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hardy Oct 13. 2020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보며


슬슬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이가 삼십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지만 딱히 차가 필요는 없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불혹이 넘어서도 운전을 못할 것 같아서다. 장롱면허가 새차를 사기엔 좀 부담스러워서 중고차를 알아보는데 유튜브에 관련 영상이 참 많았다. 지난 여름 호우로 인해 침수차량이 많이 중고차 시장에 나올수 있으니 주의하라, 중고차 이렇게 샀다가는 망한다 하는 경고성 컨텐츠가 정말 많았다. 새차 보다 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천만원이 넘는 물품인데 신중히 보는 게 맞겠다 싶었다.


중고차 업체들은 저마다 투명성과 신뢰를 강조했다. 다른 업체들은 사기꾼이며, 본인들만이 고객을 위해 안전한 차량을 싼 값에 판다고 홍보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니 도대체 어디를 믿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중고차 사기꾼을 포착해 신고해온 한 중고차 유튜버가 사실은 비슷한 짓을 해왔다는게 얼마전 네티즌에 의해 적발됐다는 데 참 믿을 놈 없는 세상에 믿을 수 없는 놈 천지다. '당신이 중고차를 살때 유의해야 할 30가지' 류의 영상을 돌려보며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수밖에.


근데 손해보지 않기 위한 소비자의 노력은 좋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정당한 값을 내면 알아서 제대로 된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자본주의가 유지된다. 물론 모든 중고차 딜러가 다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손님을 등쳐먹으려는 딜러들이 많고, 피해 사례가 속출하며 이게 쌓이고 축적돼 '중고차 업계 = 못 믿을 동네'라는 인식이 생겼을 거다.  


이런 와중에 현대차가 연간 200만~300만대에 이르는 중고차 시장 진출 의지를 밝혔다. 코로나 영향도 있고, 중국시장서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현대차로서는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너무 좋았다. 국내 1위 자동차 대기업이라면 그래도 믿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중소벤처기업부가 진행중인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에서 중고차 판매업이 탈락되면 공식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미 딜러들의 반대는 가시화하고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현대 기아차 영재 본사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중고차 시장은 소상공인들이 모여서 근근히 살고 있는데 대기업이 서민들의 먹거리까지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고질적인 허위 미끼 매물, 사고 이력 조작, 바가지 판매 등에 대한 사과나 반성, 철저한 자조는 없다. 자본의 횡포라는 프레임 하에 스스로의 허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시감이 든다. 통큰치킨과 트러스트 부동산, 카카오 택시나 타다, SSM(기업형 슈퍼마켓) 논란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 소비자는 각각 영세 치킨업체와 복덕방, 기존 택시와 개인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마트의 불친절을 지적한다. 반면 당사자들은 이미 부를 누리고 있는 거대자본이 들어오면 서민들은 어떻게 사느냐며 항의한다. 어떤 분야에선 자본이 꼬리를 내렸고 몇몇 업계에선 소상공인이 졌다. 소비자의 편의만 따지기엔 일자리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 그렇다고 기존 업계의 편을 들기엔 너무 매너리즘에 빠진 상인들과 업체가 많다. 그들만의 카르텔과 독과점 사이에서 고객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 드립만 치기에는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런 형국이 반복될때마다 나는 한국의 산업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 6/25 이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 기간에는 뭐든지 돈이 되고 일이 됐다. 국가 부흥을 명목으로 일부 기업이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일자리는 넘쳐났다. 그러다 정체되기 시작했다. 특히 21세기 들어 인터넷 발달로 정보화 시대가 도래했고 기존의 아날로그 직업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기술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첨단 산업분야 일자리는 아무나 누릴 수 없다. 고도의 훈련받은 인원만이 가능하다. 산업화 시대처럼 산업의 파이는 쉽고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데 아무리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해도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겹치기 현상이 발생한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청년이든 기존의 업계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서비스를 혁신하고, 고인물 같은 업계에 새바람을 이끌며 소비자에게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이론과 현실은 좀 다른 것 같다. 기존 업계의 격렬한 반발때문에 사라지는 혁신 기업도 많지만 그것만의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업계 종사자의 반발을 잘 무마하며, 소비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주는 동시에 정부도 잘 설득하고 수익 구조를 잘 잡아서 많은 사람이 일하도록 새로운 생태계를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카카오도 카카오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 성공했다. 카카오톡이 정착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어렵다.


사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새로운 지평, 새로운 영역의 산업분야 창출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테슬라 같은 기업이 탄생하려면 일론 머스크라는 천재의 리더십과 뚝심이 필요하다. 막대한 자본과 산업을 창출해갈 인재도 필요하고(우리나라 같은 학벌 사회에선 그런 인재가 나오기 어려울 수도..)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분위기와 어느정도의 규제를 풀어주는 정부의 지원도 절실해 보인다. 파이를 늘리면서 기존 업게도 보호하고 일자리도 만들고 하는 최선의 선택지인데 역시 단기간에 될 일이 아니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타다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AI가 이미 증권이나 날씨 기사를 쓰는 지금 기자도 곧 사라질터인데 그때 우리 기자들은 관련 업체 앞에서 "그래도 사회를 향해 일갈하고, 사람의 의중을 짚어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는 는 인간 기자는 사라지면 안 된다"고 시위해야 할 것인가. 오만한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불친절하고 손님을 호구잡는 일부 소상공인, 자신만 편하면 좋다는 이기적인 고객, 기술의 발달과 일부 엘리트층의 독점, 혁신을 외치지만 혁신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겹쳐져 아득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명의 천재가 수백을 먹여살린다지만 언제까지 빌게이츠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해야 우리는 행복하고 즐겁게 돈을 벌며 살아갈 수 있을까.

hardy 소속 직업기자
구독자 556
매거진의 이전글 강경화, 그리고 남편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