는 이 분노의 광풍은 좀 얼떨떨하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유튜버는 수사기관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도덕적인 결함 혹은 방송 도중에 예의가 없었다든지 하는 경우에도 어김없이 논란이 됐다. 어떨 때는 공직자나 연예인, 정치인 등 전통적인 공인들 보다 유튜버에 대한 대중의 기준이 훨씬 더 높다는 생각까지 든다. 초등학생 선호직업 1위가 유튜버가 된 지금이라지만 그래도 생소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공인들보다 유튜버들이 대중의 시각에 노출되는 빈도가 더 높고, 그러니 흠이 더 잘 보인다. 경찰과 검찰을 따져보자. 후배 경찰을 성추행하거나 범죄자로부터 돈을 받는 등의 경찰 비리는 무수히 지면을 탄다. 반면 검찰 비리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기자들이 검찰과 결탁하고, 경찰을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니고 경찰이 검찰 직원보다 숫자가 월등하게 많아 대중혹은 미디어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은 TV와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보여지는데 이들이 스스로 켜는 SNS 라이브 등을 제외하면 날 것의 삶과 말이 팬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치인도 마찬가지고.



반면 유튜버는 주기적(거의 매일)으로 방송을 키고 실시간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편집본도 있겠다만 라이브를 해야 후원도 받고 한다. 필터가 없어서 가끔 실수도 하고 쉽게 질리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선을 넘기도 한다. 노출이 잦으니 허물도 더 많이, 자주 보인다. 


또 하나는 우리 대부분이 화를 풀 곳이 없다는 생각이다.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물가는 오르고 흉흉한 소식은 계속 들려오는 데 행복하진 않다. 경쟁을 체화해서 살아왔는데 입시와 취업, 결혼과 출산, 또 이어지는 자녀의 학벌과 취업, 결혼 등이 이어지면서 비교와 힐난 질투가 끊이질 않는다. 너무 살기가 힘들다. 지하철만 타도 사람들이 화난게 보인다.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치면 먼저 사과하기 보다 싸운다. 소리지르면서 싸운다. 지하철 탈 때마다 사소한 걸로 싸우는 사람들을 본다. 우리는 화나있고, 이를 건전하게 풀 곳이 없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여지가 없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 팍팍한 사회를 만든 위정자와 알 수 없는 많은 타인과 제도, 장치의 책임이다.


여든 노인도 유튜브를 보는 시대. 어쩌면 노출 빈도가 높은 유튜버가 분노한 대중의 해소 대상이 되는 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테슬라나 피자나라치킨공주 등 일부 기업의 이미지를 거짓과 조작으로 훼손한 야생마나 송대익은 처벌을 받는 게 맞다. TVN 방송에까지 나와 거짓을 말하며, 이를 바탕으로 장사를 하려던 카걸 등도 지탄받는 게 옳다. 뒷광고로 독자와 소비자를 기만한 유튜버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는 유튜버에게 가하는 잣대만큼이나 다른 공인들에게 날카로운 기준과 도덕적인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는가. 진짜 우리가 화를 내고 분노해야 되는 대상은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아닌가. 대중과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그늘에서 유튜버들보다 더 큰 잘못과 불법을 저지르며 호의호식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만만한 대상에게만 분노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분노의 각축장이 된 유튜브를 내려다보는 우리의 눈을 조금만 들어보면 더 나쁜 놈들, 더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hardy 소속 직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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