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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Sep 09. 2021

윤석열과 마이너 기자


메이저 언론사는 어디일까. 조선 동아 중앙 경향 한겨레 한국일보 등 6대 일간지와 지상파 3사, 종편과 매경 한경, 연합뉴스 정도일까. 대충 이 정도를 메이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언론을 나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준은 매우 높아서 2만개가 넘는 언론사 중에 고작 10여개 매체를 메이저로 부른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사는 총 2만950개다.     


이렇게 따지면 나는 소위 말하는 마이너매체 기자다. 10대 일간지에 다니니까 2만개의 매체 가운데서는 그나마 상위권 같긴 하지만 각종 현장에서 뛰다보면 보이지않는 멸시를 받을 때가 많다. 이념 성향이 약한 중도 매체 기자이다 보니 피아가 명확치 않고, 제보의 숫자도 적다. 정치인이나 정부 사람들, 기업분들은 다 알지만 일반인 가운데서는 우리 신문을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특강을 가보면 "거기 왜 다녀요? 누가 읽어요?" 하는 친구들도 있다.


회사 선후배들도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더 크고 좋은 메이저 매체로 옮긴 동료들도 많고. 다만 여기 남아있다고 실력이 떨어지거나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선후배들도 많고 별거 아니지만 남과 다른 기사를 쓰기 위해 발로 뛰는 기자들도 있다. n번방 이슈를 공론화한 것도 우리 회사였다. 회사가 크지 않다고 해서 소속 기자의 능력이 작은 것은 아니다.


9년 간 기자생활을 해오면서 뛰어난 기자를 많이 봤다. 물론 메이저 매체 소속도 있었지만 전문지나 조그마한 일간지, 잡지 기자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필력과 취재능력을 보여준 이가 왕왕 있었다. 그들에게 신세도 많이 졌다. 매체가 아니고 기자 개인의 브랜드가 훨씬 더 중요한 경우도 많았다. 메이저 매체 기자들 가운데서도 열심히 하지 않고 노는 사람도 있다. 어떤 취재원은 매체 상관없이 열일하는 기자를 대우해줬다. 또 다른 취재원은 반대로 중요 매체만 챙겼다. 오래 두고 보니 후자의 취재원은 점차 주요 보직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됐다. 일로서 만났지만 선입관 없이 사람을 대하는 취재원이 잘 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산업부 출입 당시 한 통신사는 국제가전박람회를 가는데 딱 주요 매체만 초청하고 우리 신문을 뺐다. 한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은 우리 회사가 쓴 기획기사를 두고 "조중동 같은 더 큰 매체에 나와서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국무총리실 인턴 때 만난 전직 기자이자 공무원 아저씨는 대놓고 "조그마한 매체 다녀서 힘들지"라고 했다. 내가 인턴을 했던 한 메이저 매체 선배도 "야 얼른 우리회사로 와"라고 종종 얘기한다. 나를 위한 이야기인걸 알지만 연민과 안쓰러움을 넘어 무시가 함께 담겨있는 말이다.


내 기자 생활은 이런 편견과 무시를 감내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부동산을 맡았을 당시 경제신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당연히 건설사와 국토부 등도 큰 매체를 더 많이 만나고 했다. 고작 3년차 밖에 안된 나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발악을 했던 것 같다. 좀 엇나갔던게, 좋은 기사를 많이 쓰고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술자리나 모임 등에서 일부러 취재원을 도발하고 마음에 상처주는 말을 했다. 돌이키면 부끄럽지만 그런식으로라도 내 존재를 알리고 마이너 매체 기자, 얘기 안되는 기자라는 오명을 깨고 싶었던 것 같다. 3년간의 경찰팀 생활, 또 3년간의 청와대 출입기간도 마찬가지였다.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9년이라는 세월을 버티게 해준 것 같다. 결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메이저 언론사를 운운했나보다. 고발사주 의혹을 부인하며 그는 “앞으로 정치 공작을 하려면 인터넷매체나 재소자, 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고 국민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 가는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했으면 좋겠다. 인터넷 매체가 한번 보도하면 정당의 전·현직 대표와 의원, 위원장 이런 사람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떠든다”고 했다.


그의 발언을 들은 한 취재진은 “메이저 언론이 아니면 보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작은 언론, 메이저 언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뉴스타파나 뉴스버스가 하고 나서 (다른 언론사가) 달라붙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뉴스를 그런데(메이저 언론)에 줘서 독자가 많은 데서 시작하면 좋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KBS, MBC에서 바로 시작하든지”라고 특정 언론사를 거론했다.


윤 전 총장이 ‘인터넷매체’로 거론한 언론은 ‘뉴스버스’라는 신생 매체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윤 전 총장 측근으로부터 여권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을 받아 정당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뉴스버스의 대표는 조선일보 출신 이진동 기자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취재했던 기자다. 김의겸 당시 한겨레 기자가 진두지휘한 기획물 시리즈나 JTBC의 태블릿 PC 보도도 대단했지만 사건을 처음으로 접하고 취재한 것은 이진동 기자였다. 그가 조선일보를 나와 뉴스버스라는 매체를 차린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참 대단한 기자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마이너 소리 들을 그런 게재가 아니다.


윤석열은 마이너 매체라는 표현을 쓰며 고발사주 기사의 신뢰성을 지적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약자와 소수를 무시하고 압박하는 검찰출신의 폭군적 행태라는 분위기가 더 많은 것 같다. 서울대를 나와 특수부 검사를 거쳐 검찰총장까지 지내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로서는 지극히 합당하고 합리적인 이야기일지 모르겠다만 나는 어떤 특정 세력을 줄세우고 나누고, 또 이런 행위가 문제가 될지 모르는 감수성을 가진 후보는 딱히 지지하지 않는다.


마이너 기자의 열폭이라 봐도 좋겠다만, 굳이 기자뿐 아니라 잘 나가는 엘리트들이 보기엔 마이너같이 보이지만 그래도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행복하게 메이저처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우리 모두를 응원해주고 싶다. 우리네 열정과 인생은 저딴 치들에게 함부로 재단당할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각자 처한 환경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숭고한지, 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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