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Dec 23. 2019

네? 무릎뼈가 나갔다고요?

목발과 함께하는 두달의 기록


태국에 다녀온지 일주일 째.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에도 불구하고 안심을 했더랬다. 태국과 한국에서 각각 한 차례씩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뼈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귀국 직후 의무감에 숱한 송년회를 전전할 즈음, 한 술자리를 마치고 택시를 타는데 오른쪽 무릎이 찢어질 듯 아팠다. 이상하다 싶어서 지인이 추천해준 정형외과에 들렀고 MRI를 찍은 결과 골절이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경골 상단의 기타  골절, 폐쇄성'이라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수술하고 입원하지 않으면 뼈가 내려앉아 신경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회생불가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일이야. 난 그냥 태국에서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은 오토바이에 치였을 뿐인데, 아무 잘못이 없는데..


여자처자 수술 날짜를 잡고 목발을 주길래 딛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노랬다. 날은 추운데 목발때문에 걷기는 힘들고, 택시나 타다는 오지 않고 혼자 우두커니 거리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일이, 싶었는데 그럴 수록 연말에 내 상황이 억울하고 답답했다. 7년전 입사 이후 한번도 한달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사실 내가 없어도 이 공장은 잘 돌아갈 것이지만 그래도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부거웠다. 팀장, 부장과 통화를 하고 절뚝거리며 오피스텔 1층 문으로 들어섰다. 출입문 여는 것 하나도 쉽지가 않았다. 목발 짚은 두 손으로 열기가 어려웠다. 뒤따라 오던 한 여성이 문을 열고 기다려줬다. 엘레베이터도 비슷했다. 한 남성이 '문열림'을 누른 채 10초이상 서 있었다. 목발의 힘은 그렇게 대단했다. 배려해주는 것이 고마웠지만 한 순간에 달라진 내 모습과 내 건강이 무서워서 심란했다.


난 수술을 잘 마쳤다. 오른쪽 무릎에 나사 1개를 박아 뼈가 내려오지 못하도록 했다. 오른쪽 다리 전체에 반깁스를 하고 부목을 댔다. 약 6주간 땅에 오른발이 닿지 않도록 하는 특명이 내려졌다. 동시에 목발도 하고 다녀야했다.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회사에 전화해 두달간 연가를 냈다. 회사 분들은 진심으로 걱정을 해줬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안 그래도 청와대 일이 바쁘고 지치는데 민폐를 끼친 것 같았다. 반면 내 건강이 먼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일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사고가 나서 두달 쉬는것 정도는 용인되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회사 누구는 또 뒤에서 나쁜 얘기를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12월 23일부터 2달동안 병가를 내고 오른쪽 무릎 재활 치료를 하게 됐다. 비슷한 사고를 당한 언론사 동료가 있어 물어봤더니 수술 후 첫 2주는 무조건 쉬어야 하고, 그 이후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책도 읽고 라디오도 듣고 넷플릭스도 보고 하면서 시간을 때워도 도저히 하루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잡념이 드는데 사고를 당한 내 처지를 비관하고, 회사와 출입처에서 잊혀질 것을 두려워하며 자책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안 될 것 같았다. 2005년 허핑턴 포스트를 창간한 아리아나 허핑턴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의 자서전 ‘제3의 성공’은 ‘2007년 4월 6일 나는 피를 흥건히 흘린 채 홈오피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로 시작한다. 책상에서 일어서다 실신해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광대뼈가 부러졌다. 매일 18시간 이상 일하며 누적된 수면 부족이 원인이었다. 병상에 누워 ‘이런 삶이 성공한 것일까’ 한참 생각했다는 그는 퇴원 이후 허핑턴 포스트의 근무 환경을 뜯어 고친다. 


어쩌면 내게도 아리아나 허핑턴과 같은 기회가 찾아온 건지도 모른다. 물론 맡은 업무의 비중과 영향력에선 비교가 안되겠지만 7년차 병아리 기자에게도 일은 거의 전부였다. 친구는 대부분 기자, PD, 아나운서 혹은 공무원, 기업, 당 쪽 사람이고 거의 매일 술자리에 찌들어 살았다. 아침 일찍 출근해 브리핑을 챙기고 타사에 낙종이라도 하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모든 직장인이 치열하게 살겠지만 청와대에 온 이후 삶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안 좋은 일로 잠시 직장을 쉬게됐지만 아리아나 허핑턴이 삶의 방식을 바꾼 한 사고처럼, 내게도 긴 인생에 있어 잠시 쉬어가며 나를 돌아보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패배감에 젖어 두달을 허투루 보낼 것 같다. 


기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이 두달의 기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매거진을 만들었다. 침대에 눕거나 소파에 앉아서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있는 나날이건만 잠시 쉬면서 둘러본 세상은 브리핑과 마감에 쫓기던 불과 일주일 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 신변잡기적 나날과 그 속의 세세한 깨달음을 하루하루 기록하며 두달을 버티려고 한다. 순전히 나를 위한 글이다. 내 멘탈을 부여잡기 위한 일기 쓰기다. 대통령을 취재하며 오만해진 내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황망하고 허무하고, 갈길이 답답한 이들에게 내 미천한 글이 조금이라도 공감과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종시로 발령났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