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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27. 2019

6인실 병실에서 '인싸' 되는 법

사진에 보이는 흰색 커튼은 소통을 열고 닫는 벽이다


입원이 확정되고 주사실에서 얼마간을 기다려 6인실 병실에 입성했다. 입구에 환자 이름과 나이를 봤다. 70대와 60대, 50대 분들이 골고루 계셨다. 30대는 병동 전체에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병실에 들어서자 시선이 느껴졌다. 젊은 애가 절뚝 거리며 목발짚고 들어오니 병상에서 어르신들이 다 쳐다봤다. 꾸벅 인사를 드리고 문쪽 병상에 앉았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자 다들 궁금한 눈치였다. 그런데 딱히 먼저 말을 꺼내기도 애매해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나빼고 다섯분은 병실에 계신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가장 주요한 화제는 '꺾기'다. 꺾기가 뭔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무릎 수술 재활치료의 한 단계란다. 병원 내 재활치료실로 이동해 수술을 마친 쪽 무릎뼈를 푸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주된 관심은 꺾기 였다. 어떤 치료사가 잘 꺾고, 어떤 치료사는 잘못 꺾어서 너무 아팠다는 식이다. 꺾기를 하지 않으면 뼈가 다시 붙는과정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고 한다(근데 다시 찾아보니 꺾기 재활치료가 별 소용이 없고 아프기만 하다는 얘기도 많던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환자들은 간호사가 와서 꺾기하러 이동한다고 하면 매우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어르신은 "할매들이 잘 참어. 근데 한 할매가 꺾기 받고 와서는 너무 아파서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한 치료사가 왼쪽 무릎은 살살 하더니 오른쪽 무릎은 사정없이 꺾어서 고통에 눈물이 났다는 환자도 있었다. 나도 꺾기 치료를 받을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만약 꺾기 대상자라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았다. 그 밖에 이게 몇번째 수술이라느니, 이 병원이 평판이 좋다느니 하는 식의 대화도 오고갔다.


병실 내 자리


자신의 직업이나 고향, 가족들에 대한 얘기도 자주 언급된다. 병원이다보니 병문안 오는 가족과 친구들이 많은데 주로 자랑이 이뤄진다. 첫째놈은 뭐를 하고 둘째놈은 돈이 많고 셋째는 착하고 하는 식이다. 몸이 아프다는 공통점에서인지 들어온 위문품은 대개 나눠 먹는다. 귤과 사과는 물론이고 고구마, 과자, 음료수, 배즙, 사과즙 등을 수시로 나눴다. 나는 아무것도 드릴게 없어 그저 죄송할 따름이었다. 


제주도에서 오신 옆자리 아저씨는 귤을 먹으며 제주도 귤의 풍미와 단맛을 이야기했다. 건너편 아저씨는 나와 고향이 같았고, 그 옆자리 아저씨는 과거 아버지와 같은 직장에 있던 분이었다. 참 좁은 세상이다. 그러면서 "아이구 우리 총각이 참 잘생겼네" "피부가 너무 좋네" "똘똘하게 생겼네"라고들 하셨다(자작 아님). 그냥 웃고 말았다.


대화는 주로 한 환자가 보호자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이 끼는 형태로 이뤄진다. 만약 피곤하거나 자리에서 소변을 보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할때는 커튼을 친다. 대화를 단절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 아저씨는 24시간 내내 커튼을 치고 있다가 다른병실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만큼 시끄러웠던 탓이다. 무릎과 다리를 다쳐 제대로 움직일 수 없고, TV시청도 지겹고 하니까 대화가 유일한 낙인 것이다. 고작 3일 있었는데도 사람 정신이 나갈 정도인데 2~3주 입원하시는 분들은 오죽할까.


아, 또 하나의 중요한 대화주제는 배변 여부였다(더러운 이야기 죄송). 병원식은 별로 맛이 없고 수술 후라 입맛도 없어서 별로 밥을 안 먹었다. 무릎이 아프니 움직일 수가 없고 계속 앉아있거나 누워있으니 배가 안 아팠다. 속으로 들어가는 건 있는데 밖으로 나오는 게 없었다. 그러니 "오늘 배변 보셨어"가 환자들 사이의 인사처럼 된다. 변을 3일 정도 보지 않으면 슬슬 불안해진다. 변비인것 같은데 약을 먹어야해서 밥을 거를수는 없고 내 속에 뭔가 퇴비가 쌓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환자들은 변비약을 먹는 등 필사적이다. 건너편 아저씨가 새벽 3시쯤 배변에 성공한 얘기를 거의 1시간 정도 했다. 변의 크기와 양, 질감 등을 세세히 묘사하는데 다들 넋놓고 들었다. 아아, 툭치면 나오던 변을 보고싶은 게 입원 3일만에 간절한 소원이 됐다. 처량하다..


척추나 무릎, 다리, 어깨 환자에게 화장실 가는 것은 참 곤욕이다. 수술 이틀 후부터 목발을 짚고 다닐수는 있었는데 화장실 갈때마다 각오를 해야 한다. 목발을 짚고 병실에서 3m 거리의 화장실에 가면 소변은 그냥저냥 되는데 대변이 어려웠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으면 기브스때문에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자세를 바꿔가며 안정을 찾는다. 다만 변이 나오지 않아 20분을 기다렸다. 여전히 소식이 없다. 밖에서는 또다른 후천적 변비 환자가 쿵쿵대며 문을 두드린다. 환장할 노릇이다. 몸을 일으켜 다시 병실로 돌아간다. 공기가 마치 사하라사막처럼 건조하다. 병실에선 티비 시청이 한창이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며 송해가 늙었느니 안늙었느니 했다.




병실 동기분들과는 미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누군가가 수술을 받으러 나가면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쾌차하길 기도했다. 꺾기 치료를 마치고 온 어르신에겐 "아프진 않으셨냐"고 말을 건넨다. 말 한마디, 한번 건네는 음료수가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고 있고 다들 쾌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리라. 다친 환자도 고생, 보호자도 고생, 간호사와 의사, 조무사와 간병인도 모두 고생이다. 


제목은 인싸되는 법이라고 적었다만 병실에서 인싸가 되어봤자 무엇하겠는가. 빨리 건강해져서 퇴원하는 게 상책이다. 모두가 힘들고 아프니 함께 의지하고 공감하면서 이놈의 부상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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