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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24. 2019

병원식, 맛있나요?

기대하지 말자..


갑작스럽게 수술을 통보받고 혼란스러워 하던 나는 결국 밤을 새고 목동의 한 척추관절 전문 병원으로 향했다. 자정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몹시 배가 고팠다. 걸어갈 수가 없어서 집에서 나와 오전 8시30분경 타다를 불렀다. 목발을 짚고 있던 나를 보고 기사님이 손수 내려 차에 태워줬다. 출근길이라 길은 막혔다. 수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고개를 떨궜다.


이번이 내 세번째 수술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 교통사고가 났다. 학교 앞 문구점으로 새로나온 부루마불을 사러 가던 길이었다. 보행자 통로 사이로 차도가 하나 있었고 학교 앞이 늘 그렇듯 수많은 차가 불법 주정차 된 상태였다. 앞의 차가 시야를 가렸는데 건너편에서 얼마 없던 친구하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반갑게 뛰어가는데 현대 소나타(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 대가 나를 치었다. 공중에 붕 뜬 나는 순간 슬로모션처럼 거꾸로 된 세상을 보았는데 순간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손을 도로에 대고 그 다음으로 머리를 박았다. 집채만한 혹이 났다. 만약 머리부터 떨어졌다면 그 자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다행히 혹은 금방 사그라들었고 머리 대신 양손 경미 골절 수술을 했다. 


두번째는 고등학교 때였다. 항상 맨앞자리에 앉는 조용한 아이였던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괜히 쎈척 하고 싶었다. 학원에서 한 동기와 시비를 트게 됐고 학교 쉬는시간에 몰래 찾아가 자고있던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첫 싸움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뒤지게 얻어 맞았다. 그리고 코뼈가 뿌러졌다. 알고보니 그 녀석이 엄마 친구 아들이라서 보상도 제대로 못받았다. 사람은 살던대로 살아야 한다. 괜히 쎈척하면 안 된다.. 아무튼.

      


병원에는 사람이 참 많았다. 척추 관절 병원답게 다들 무릎이나 어깨, 허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수술이 최종 확정됐다. 오른쪽 무릎 뼈가 살짝 내려앉은 상태라고 했다. 멋모르고 절뚝대며 술자리를 누볐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철심을 박아서 뼈가 내려오는 걸 고정시키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진료를 마치고 피검사 오줌검사 엑스레이 CT 심전도검사를 했다. 입원 수속을 밟았는데 아직 병실이 안 나왔대서 주사실에 잠깐 누워있었다. 수술 아플텐데.. 회사는 어떻게 하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갑자기 동생이 등장했다. 병원 이름을 묻길래 알려줬는데 일 하는 중에 들른 모양이다. 정장차림의 그가 나타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형 괜찮아"하고 묻는데 너무나 듬직해 보였다. 그는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한 뒤 병실까지 나를 데려다 주곤 미팅이 있다며 쿨하게 사라졌다. 따뜻한데 매몰찬 녀석..


병실은 이렇게 생겼다. 앙증맞은 6인실


병실은 6명의 환자가 쓰고 있었다. 나만 32살이고 나머지 분들은 70, 71, 69, 65 세였다. 낙상하거나 운동 중에 삐끗한 분들이다. 비교적 젊은 애가 들어오니 다들 관심을 보였다. 뭔가 민망해서 커텐을 치고 앉아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항생제 들어갈 주사 구멍을 만들어주고 혈압을 쟀다. 그리고 이제 곧 수술실 들어가실꺼니까 준비하세요~ 했다. 보호자가 없어도 수술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민폐끼칠까봐 부모님께 사전에 얘기를 안했는데 동생이 전화드려서 아버지가 수술 후에 오셨다). 


오후 4시쯤 간호사 4명과 조무사 2~3명이 병실로 들어섰다. "이제 수술 가십니다"하며 이동가능한 베드에 누우라고 했다. 오른손에는 링거가 꽂혀있고 여러명이 나를 밀고 3층 수술실로 움직이는데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국가를 위해 몸을 바쳐 더러운 빌런을 잡은 뒤 명예롭게 수술대로 향하는 모습.. 은 아니고 그냥 둔대바리처럼 오토바이 뻉소니 사고를 당했을 뿐이지만. 


수술실은 차가웠다. "일부러 온도를 낮게 조절한다"고 녹색 가운을 입은 사람(간호사로 추정)이 말했다. 수술실은 온통 녹색이었다. 나는 하반신 마취를 했는데 오른쪽으로 돌아눕자 마취과 선생님이 와서 척추부분을 손으로 문지르며 주사를 놨다. 뼈에 뭔가 이물질이 끼는 묵직한 느낌이 들었는데 1분 정도 지나자 발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이 사라졌다. 왼손에는 혈압계를 끼고 오른손은 심전도 장치를 착용한 채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배려있게도, 의사 썜이 올때까지 릴랙스하라는 의도에서 이어폰을 껴줬다. 90~2000년대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김연우의 '이별 택시' 소리가 들렸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내 심경 같았다. 만약 내가 태국 전승기념탑에 가지만 않았어도, 돈 아끼기 위해 걷는게 아니라 택시만 탔어도 수술대에 오르진 않았을 텐데. 


수술은 1시간 정도 걸리는 비교적 간단한 거였다. 수면을 위해 프로포폴 비슷한 약을 주입하는데 자꾸 잠이 안 왔다. 수술 중에도 깨어있을까봐 무서워서 계속 "괜찮으냐"고 물어본 기억이 나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더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가 기억난다. "아이쿠 평소에 술 많이 먹나봐 프로포폴이 잘 안먹히네"라고 했다. 네 그래요, 기자들이 다 그렇죠 뭐..   


수술이 끝나고 베드를 타고 병실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는 다른 세상이었다. 우선 침대에서 움직이질 못한다. 수술을 마친 오른쪽 다리는 향후 6주간 땅을 딛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계속 침대에 앉아있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배뇨, 배변이 가장 큰 문제였다. 수술 때문에 금식했기때문에 배는 아프지 않았지만 오줌이 심하게 마려웠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수술 직후라 움직이면 안되기때문에 오줌통을 쓰라고 했다. 자리에서 해결하라는 거였다.


남성용 병원 오줌통의 모습


알겠다고 하고 커튼을 치고 일을 보는데 병실이 너무 조용해서 오줌방울이 떨어지는 또르르.. 소리가 다 들렸다. 배뇨감은 엄청난데 긴장한 나머지 오줌이 또 잘 나오지를 않았다. 일단 받은 걸 베드 옆에 걸어뒀다.


수술 이후에는 하반신 마취가 풀릴때까지 계속 누워있어야 한다. 약 4시간동안 상체를 들어올리면 안된다. 머리도 들어서는 안된다. 잠은 안오고 오른쪽 다리는 너무 아픈데 누워서 멀뚱멀뚱 병실 천장을 쳐다봤다. 너무 배가 고팠다. 19시간째 공복이라 물 조차도 못먹은 상태였다. 오후 8시쯤 되자 하반신마취가 풀리고 물을 마실 수 있게됐다. 허겁지겁 병원용 물통에 담긴 물을 마셨다. 근데 너무 많이 마시면 또 오줌이 문제가 되니까 두 모금 정도 먹고 말았다. 너무 괴로웠다.


환자용 빨대물통. 누워서도 물을 마실수 있고, 물도 흐르지 않는다! WOW!


새벽 12시가 되고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 흰 죽과 생선, 백김치와 정체를 알수 없는 나물이 나왔다. 국물은 없었다. 정신없이 죽을 퍼먹고, 생선을 뜯었는데 아무 맛이 없었다. 저염식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입맛이 없었던 것이다. 내 생에 거의 처음으로 입맛이 없었다. 많이 먹으면 또 생리현상이 올 것같아 적당히 끄적이다 그만 두었다. 


24시간 공복 후 첫끼로 나온 죽


실제로 환자들을 보니 밥을 많이 먹지 않았다. 다들 입맛이 없다고 했다. 다만 오전 7시, 오후 12시, 오후 5시로 이어지는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은 무료한 병원생활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간호사와 조무사, 영양사 들이 참 고생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병원식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국 종류(저염)에 메인요리(고기반찬), 그리고 채소와 김치 등으로 구성된 식단이다. 요거트와 치즈는 빼놓을 수 없는 간식이다. 신기한 것은 찌개 맛이 다 똑같았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미역국이나 시금치찌개 등이 다 비슷한 맛이 났다. 면회온 이도 먹어봤는데 맛이 똑같다고 했다. 어떤 원료로 만드는진 모르겠지만 이 음식들이 이 지난한 시간을 딛고 일어날 영양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평소 먹지 않는 밥도 꾸역꾸역 넘겼다. 향후 6주간 계속 앉아있어야 하니 식단조절도 필요할 것이다. 자칫하면 지금보다 더 돼지가 될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수술 직후니 뭐라도 살을 채워넣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일주일이 채 못되는 병원생활은 새로웠다. 어릴적 잠시 입원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간호사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목도했고 우리 사는 동네에 얼마나 아픈 사람이 많은지도 새삼 느꼈다. 나는 1시간정도 짧고 간단한 수술을 했지만 십자인대가 파열되거나 허리에 손상이가면 8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언제 어떻게 사고가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기습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평소 보험청구와 병원 시스템을 잘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본격적인 병실 생활은 다음화에서 적어 보겠다. 나를 포함한 환자분들, 그리고 환자를 케어하는 보호자와 의료계 종사자 분들. 크리스마스를 앞둔 오늘 다들 평안하시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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