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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30. 2021

조국의 아들들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보면서 몇번 울었다. 2014년을 배경으로 했다던데 지금은 그때보단 군생활이 좀 나아졌을 것이다. 다만 지금도 어딘가에선 선임이 후임을 갈구고, 가혹행위를 하고, 때리는 부대도 분명 존재할 터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대 내에선 군기라는 명목하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어찌보면 야만에 가까운 행위들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 청춘들이 생각나서 울컥했다. 폭력을 바탕으로 한 조직에서 이리저리 뜯기고 깨지는 과정을 우리는 '철이 든다' '남자가 된다' '어른이 된다'는 말로 포장해왔다. 일사분란과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대라지만, 인격을 저버리는 방식으로 사람이 진정 길들여지겠는가. 국방부가 주구장창 떠드는 병영문화 선진화가 좀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굳이 부대 내에서 싸울 필요가 무엇이 있나.


나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자대 배치받고 첫 분대장이었다.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었는데 첫 인상은 학자 같았다. 신병들은 일주일내로 군가와 자대가(해당 대대에만 내려오는 군가)를 외워야했고 나는 다행히 썩 잘 했다. 분대별로 신병을 1명씩 받았는데 4명을 동시에 세워놓고 무작위로 군가를 시켰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은 썩 잘하지 못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분대 선임들에게 혼났다. 신병의 맞선임까지도 '너 제대로 교육안하느냐'고 욕을 먹었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이 꿈 같았고 손이 덜덜 떨렸다.


한달쯤 지났을까, 분대장은 슬슬 내 행동이 굼뜨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분대 모든 일을 다 나를 시켜서 그런건데도 그랬다. 유격훈련 때였는데 분대장과 분대 투고가 자신들의 야삽과 방독면을 포함한 자질구레한 짐을 다 내 군장에 넣었다. 약 40kg 가까운 군장을 메고 15시간동안 행군을 하는데 발에 물집히 잡히고 터져 도저히 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러자 그 분대장은 내 뒤에 붙어서 "다른 분대 신병들은 다 잘하고 있는데 너만 낙오하면 군생활 끝난줄 알아라"라고 협박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걸었다. 발에 감각이 없어졌는데도 걷고 또 걸었다. 결국 부대를 코앞에 두고 낙오했다. 분대장은 "저새끼 그럴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발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100일 휴가를 나왔다. 절뚝대며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쓰러졌다. 아부지와 함께 근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속상해하던 아부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분대장은 이후로 나를 몇 차례 때렸다. 관물대 앞에 세워놓고 발로 배를 차기도 했다. 나는 아프다기보단 모든 소대원 앞에서 맞는게 부끄럽고 쪽팔렸다. 사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운좋게 이등병때 2달간 사단 저격수로 뽑혀서 집체 교육을 받았다. 우리 부대 근처였다. 갑자기 집체에 들어가라는 말에 널어놨던 내 활동복을 못 걷고 왔는데 그 분대장은 기어코 집체 부대까지 찾아와서 내가 빨래를 안 걷어서 행정보급관에게 지적을 받았다며 역정을 냈다. 욕설을 하며 때리려고 했다. 그때 같이 집체에 온 다른 부대 아저씨들이 말렸다. 분대장이 돌아가고 아저씨 하나가 "괜찮아요"하는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대는 전역자가 나오면 부대를 나가는 길에 모두가 도열해서 축하해주는 전통이 있었다. 나는 분대장이 나갈때 가지 않았다. 화장실에 숨어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억울한게 쫓아가서 한마디 해줄걸 그랬다.



그 분대장 밑으로도 줄줄이 쉬운 사람은 없었다. 독사라 불리는 상병이 있었는데 눈이 찢어지고 왜소한 체구였다. 그는 동기나 선임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과거에는 관심병사였다고 한다. 그의 특징은 초반에는 잘해주다가 갑자기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고 싶어지면 이유없이 하루 종일 욕하고 시비거는 거였다. 총기 제원 물어보기는 그의 주특기였는데, 하나라도 놓치면 그때부터 이새끼가 빠졌느니 어쨌느니 하며 눈떴을때부터 잘때까지 계속 쫓아다니며 욕했다. 정신병이 걸릴 지경이었다. 다행히 그의 갈굼은 밑에 신병이 들어오면 그에게 옮아갔지만, 4개월여간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좋은 선임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군대하면 이런 새끼들만 떠오른다. 그들이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를 아직도 빈다.


근무만 나가면 재밌는 얘기를 시키고, 여자 얘기를 캐묻고 병신이니 쓰레기니 하는 비아냥을 견디며 초소 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떄가 있었다. 기껏해야 20대인 그들은 왜 하나같이 똑같이 그런 주문을 했던 건지. 선임과 근무를 나갔는데 선임이 판초우의를 깔고 잤는데 간부가 오는걸 뒤늦게 발견해서 늦게 깨웠다고 뒤통수를 때린 이도 있었다. 중대 내 서울에서 대학다닌 이가 거의 나밖에 없었는데 한마디만 하면 재수없다 싸가지없다는 선임들도 많았다. 시간이 훌러 내가 분대장이 됐을때는 적어도 그런 짓은 안했던것 같다. 몇번 욕한 적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사람의 인격을 모욕하거나 모멸감을 주는 행위는 안 했다.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 내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리 부대에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이가 전입왔다. 외모는 남자인데 마인드가 여성이라서 남자들과 같이 샤워하기 힘들다고 했다. 중대장은 샤워실에 칸막이 설치를 명했고 결국 마련됐다. 부대원들은 군대 놀러 왔나, 모두가 불편한거 감수하고 참고 뺑이치는데 군대 참 좋아졌다고 한탄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그런 사람들도 조국의 아들들인데 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낙오자 고문관 취급하면서 낄낄대야 하나. 군 내 병과가 육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자리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애국을 하면 되는 것인데.


극중에서 가장 아팠던 말은 "나보다 더 심한 애들도 많았어" 였다. 내리 갈굼으로 한사람의 인격이 변화하고 난폭해지고 인생이 달라진다. 폭력에 쉽게 노출되면서 자신이 저지르는 폭력의 위험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흑화한다. 군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닐진대, 군대에서 겪은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국가를 향해 손해배상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일건데 그냥 아무일 없었던 듯이 살아간다. 남들도 다 그렇겠다는 마인드로. 드라마는 무자비한 폭력을 방관하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다들 공범 아니냐고. 물론 우리도 군대에서 살아남기위해 모른척 한거지만 그래도 이게 과연 옳은 방식인지를 곱씹게 만든다.


사고가 터지면 일단 로키 모드에 돌입하는 군과 조금 다르다고 무시하고 낙인찍는 문화가 오히려 튼튼한 국방을 해치고 있다. 칼같은 해법이 없으니 마음이 답답할 따름이다. 안그래도 올해 사건사고에 시달리는 국방부 입장에선 해당 드라마의 인기를 두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던데, 조국의 아들들이 오늘밤에도 별일없이 건강히 고민없이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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