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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24. 2021

정무감각의 중요성


MBC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중계 참사를 지켜보며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과 내부 논의를 통해 나온 결과인지 궁금해졌다. 못해도 수십 명의 판단을 거쳤을 텐데 국격을 훼손하는 저런 자막과 사진을 넣는단 말인가. MBC는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 과정에서 선수 입장 시 해당 나라와 관련한 음식, 명소 등 사진을 띄웠는데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며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현장 화면을, 아이티의 경우 아이티 내전 사진을 썼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마셸제도에는 '한 때 미국의 핵실험장' 시리아에는 '10년째 진행 중인 내전'이라고 소개했다. 필리핀에 대해서는 '복싱 영웅 파퀴아오와 두테르테의 정치 대결'이라고 적었다. 아울러 동티모르에는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 파키스탄에는 '종교 갈등으로 1942년 인도로부터 분리' 등 정치적인 메시지를 금하는 올림픽에서 각국의 정치적인 관계를 언급했다. 총체적 난국이다. 방송 사고를 넘어 국격 훼손행위로써 조사하고 관련자를 넘어 사장까지 책임질 문제라고 생각한다.


MBC 사태를 보면서 정무감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무감각은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뜻으로,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정치나 행정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행동을 뜻한다. 백과사전에는 정치가나 고위직 공무원들이 정치나 행정 등에서 특정 논리나 정당, 국가 기관의 입장과 여론 정세 등에 따라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사유 작용이라고 되어있다. 사실 이 용어는 2016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심사위원회의 공천 안에 대해 구체적 이유 없이 현역 의원을 컷오프 한 것을 두고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답하면서 널리 퍼졌다. 근데 굳이 정무감각은 정치가나 공무원뿐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MBC 관계자들에게 정무감각이 있었다면, 자막을 내보내기 전 누군가가 "이거 논란될 것 같은데" "굳이 비꼬는 자막과 사진을 넣어야 하나" "그냥 올림픽 전적 성적이랑 국기만 넣으면 어떨까" "수도명이랑 국기 다시 한번 확인해봐" 했을 것이다. 그런 필터링이 없어서 참사가 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무감각은 리스크 관리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빠르게 캐치해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능력이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국가기관에서 정무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청와대의 8 수석 가운데 선임 수석은 정무수석이다. 정무수석의 역할은 단순히 국회와 청와대를 중재하고 연결하는 게 아니다. 현재 이철희 정무수석은 매일 대통령이 오전 9시쯤 주재하는 티타임에 참석한다. 티타임 멤버는 그때그때 바뀌는데 대개 5~6명 내외의 최고위 참모들만 배석한다. 거기서 여러 현안에 대한 메시지나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하게 된다.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사과를 할 것인지 등의 민감한 문제가 다뤄진다. 여러 행동에 대한 반응을 미리 예측하고 계산해서 최선의 답을 도출하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정무감각이다. 


청와대 다른 비서관실도 마찬가지다. 의전비서관실의 경우 단순히 대통령의 행사를 준비하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행사 참석자 자리를 정할 때 A 의원과 B 의원이 사이가 좋지 않다면 이를 고려해 자리를 떼어놔야 한다. 부처도 그렇다. 어떤 정책을 발표할 때 뭐를 메인으로 삼을 것인지, 관할하는 정책이나 공무원이 사고를 쳤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대처할 것인지 선후관계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 기준을 정해주는 게 정무감각이다. 결국 정무감각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부 구조와 제도, 정책, 인간관계와 여론에 대해 기민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야 생긴다. 


최근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일단 가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휴가도 포기하고 일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나 보다. 나는 이 발표가 정무감각이 떨어진다고 봤다. 대통령은 보통 8월 초에 여름휴가를 냈었는데 지금 코로나 사태에서 휴가를 가면 당연히 욕을 먹을 테고, 안 가는 게 맞다. 다만 대통령이 올해 언제 휴가를 간다고도 발표를 아직 안 한 상황에서 굳이 안 가겠다고 자화자찬하는 것도 국민에겐 썩 좋지 않은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 기사가 나고 포털에는 '대통령 휴가'가 키워드로 뜰 것이다. 대통령이 휴가를 가지 않는다는 전체 문장보다도 대통령과 휴가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힐 것이다. 사람들은 바빠서 기사를 잘 찾아보지 않는다. 대신 저 키워드만 가지고 '아니 그러 면 이 시국에 대통령이 휴가를 가려고 했어?' 라며 오히려 안 좋은 뉘앙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니 자화자찬하기 전에 이런 반응을 먼저 고민하고 조용히 넘어가면 됐는데 정무감각이 떨어지는 판단을 했다. 


일반인에게도 정무감각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A 부장이 또 이상한 일을 시켰다고 치자. 아무 말 없이 할 수도 있지만, 대들고 안 할 수도 있다. 이때 두 가지 행동에 대한 결과를 따져봐야 한다. A 부장이 회사에서 인정도 못 받고 평소에도 이상한 행동으로 유명했다면 대들어도 내게 큰 무리는 오지 않는다. 반면 A 부장이 유능한 사람이라면 굳이 반기를 들어선 안된다. 내게 가장 유리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면 회사 사정도 잘 알아야 하고 돌아가는 판을 읽어야 한다. 사회생활하는 직장인에게 정무감각이 필요한 이유다.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라도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행동한다면 실수를 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나는 21세기형 인재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가 바로 정무감각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 트렌드를 빨리 읽는 안목과 독창성, 창의력과 추진력 등이 필요하지만 정무감각 안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된다. 회사 내 여론이든, 조직 내 여론이든 빠르게 파악하고 나에게 맞춘 행동방식과 생활양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무감각이 있는 인재의 삶이다. 큰 실수를 사전에 차단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이야말로 회사나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MBC를 비롯해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들이 일반인의 기준에선 이해가 가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정무감각을 키우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 방송사로서 여러 번 올림픽을 치러봤으니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건너뛴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지역구를 부단히 돌아다니고 기자들도 만나고 열심히 했지만 2선, 3선, 중진이 되면서 그의 행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지역구의 왕이 되어 떵떵거리다 보니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고시 출신으로 사무관부터 시작해서 현장에서 기었지만 이제 곧 장차관을 앞두고 있고 하니 굳이 말투나 행동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이제는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 하고 넘겨짚으니 사고가 나고 민폐를 끼치고 개망신을 당한다. 항상 긴장하고 예민한 상태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최선을 답을 찾으려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 초심을 찾지 못하는 이상 이런 실수와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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