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May 05. 2022

남의 뒤를 캔다는 것


2주 전부터 인사검증 팀으로 차출돼 일하고 있다. 그간 쓴 기사를 좀 소개해보면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520223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521218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521221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521224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522767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523117?sid=100


이 정도가 되겠다.


조각 혹은 개각을 앞두고 국회 기자들은 바짝 긴장한다. 인사청문준비단에서 국회로 청문 자료를 보내면 그때부터는 검증의 시간이다. 청문 자료에는 후보자의 재산과 가족 관계, 세금 납부 사항, 범죄 경력을 비롯해 병역과 성적까지 담겨있다. 누가 더 빨리 자료를 확보하고 이상한 점을 찾아내 확인해 보도하는지가 관건이다.


청문자료가 넘어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 팀은 각자 나눠서 국회 의원회관으로 뛰어갔다. PDF는 조금 늦게 뜬다. 빨리 하드카피를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실을 하나씩 정해서 소관 위원회 후보자 자료를 받아왔다. 두툼한 자료를 훑어본다. 눈이 아프고,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한겨레에 단독이 뜬다. 아.. 좀 더 빨리 볼걸. 후회하고 찾아보고 또 반복.


가장 핫한 후보자는 두 명이었다. 정호영과 김인철. 


정호영부터 복기해보자. 김원이 의원실 발로 한겨레에 가장 먼저 기사가 떴다. 정 후보자의 두 자녀가 아버지가 경북대병원 고위직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경북대 의대에 편입했다는 것. 이후 한겨레에서 두 자녀의 봉사활동 기사도 떴다. 역시 경북대병원에서 봉사를 했고 이를 의대 편입시험 자료로 냈다. 아빠 찬스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수많은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아들이 병역 재검을 경북대병원에서 받았던 점과 자녀들의 심사위원이 정 후보자와 논문을 같이 쓴 사람이라는 등. 그래도 반까이(물 먹은 기사와 관련해 나도 관련 보도를 해 면피를 하는 것)가 쉽지 않았다. 첫 보도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경북대 의대 동창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결국 아들과 딸의 의대 편입 심사위원장 이름을 알아냈고, 그 사람이 정 후보자와 1년 선후배 사이라는 걸 확인했다. 이거만으로는 약했다. 동창회 사진첩에서 두 사람이 언제 만났는지 수백번 체크했고, 결국 아들의 서류전형 전후로 수차례 행사에 동행하거나 미국에 같이 다녀왔다고 보도했다. 


누군가 이렇게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 둘이 만나기만 했지 아들을 붙여달라고 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실제로 정 후보자는 우리 보도가 나가자 다음날 아침 "심사위원장이 누군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경북대 의대와 병원에서 수십년 근무했던 사람이 편입 시스템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언론에게 수사권이 없기에 우리는 정황만이라도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호영은 청문회를 거친 이후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다음은 김인철. 김인철 후보자는 풀브라이트 장학금 논란이 컸다. 중앙일보와 한겨레가 시간차를 두고 보도했다. 김 후보자의 딸 논문에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상 기록이 적혀있었는데, 그 기간 김 후보자가 한국풀브라이트동문회장을 맡고 있었다는 거였다. 또 아빠 찬스 의혹이다.


우리는 비교적 늦게 뛰어들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뭔지도 몰랐는데 한미교육위원단이라는 기관이 선발을 총괄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기관에 세금이 지원되고 있다는 거였다. 교육부와 기재부에서 1년에 30억원이 넘는 돈을 한미교육위원단에 주고 있다. 혈세가 투입되는 장학금 사업에 아빠 찬스가 활용됐다고?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관건은 실제로 김 후보자가 장학금 선정과정에 개입했느냐는 거였다. 동문회의 기부가 위원단의 주된 수입이라는 제보를 입수했고, 실제로 심재옥 전 한미교육위원단장(김 후보자 아들과 딸 장학생 선정 과정에 참여)과 접촉했다. 그 결과 장학금 심사과정이 블라인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역시 또 정황이지만, 그래도 현안이 굴러가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한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결국 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난 지금까지 제대로 검증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국회 경험이 없어서다. 10년차로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많이 배운 것 같다. 조금 정리해보면


1. 인사청문자료를 꼼꼼히 빠르게 보고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토지가 있는 경우 농지법 위반을 우선 보고, 자녀의 경우 병역과 장학금 등 우선 체크. 건물도 직접 가본다. 악덕 건물주일수 있기 때문이다.

2.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얘기되는 의원실을 찾아 나선다. 어차피 이런 건 비서관 보좌관들이 전문이다. 평소 쌓아놓는 인맥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의원실로부터 제보도 받고, 또 취재한 내용을 공유하며 하나하나 기사를 만들어 나간다.

3. 해명을 꼭 따야한다. 인사청문준비단 혹은 후보자와 직접 통화해 해명을 넣는다. 해명이 이상하면 추가로 취재하고.

4. 팀을 잘 짜야될 것 같다. 우선 검색을 잘하는 사람, 당을 오래해서 의원실을 잘 아는 사람, 또 필요하면 토지나 건물을 직접 가볼수 있는 현장파, 검증을 여러번 해봐서 안목이 있는 사람으로 나눈다. 붙어야 할 후보자를 빠르게 정해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도록 한다.


정도가 되겠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결국 자녀 문제인 것 같다. 병역과 장학금, 입학 특혜 등.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등도 문제지만 확실히 체감하는 수준이 아빠, 엄마 찬스와는 급이 다른 듯 하게 느껴졌다.


후보자들은 대부분 초엘리트였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곳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좋은 직업으로 수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강남권에 살았다. 아들 딸 대부분은 어렸을때부터 미국 등에서 유학하고 아예 일반적인 한국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루트로 좋은 학위를 따고 부를 대물림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자체를 비난할 수야 없겠다만 관행이라는 이유로, 돌아가는 특혜들이 눈에 보였다. 그들만의 리그에 좀 짜증이 났다. 


그들이 공직에 나서지 않았다면 나는 그들의 내밀한 삶을 몰랐을 것이다. 헬조선에서 우리 모두 열심히 사는데 어떤 부모밑에서 태어났느냐로 시작부터 달라지는 인생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좀 별로였다. 이런 감정이 스며들면 안되겠지만 더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내가 뭐라고 한 가족을 이렇게 비판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아무리 기자라도 그런 권한이 주어지나, 싶다가도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평생을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특혜와 편법을 더 열심히 들춰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번 아이템을 들고 올때마다 이게 얘기가 되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그래서 후보자랑 무슨 상관인데? 풀브라이트 장학금 자체를 비판하는 게 과연 김인철 검증이랑 어느정도의 연관성을 띄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자녀 문제인데 너무 심한 지적은 자제해야 하지 않나? 라는 의문을 가졌다. 


사실 인사검증 정국에서 별 큰 기사를 쓰진 못했지만, 2주 간 많이 배운 것 같다. 전문성을 내세운 윤석열정부 인사기조에 대한 의구심도 생긴 시간이었다. 다시 한번 하면 좀 더 괜찮을 수 있을텐데.. 그래도 그때는 좀 떠나고 싶다 ^^

매거진의 이전글 요새 근황과 미래 걱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