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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15. 2022

진명여고 국군 위문편지


온갖 병폐와 비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의 선진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군인을 대하는 그들의 품격을 목도할 떄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우대 정책을 제외해도, 국가를 위한 군인의 희생을 숭고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비행기 1등석을 군인에게 양보하고,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관공서나 은행에서 군인의 민원을 가장 먼저 처리해 준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무수한 전쟁을 거치며 우리를 대신해 싸우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뛰었다는 공동체 의식이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물론 그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더 논해야 할 문제겠으나. 군인에 대한 복지가 젠더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미국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질 때가 많았다. 


선진국에 비해 급속한 민주화를 거치는 와중에 군대에 대한 이미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힘으로 국민을 찍어누른 권력의 모습이 크다. 물론 그들도 미쳐버린 일부 수뇌들의 명령에 따른 것일 테지만. 총을 들고 자유를 억압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 군대는 민주화 이후 애꿎은 남녀 갈등의 온상처럼 되어버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방에서 추위에 떨면서 가족과 국민을 위해 불침번을 서고 있을 젊은 청년들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해서 손이 떨릴 지경이다. 


나도 예비역 출신으로서 진명여고 위문편지 사건을 보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봉사활동 점수를 걸고 학교가 억지로 시켰다고 해도, 아무리 시험이 끝난 직후라 짜증이 났다고 해도 '눈 열심히 치우시라' '샤인머스캣 진짜로 나오느냐' '비누를 줍지 말라'는 식의 골빈 행동은 용서받을 수가 없다. 지금은 남북 분단 상황이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고 있다. 전쟁이 터지면 8줄짜리 편지 쓰기도 싫어하는 저런 정신나간 애들을 위해 제일 먼저 희생할 사람들이 군인들이다. 고등학생이면 곧 성인이 될 나이인데 사리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저딴 풍경을 보면 치가 떨린다. 학교는 도대체 왜 사전 데스킹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고. 


물론 위문편지가 과거의 낡은 유물인건 맞다. 왜 주로 여고생만 군인에게 글을 적어야 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아예 진명여고 학생들의 수강 신청을 금지한 학원 대표도 선을 넘었다 싶다. 


근데 이런 걸 다 떠나서, 편지 하나로 남녀 진영이 전쟁처럼 피튀기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편지를 받은 군인은 어떤 생각이 들까. 상처받았을 그들이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다. 제대로 데스킹을 하지 않은 학교나, 학교가 강요했다며 반박글 올리는 진명여고 학생이나, 이때다 싶어 싸우는 페미와 남초들의 공격 가운데에 정작 군인에 대한 예우 논리는 빠져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젠더 이슈를 걷어내고 국가 보안과 애국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를 두고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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