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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30. 2021

목욕탕

그냥 목욕탕 사진 하나 검색해서 넣었다


주말 아침마다 동네 목욕탕에 간다.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는 못 갔고, 요새 들어 조심하며 다닌다. 토요일 오전 목욕탕은 붐빈다. 주로 50대 이상 중년 남성들이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온탕에 손을 넣어본다. 열탕은 너무 뜨겁고, 온탕에 자리를 잡는다. 후욱, 하고 뜨거운 기운이 피부 속으로 들어온다. 한 주간 들었던 말과 생각을 온수에 녹여 내린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이 한데 섞여 땀과 함께 흐른다.


목욕탕에 혼자 가니 등을 밀수가 없어서 요새는 조그마한 사치를 부린다. 세신사 분들께 때를 미는 것인데, 가격은 보통 2만원이다. 주로 아저씨들이 세신을 신청하는데 30대 새파란 나로서는 눈치가 좀 보였다. 그러다 한번 세신을 받아봤는데 신세계였다. 이후로는 매주 세신사분께 몸을 맡기고 있다. 10분간 탕에 몸을 담갔다가 나와서 2만원을 내고 다시 10분간 불린 후에 목욕탕 한켠에 마련된 침상? 같은 곳에 눕는다.


세신사 분들은 대개 40~50대다. 그들은 매우 노련하다. 작업을 시작하기전에 때밀이를 손에 끼고 한번 세게 부딪친다. 팡! 소리가 난다. 왜 그렇게 치느냐고 물어봤는데 때밀이 타올을 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들은 앞->오른쪽->왼쪽->등 순서로 때를 민다. 스타일은 각자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게 하는 분도 있고 팔은 세게, 다리는 살살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전문가다. 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내 목을 보고 "평소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죠? 자세가 잘못 됐다"고 한다. 다리를 만져보고는 "근육이 뭉쳐있어서 걸을때 힘들겠다"고 조언한다. 여러 사람의 때를 미는 그들의 팔은 근육으로 점철돼 있는데, 생활형 근육이다. 내실있고 단단해 보인다. 


2만원짜리 코스는 대개 25분정도 걸린다. 온몸의 때를 밀고 발바닥의 각질을 숫돌? 같은 걸로 제거하는 작업도 있다. 이후 온몸에 비누칠을 해주고 머리도 감겨준다. 마친 뒤 샤워를 하고 목욕탕을 나서면 즐거운 휴일을 알차게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 세신사 분은 하루에 많으면 20명이 넘는 사람의 때를 민다고 했다. 직업 정신을 발휘해 몇가지를 물어봤는데,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생계가 막막하던 차에 마사지를 배웠고 덩달아 세신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세신으로 아들 둘 대학까지 보냈다고 했다.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활력을 주는, 굳은살이 박힌 그의 손에 얼마나 많은 노고가 담겼을까. 삶과 노동은 참 숭고하다. 나처럼 삶에 지친 이가 잠시 쉬어가는 목욕탕에서도 누군가는 삶을 가꾸고 꿈을 다진다. 



어린시절 아부지는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우리 형제를 깨웠다.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간 목욕탕에서 아부지와 아들들이 나란히 앉아 때를 미는 광경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그런 우리를 많은 이들이 부럽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등을 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남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다.


탕안에서, 그리고 때를 밀면서 아부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중고딩때는 성적 얘기를 했고 대학때는 취직 문제를 논했다. 기자가 되고 나서는 가끔 집에 내려가 목욕하러가서 여러 시사 관련 잡담을 했다. 아부지는 등밀어줄 사람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장성해서 떠나간 아들들이 그립다는 얘기로 들렸다. 


여의도의 한 목욕탕에 간 적이 있다. 평일 오후에도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연로한 노신사부터 영업사원처럼 보이는 청년들도 오후 2~3시쯤 사우나를 찾았다. 은퇴했는데 찾아주는 이 없어서, 아니면 외근 나왔다가 몰래 잠시 들렀을 수도 있겠다. 탕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그들을 보며 사는 건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이후 많은 대중목욕탕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정겨운 느낌의 목욕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쪽에선 나이 지긋한 이발사가 TV로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고, 평상에선 맥반석 계란을 까먹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누구는 10분에 2000원 하는 안마기에 몸을 기대고 있고, 오래된 락카룸에선 시큼한 나무냄새가 어렴풋이 올라오는 그 따뜻한 풍경의 장소가 오래오래 지속됐으면 싶다. 


초딩 시절 아부지의 목욕탕 호출은 진짜 너무 싫었는데, 나도 이제 나이를 먹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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