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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08. 2020

강경화, 그리고 남편


요트사러 미국 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 논란이 터지고 나서 그의 블로그를 정독했다(지금은 접근 권한이 없다며 막혀 있다). 그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여행을 포함해 여가를 즐기는 사진을 올렸는데 신기한 게 강 장관의 모습은 거의 없었다. 강경화가 장관이 되기 훨씬 전부터도 그랬다. 주로 딸과 부모, 친구와 친척 사진들이었다. 백발의 이 교수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산과 바다, 자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뜬금없이 '인상은 참 좋은 할배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추측이 들었다. 1. 공직자인 아내를 고려해 괜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2. 아니면 이 교수 개인적 성향? 주변에도 가족 얘기하는 걸 싫어하고 가족 관련 사생활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떤 이유로든 좀 의아하긴 했다. 


이일병 교수와 강 장관은 연대 영자신문사 선후배 사이다. 학부시절에는 교제하지 않았지만 매사추세츠대학에서 각자 다른 전공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해 알려진건 이게 끝이다. 


이 교수의 블로그는 어떤 의미로는 참 경이로웠다. 그는 요트를 비롯해 각종 취미생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정년 퇴임보다 일찍 학교를 떠나 해외 자문단 봉사활동 등을 한 뒤 거제에서 살아 왔다. 색소폰 연주와 바이크를 타는 것이 취미다. 외교부 장관은 서울에 넓고 큰 공관이 있는데 이 교수가 아내를 따라 공관으로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30여년간 교수 생활을 했다. 풍족하고 돈 많고 걱정없이 살아온 여유많은 아저씨의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 블로그에 여과없이 담겨 있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의 완벽한 표본처럼 보였다. 그의 인상은 한점 구김없이 평온했고 즐거워보였다. 



KBS 보도로 한껏 달아올랐던 강경화 남편의 미국행 논란은 며칠만에 좀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7일 국감장에서 강 장관은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의 "남편에게 여행 자제를 만류한 적 있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읍소했다. "개인사라서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말린다고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다"고. 서슬퍼런 의원들도 폭소를 터뜨렸다. 


관련 의혹에 대해 정색하며 '소설쓴다'고 일관하던 추미애 장관 보다는 그래도 인간적이라는 얘기가 야당에서 나온다. 은퇴하고 여생을 즐기려는 노교수가 외교부장관 남편으로서의 외조보다 자신의 삶을 택한 것이다. 말리지 못한 아내는 전선에서 혼자 뭇매를 맞고 그 가족의 사정을 지켜보는 대중의 마음이 어느정도 누그러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장관의 성별을 바꿔 가정하면 좀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한 여성학 교수가 던진 아젠다인데, 만약 장관이 남성이었다고 생각해보자. 아내가 신상백을 사기 위해 코로나 국면에서 미국에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내 지위를 생각해서 백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오라'고 했을때 이를 거부했다면 국민 여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고작 남성을 여성으로, 요트를 신상백으로 바꿨을 뿐인데도 그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아마 철없는 여편네, 저러니까 여자들이 욕을 먹는다, 정신나간 여자라고 비판이 쏟아졌을 거다. 이건 분명하다.


이일병 논란에서 눈길이 갔던 건 30~60대 남성들의 반응이었다. 은퇴 후에도 2억원에 달하는 요트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 67세의 나이에도 젊고 건강하게 취미생활을 하며 사는 성공한 노년의 삶. 보통 중년~노년의 남성들이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살 수 밖에 없는데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밀어부치는 기개 등을 멋으로 포장하며 "부럽다" "저렇게 살고 싶다" "진정한 상남자의 삶이다" 이런 류의 동경을 보내는 아재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 교수는 미국행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취재진에게 "그냥 여행 가는 건데, 자유여행. 코로나 걱정은 되는데, 그래서 마스크 많이 가지고 간다. 아내도 나도 서로 어른이니까. 제 계획을 놀러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 건 아니다. 나쁜 짓을 한다면 부담이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 하는 것, 내 삶을 사는 건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때문에 그것을 양보해야 하나. 모든 걸 다른 사람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지 않느냐. 하루 이틀 내로 코로나19가 없어질 게 아니다. “매일 집에서 그냥 지키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조심하면서 정상 생활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자유주의적인 사람이다. 아내가 말릴 수 없겠구나 싶었다.


반면 여성 배우자가 취미를 위해 이시국에 미국에 갔다면? 같은 여성들도 응원을 보내기보단 '남편이 공직자인데 이기적이기 짝이 없네' '저 여편네는 왜 저래' 했을 것이다. 우리네 의식 속에 아직도 남녀차별이 뿌리깊게 박혀있단 증거일 것이다. 심지어 여성들의 의식 속에도.



난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부란 게 어떤 것인지, 부부 간의 삶과 의리, 그리고 정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부부란 것은 각자의 삶에도 불구하고 서로 협력하고 돕고 어느정도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억제하며 한 팀을 이루는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언론과 야당,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들 앞에서 강경화는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 교수도 이 상황을 예측했을 텐데 그 요트가 뭐라고 지금 꼭 해야 하는가. 공직자인 아내가 겪는 고난보다 친구들과의 요트 여행이 더 중요한 것인가. 나는 좀 답답하다. 남편과 아내의 덕목, 그리고 개체로서의 인간과 우리 사회의 젠더 수용성에대해 생각해보게 된 지난주 였다. 남편이 아니고 남의 편이다 진짜.

hardy 소속 직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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