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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23. 2022

세종시로 발령났어요

기획재정부 청사의 모습


새벽 5시30분. 요란한 알람에 눈을 뜬다. 씻고 택시를 탄다. "서울역 가주세요" 정신없이 졸다가 역에 도착하면 6시30분. 기차 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았다. 비몽사몽간에 KTX에 몸을 싣는다. 옆 자리엔 딱 봐도 공무원처럼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한 시간 가까이 달려 오송에 닿는다. 양복 차림의 무리가 우르르 BRT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BRT에 탑승하면 20분을 달려 정부세종청사 북측에 내린다. 약 10분간 걸어서 기획재정부 청사에 도착한다. 


요새 나의 아침 라이프다. 5년 넘게 일했던 정치부를 떠나 경제부로 발령난 지 딱 일주일이 됐다.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를 맡게 됐다. 세 부처 모두 세종시에 있다. 그래서 나도 세종시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인사여서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집은 구했고, 아직 이사 전이다. 그래서 통학하듯 새벽마다 새종시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세종시 나성동 먹자골목


세종이 처음은 아니다. 약 7년전 보건복지부 출입 때도 가끔 내려와서 복지부 청사에 들렀다. 하지만 그때는 일주일에 한번, 대변인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아무래도 삶의 터전을 옮기는 지금과는 느낌이 달랐다.


사실 문재인정부 청와대와 국민의힘 출입을 거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쳤던 것 같다. 매일 긴장해야 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이 이어지고.. 기자의 삶을 택한 이상 어쩔수 없는 부분이긴 했으나 뭔가 새로운 분야가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이 마음속에서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10년 된 기자질을 좀 환기하고 공부도 하고 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그랬던 내게 세종행은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밤되면 황량한 세종시


고작 일주일이 흘렀지만 세종의 몇가지 특징을 알아냈다. 일단 청사가 위치한 어진동 주변으로 도담동, 나성동에는 모텔이 없다. 세종시의 도심지역은 애초에 주거지역으로 설정됐다. 서울에 있던 청사가 내려오는 만큼 공무원들이 빨리 정착하라는 명목이었다. 애초 서울서 통근 버스도 운영됐지만 최근에 그마저도 사라졌다고 한다. 도심에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섰으니 숙박시설은 외곽으로 밀려났다. 


또 세종 도심에는 초중고교 등 교육시설이 많은데 모텔이 들어서는 걸 학부모와 공무원들이 반발한 영향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초 세종시의 도심중 하나인 보람동에 모텔이 들어서려했는데 이를 막기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생겼고, 반대 서명만 5500명 이상에게 받았다고 한다. 매우 신기한 동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숙박시설은 없고 하루에 15만원짜리 호텔만 하나 덩그러니 있다. 에어비앤비 숫자가 많지도 않고.. 세종에 거처가 없다면 어디선가 하루 묵기는 매우 애매한 상황이다.


오후 7시. 퇴근하는 공무원 분들


또 하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밤만 되면 유령도시처럼 변한다. 약속을 마치고 오후 10시30분 쯤 하루 거처를 마련한 곳으로 이동하는데 약 10분동안 사람 한명을 보지 못한 기억이 난다. 건물은 반듯한데 사람은 없고 휑하고 쓸쓸하고.. 세종의 낮과 밤은 좀 다른것 같다. 그래도 주요 먹자골목이나 유흥가에는 대전과 청주 등에서 젊은이들이 넘어와서 논다고 한다. 어디가 먹자골목이고 놀만한 곳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교육부 연결통로에서 찍은 청사 전경.


그래도 세종의 풍경은 참 아름답다. 서울서 느낄 수 없던 나무와 자연, 그리고 날것의 바람 냄새를 느꼈다. 벌써부터 빨갛고 노랗게 익은 단풍은 보기에 참 좋았다. 기이한 형태로 삭막하게 이어진 청사를 울긋불긋 자연이 감싸고 있으니 조화가 썩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복 부대는 서울식으로 따지면 따릉이(1년에 3만원만 내면 된다고 한다)를 타고 이동하고, 세그웨이를 탄 공무원도 자주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나 보건복지부 앞은 항상 시위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청사 주변 음식점은 점심 시간마다 빈틈없이 들어찬다. 공무원들은 엘레베이터에 기자가 타면 입을 다물지만, 근처 새로 생긴 술집 어디가 좋다는 식으로 서로 대화를 나눈다. 여기도 사람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세종에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설레는 마음이다. 새로운 환경, 또 더 새로운 인연과 운명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다가올까. 다음주 이사를 마치면 본격적인 세종 라이프가 시작된다. 많은 분들께 세종의 매력을 알리고 싶어 뉴비의 세종 적응기를 주기적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혹시 세종 선배님들이나 공무원분 계시면 좋은 세종 명소나 생활 꿀팁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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