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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Feb 02. 2022

기자가 본 영화 '더 포스트'  


이번 설 명절에 영화 '더 포스트'를 보았다. 사실 업계 종사자로서 기자나 언론 관련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일단 좀 오글거리기도 하고, 영화 속 열혈기자의 모습과 내 현실이 극명히 대비되는 게 초라해서다. 자본 혹은 권력에 맞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기자를 다룬 영화는 대개 텐션이 높다. 울분과 감정, 신파가 이어지는 데 더 포스트는 그 밀도가 좀 약해서 좋았다.


네이버 영화 댓글에 '한국의 기레기 들과는 참 대비되는 참 기자를 보았다'는 평가가 많던데 그닥 공감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과 지금의 한국은 좀 다를테지만 그래도 워싱턴포스트 기자와 사주의 결단과 선택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선택의 중요성 같다. 어떤 기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언론사는 매일 판단에 부딪친다. 현장 기자가 가져 온 아이템을 일단 살릴 것인가 킬할 것인가. 또 지면에 싣는다면 원고지 몇매로 몇면에 배치할 것인가. 이 기사는 과연 믿을만한 취재원을 통해 취재된 것인가. 이 기사가 사회에 미칠 파장은 무엇이며 우리 회사에 끼칠 영향은 어느정도 인가. 언론사 소속 기자 혹은 데스크, 편집국장과 부국장, 편집인과 사장은 매일 이런 고민을 한다. 수차례 편집회의를 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집단 지성을 발휘해 최선의 선택을 도출하기 위해 논의한다.


선택은 책임을 낳는다. 우리 언론사만 A 기사를 넣지 말자고 결정했는데 타사에서는 다 썼다면 우리의 판단이 틀린 셈이 된다. 아무리 팩트 체킹을 열심히 했어도 기사에 오류가 있었고, 이게 걸러지지 않은 채 지면에 실렸다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데스크, 부장, 부국장, 편집국장, 사장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만큼 철저한 확인과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기사를 쓰기로 선택한 순간 내 어깨엔 책임이 둘러진다. 그 혹독했던 수습기간은 그 책임을 몸소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난 영화 내내 특종을 발굴하고 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집국장보다 사주의 고뇌에 더 눈길이 갔다. 이 기사를 내보내면 평생을 일궈온 회사가 망할 수 있다. 또 몇십년 지기인 정부 고위 당국자와도 관계가 끊어진다. 회사 자체가 사라지면 진실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숙고가 이어진다.


영화는 워싱턴 포스트 사주를 권력 혹은 자본과 결탁한 모습으로 그릴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기사 게재를 요구하던 편집국장도 사주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의 동의를 절절하게 구한다. 결국 사주는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위대한 선택을 했고 다른 언론사가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인용하며 힘을 보탠다.


영화 더포스트의 실제 모델 두명. 왼쪽이 워싱턴포스트 사주, 오른쪽이 편집국장 이었다.


현직 기자로서 좀더 느낀 바를 정리해 보면


1. 평소 취재원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뉴욕타임즈에 물먹은 워싱턴 포스트로선 국방부 보고서 원문 확보가 급선무였다. 타임즈에 보고서를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포스트 기자 하나가 평소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구한 뒤 타임즈가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보도한다. 물은 먹었지만 제대로 반까이를 한 건데, 이게 가능했던 건 스쳐지나갔던 인연의 힘 이었다. 언제 무엇이 터질지 모르니 많은 사람을 사귀고 인맥 관리를 적절히 해야 한다는 점.


2. 친구와 취재원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 극중 편집국장이 편집인에게 친구와 취재원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기자로 대하지 않고, 정말 친한 지인으로 생각하는 정부 관계자가 있다. 그가 술자리나 저녁 자리에서 기사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시답잖은 내용 말고 정말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라를 바꿀 만한 기사라면 그와의 신의를 버리고 기사를 써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난 이게 아직도 고민이다. 일단 신뢰를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라고 배우긴 했지만 결국엔 내게도 한두번쯤은 선택의 시간이 올 텐데 어떻게 할 것인가.


3. 저 때나 지금이나 법원의 힘이 대단한 것 같다. 닉슨 대통령의 보도 금지 가처분 판결을 포함해 모든 사회적 갈등과 논란의 해결책이 여전히 법원에서 나오는데, 판사에게 주어진 권력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도 개인의 양심과 법적 근거를 가지고 판결을 내리겠다만 너무 유동적이고 변동성이 크다. 검찰 개혁도 중요하지만 불합리한 판결로 인한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더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4. 언론사 고위직의 열린 마인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취재 현장을 거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른 이들에게 높은 자리를 맡기고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것은 좋은 판단으로 좋은 기사를 쓰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고집이 강해지고 자신의 말만 맞다는 독선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자세를 버리고 잘 듣는 귀가 필요하다. 워싱턴 포스트가 역사적인 보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주를 비롯한 고위직이 일선 기자들의 이야기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근데 과연 한국 언론사 중에 저렇게 유연하게 운영되는 곳이 있기나 할까. 하명 기사나 안 내려오면 다행인 것을.


5. 재밌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이 편집국장 집에서 보고서를 펼쳐놓고 맞춰보며 기사의 조각을 끼워가는 모습을 보며 과거 권리금 문제를 취재했던 생각이 났다. 저연차였지만 이끌어주는 선배들과 함께 토론하고 현장에 가 보고,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또 기사로 쓰고 국회 논의가 이어지고 하면서 내가 그래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일에도 나와 일했지만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요새는 그런 느낌이 잘 안 든다. 매일매일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후배들도 그렇게 느끼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어차피 기자 일 똑같은데 기왕이면 큰 회사에서 돈많이 받고 일하고 싶다는 분위기가 큰 것 같다.


최근에도 한 후배가 메이저 방송사로 이직하는 걸 보며 마음이 헛헛했던 적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되면 더 좋은곳으로 옮기는 게 순리이겠으나 아직도 언론사엔 이상한 정 같은 게 남아 있다. 그를 달래보고, 또 다독여 보고 지금은 시궁창이지만 함께 바꿔 나가보자고 한다. 옛날에는 이런 꼰대 문화가 싫었지만 그래도 아무도 잡지않고 '응 잘가'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후배나 선배를 잡을 유인이 없다. 월급은 적지만 우리 좋은 기사 함께 썼잖아요, 좀 만 더 참아봐요 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게 우리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동고동락한 이가 현실의 벽을 느끼고 회사를 옮기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항상 가슴 아픈 일이다.


매번 세상을 뒤흔들만한 특종 거리를 쓸 수는 없겠지만 좀더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일할 방법이 있을텐데, 아쉽다. 그래서 50년 전의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이 펜타곤 보고서를 서로 맞춰가는 모습이 썩 부러웠다. 국민을 기만한 정부에 맞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그 자부심이 부러웠다.




영화 말미에 사주 역할을 맡은 메릴 스트립이 말한다. "죽은 남편이 뉴스를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요? 역사의 초고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항상 옳을 수는 없고 항상 완벽한 것도 아니지만 계속 써나가는 거죠. 그게 우리 일이니까."


어떻게 되든 끊임없이 취재하고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기자질을 계속 하려면 선배들이 해왔고, 또 후배들이 해 나갈 이 무한궤도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내 평생 워싱턴 포스트의 펜타곤 보고서 같은 특종 기사를 쓰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그냥 그래도 이왕 할 바엔 꾸준히 성실하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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