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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10. 2022

MBC와 대통령 1호기

2018년 대통령 1호기 탑승 직전 찍은 사진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입 시절 대통령 순방을 네 차례 동행했다. 대통령과 함께 공군 1호기를 탔다. 세금으로 가는 게 아니다. 당연히 각 언론사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돈을 낸다. 가끔 기사 댓글에 기레기들이 세금 축낸다는 비판을 볼때마다 혀를 내두르곤 했다.


일반 비행기와 똑같지만, 인천이나 김포공항이 아닌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나가는 점이 다르다. 게이트가 따로 없고, 간단한 짐 수색 등을 거쳐 직접 활주로로 나가서 비행기를 탄다. 1호기에는 공군과 대한항공 승무원이 함께 식사나 음료 등의 서비스를 진행한다. 


기자들이 제일 먼저 1호기 뒷쪽에 탑승하면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이 하나둘 비행기에 오른다. 이후 참모들이 타고, 대통령은 제일 늦게 탑승한다. 참모들은 1호기 뒷문으로 들어와 앞으로 이동하고 대통령은 직접 앞쪽에서 타기 때문에 기자들과 마주치지 않는다. 출국이나 귀국 풀(출입기자단을 대신해 취재)에 걸렸을 때야 비행기에 타고 내리는 대통령을 볼 수 있다. 


1호기에서 긴밀한 취재가 이뤄질 수는 없는 구조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진, 함께 타는 내각 관계자들과 아예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 칸이 나눠져 있어서 이동할 수도 없다. 아주 가끔 대통령이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거나 일부 참모들이 기자들 칸으로 넘어오지 않는 이상 마주치기 어렵다. 내가 동행한 네 번의 순방은 코로나19 사태 전이었지만 이런 이벤트도 없었다. 일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은 1호기를 타고 순방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궁금해했다. 대단한 영예이자 명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별건 없었지만, 그래도 청와대 사람들이나 국회의원, 장관이나 차관 등이 타는 1호기를 한번쯤은 타보면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실제로 처음 1호기를 탔을때 주변 기자들이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고 놀려서 당황했던 적도 있다. 친절했던 승무원들과 또 경호처 직원들과 나눴던 즐거운 대화가 가끔 생각난다. 여러번 마주치다 보니 정도 들었고, 다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넘쳐 보였다. COP26이 열렸던 영국을 떠나며 마주했던 창밖의 풍경도 떠오른다.



대통령실이 이번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순방 때 MBC 기자들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이번 순방에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다고 설명했다. MBC가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를 반복해 온 만큼 이번에는 '대통령 전용기 탑승'이라는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MBC는 지난 9월 미국 뉴욕을 방문한 윤 대통령의 사적 발언을 보도하며 갈등을 빚었다. 당시 MBC는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미 대통령)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넣어 방송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 또 MBC는 'PD수첩'에서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논문 논란을 방송하며, 대역을 쓰고도 재연 고지를 하지 않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론 MBC 보도국이 아닌 시사교양국을 중심으로 답을 정해놓고 정권을 지적하는 모양새가 좀 불편해 보일때도 있다. 정파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만 이번 조치는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대통령실의 취재 편의라는 말이 불편했다. 마치 언론에게 넓은 아량을 보여왔는데 너네가 밉보이니 이걸 거둬가겠다는 느낌. 대통령실이 세금으로 기자들의 항공료를 대는 것도 아니고.. 왜곡 편파 보도를 예로 들었다만 나쁜 기사를 쓰면 MBC가 아닌 너희 매체도 혼날 수 있어, 라는 경고로 보였다. 굳이 국민의 알 권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대응 방식이 너무나 1차원적이지 않나. 그러니 보수 언론들 사이에서도 1호기 불허 방침을 두고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 순방에 기자단이 동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실의 홍보를 위한 차원이다. 관례상 현지에서 따로 추가 취재를 해서 단독기사를 발굴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돼 있다. 국익이라는 프레임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해외에 나가 국익을 위해 뛰는데 여기에 감히 초를 쳐' 하는 기류를 여러번 현장에서 느꼈다. 일견 이해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홍보를 위해 동행하는 기자들을 분류하고, 우리편 내편으로 가르고 따지는 모습을 보면서 언론대응을 이정도 밖에 못하나 싶다. 다른 곳에서 힘을 보여야 되는데 애먼 부분에 공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겠다만, 자꾸 이번 정권은 스스로 우스워지는 길로만 가는 것 같다. 언론사를 공격하려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전제로 싸워야 정당성을 확보할텐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포격을 하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 정권의 국익이 다음 정권의 적폐가 되는 걸 수없이 목도한 우리에게 국익 드립은 더 설익게 느껴진다.


근데 사실 민주당도 기자들한테 막 하고, 개무시하면서 언론 자유 보장하라고 핏대 높이는 꼴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아.. 윤석열정부도 정부지만, 민주당이야 말로 좀 안좋은 기사 쓰면 바로 소송걸겠다고 난리치는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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