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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13. 2021

요새 근황과 미래 걱정

로마로 출국하기 직전 공군1호기 앞에서 동료 기자가 찍어주었다


한 언시생분이 요새 왜이렇게 글을 안올리느냐고 메일을 보내주셨다. 별 관리도 안하는데 매일 브런치 방문자 숫자가 300~1000명대를 기록하는 건 그만큼 언시생들과 독자분들이 미천한 이곳을 잊지 않고 들러주시기 때문일 거다. 감사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여 최근 근황 겸 상념을 좀 정리해보려 한다.


난 여전히 청와대에 혼자 출입하고 있다. 임기말 청와대 치고는 지지율이 아직 30%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고 국내외 이슈도 많아 일의 부담은 크게 줄지 않은 느낌이다. 여야 대선 후보가 정해진 이후 여론이 다 여의도로 쏠리고 있지만 그 와중에 짜잘하게 청와대 기사가 잡히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데, 사그라드는 관심을 계속 환기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3년간 청와대에 나오다보니 나도 어느덧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이해갈 때가 많다.


최근엔 대통령 유럽 순방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공군1호기를 타고 7박 9일간 3개국을 돌아다녔다. 시차가 맞지 않아 하루 3시간 정도 밖에 못 잤다. 청와대는 이번 순방의 야마로 평화외교, 경제외교, 환경외교를 꼽았는데 결국 기사는 다 한미, 한일 정상회담 불발로 나왔다. 청와대는 왜 이렇게 기자들이 4강외교에 집중하느냐며 다자외교의 의미를 되새겨달라고 했다. 맞는말이지만 아무래도 독자의 관심은 미국과 일본 쪽에 쏠려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의 순방이라 긴장했는데 아직도 잠시 바뀐 시차가 체감 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사실 순방 기사도 많이 잡히지 않았는데 문 대통령 지지자라면 기레기라고 또 욕할 수도 있겠지만 순방 기사 자체가 별 이야기가 안 됐다. 교황을 만나 방북을 재요청하는 건 좋은데 정확히 언제간다고 확답을 준 것도 아니고 COP26 정상회의서 제안한 북한과의 산림협력에 대해 북은 묵묵부답이다. 나도 청와대 출입으로서 임기 마지막까지 문 대통령이 좋은 성과를 거뒀으면 한다. 그래도 임기말 대통령 주변 게이트가 터져서 업무가 마비됐던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으니 다행인 것 같다.


내년 3월에 대선이 끝나면 청와대 기자들도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청 기자들은 정권과 생명을 같이 한다. 대통령이 떠나면 기자들도 떠난다. 어느 부서 어느 팀으로 가야할 지 고민해야 할 시점도 곧 올 거다.


G20 정상회의가 열린 로마 호텔 근처 콜로세움


인사 문제와 별개로 곧 기자질 10년차를 맞는 내 미래에 대한 고민도 크다. 특히 언시생 분들께도 곧 닥칠 문제라서 좀 구체적으로 적어보고 싶다. 아직 나도 35살이라 그마나 젊은 축이라고 보고, 직업 뿐 아니라 여러가지 인생플랜이 고민스럽다.


우선 발제의 문제. 매일 아침 오늘 내가 무슨 기사를 쓸 건지 보고할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다. 일한 지 10년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나만 쓸 수 있는 단독 기사가 있다면 신나서 보고하지만, 그런 날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요새는 대통령 일정이 없는 날이 많은데 그때마다 뭘 발제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청와대 기사는 민감해서 취재 없이 쓸 수가 없다.


취재를 해도 취재원이 쓰지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고, 청와대의 경우 기획기사도 만들기가 어렵다. 새로운 내용을 알아내야 기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새로운 기사가 나가면 어떤 참모가 이를 기자에게 말했는지 확인하는 내부 시스템이 있는데데 이것 때문에 취재원에게 미안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청와대 3실장이나 수석들과 통화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고 타사 기사의 진위여부조차 확인이 잘 안되는 동네에서 기사를 발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대통령 일정이나 행사, 대변인 브리핑이 없는 날은 정말 갑갑하다. 뭐라도 내야 하는데 잘못 발제했다가는 이상한 기사가 나가고 비웃음을 산다.


출입처가 바뀌어도 발제 압박은 계속 될 거다. 앞으로 수년간은 더 반복될텐데 요새는 굳이 이렇게 살아야하나 싶다. 그냥 대다수 기업인들처럼 정해진 프로토콜에서 정해진 일을 하고, 돌발변수 없이 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 솟아 오른다. 오늘 단독해서 기분 좋다가도 내일 물먹으면 욕먹고 좌절하는, 생동감 넘치지만 매일 긴장해야 하는 이 직업이 버거울 때가 많다.


그냥 이건 이번 순방 사진.


두번째로 돈의 문제. 언시생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무리 메이저 매체라도 기업보다 돈을 훨씬 적게 받는다는 점이다. 지상파 방송이나 종편, 일부 보수 일간지 몇곳을 빼면 연봉이 매우 초라하다. 자꾸 기업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하게된다. 과거에는 기자라는 자부심과 프라이드, 보람이 있었지만 요새는 뭐만 하면 기레기라고 하는 세상이니 적은 돈에도 만족할 수 있는 유인이 적다. 물론 아끼고 아끼면 생활은 되곘으나 가끔은 내가 이런 돈 받으면서 굳이 열심히 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든다.


예전에는 기자를 그만두고 기업으로 가는 선후배들을 배신자처럼 보는 경향이 많았으나 요새는 되레 부러워한다. 물론 떠난 그들도 기자 인맥을 활용해서 정보를 얻고 보고하려면 숱한 고충이 있을 것이다. 기자직을 유지하는 선배 일부는 "기자는 가능성이 많다"고 항변한다. 공부해서 교수가 되거나 정치인을 포함한 전문직종으로 전직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매우 어렵다. 그만큼 전문직이 포화 상태고 기자처럼 얕고 넓게 정보를 접하는 사람이 한 분야만 판 이들과 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일부 후배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볼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분명 나도 아직 저연차고 저들같은 때가 있었을 텐데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뛰다보니 어느덧 몸과 마음이 심드렁해졌다. 후배들은 내가 그랬던것처럼 쉽게 흥분하고 정의를 외치지만 나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영혼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게 되었다. 예전에는 후배를 많이 혼냈지만 이제는 그냥 내가 하고 만다. 지적하고 가르치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 정성이 들고 그럴바엔 내가 해버리는 게 더 편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MZ 세대가 언론사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선후배 관계도 예전같지 않다. 적폐스러운 선배의 갑질 등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만큼 정도 줄었다. 후배에게 술 한잔 살라쳐도 싫어할 듯해서 눈치보는 선배들이 많고 그러니 끼리끼리 놀게되고 접점을 찾지 못해 서로 뒤에서 욕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 헤택을 누렸던 마지막 기자 세대가 현재 15~20년차 정도될 것 같다. 그들이 훈계하면 젊은 기자들은 "몇개 매체 없는 시절에 대접받으면서 펑펑 놀았으면서 말 참 많네"하고 생각한다. 반면 관리자급 기자들은 MZ 세대의 과도한 자기주장, 제대로 모르면서 자존심만 세우는 모습에 질린다고 한다. 내가 볼때 화해나 중재의 여지는 없다. 그냥 서로 이런 생각을 감내한 채 최악의 다툼만 피하고 그냥 가고 있다.


으쌰으쌰 분위기가 사라지니까 재미가 없다. 선배는 기사 계획을 짜고 후배는 현장을 가거나 팩트체크를 하면서 우리가 함께 쓴 기사가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게 바꾼다는 그런 확신과 자신, 보람이 없으니 매일 매일이 똑같고 심드렁하다. 이게 사회의 변화이고, 이미 환경에 발빠른 대기업은 이렇게 변한지 오래라는데 그냥 좀 특별한 재미와 보람이 없는 일상이 무료하고 지겹다.


아직 기자를 시작하지도 않은 언시생이나 대학생 분들께 죄송하지만 이게 언론사의 현실이다. 아직도 메일로 자소서를 봐달라거나(저도 바빠서 봐드리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질문을 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뭉클하지만 활기찼던 수습이 불과 1년만에 급격히 말수가 사라지고 표정이 어두워지는 경우가 90% 였다. 세상 모든 곳을 다루는 언론이야말로 기자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적재적소에 기자를 배치해 효율성을 극대화해야하는데 천편일률적인 취재방식과 기사를 강요하다보니 그 똑똑했던 인재들이 좌절하고 실망하며 이 바닥을 떠난다.


어떻게하면 더 보람차게 일할수 있을까. 일단 내일 발제부터...ㅜ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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