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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14. 2022

일본서 만난 두부집 할머니

아라시야마의 아름다운 풍경


쇼라이안은 일본 교토 아라시야마에 위치한 두부전문 요리집이다. 엄니와 일본여행을 앞두고 있던 중 건강하고 일본스러운 식당을 찾다가 발견했다. 인터넷으로는 예약이 안 되어서 못하는 일본어를 동원해 창가자리로 부탁했다. 가까운 나라라도 비행기를 타고 리무진 버스와 택시를 타고 체크인을 마치니 진이 빠져 버렸다. 점심을 못먹어 허기진 상태에서 쇼라이안까지 이동했다.


12월 초의 아라시야마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직 빨갛고 노란 단풍과 은행잎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청록의 나뭇잎 사이에서 울긋불긋 나무들은 한데 어우러져 묘한 균형감을 자아냈다. 강은 맑고 하늘은 파랗고 파란색 보트를 타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평화롭고 잔잔한 풍경이었다. 전쟁같은 일상서 벗어나 마음에 위안이 됐다. 일본인도 대부분 관광객이라 활기차 보였다. 아라시야마의 명물인 인력거를 끄는 젊고 활기찬 청년들을 보며 계속 걸었다.


쇼라이안 가는 길


쇼라이안은 구석진 곳에 있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나 싶을 정도로 걸어야 한다던데 사실이었다. 복잡한 아라시야마 중심가를 지나 강가를 걸어가니 오솔길이 나왔다. 따라 올라가면 산기슭에 쇼라이안이 있다. 조용한 가정집 분위기다. 이곳은 사전예약제로, 한 타임에 모든 손님들이 도착해 착석하면 코스가 시작된다. 주인 아저씨는 베테랑 사장의 냄새를 물씬 풍겼다.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들을 반겼고, 예약시간에 딱 맞춰 엄니와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창가 자리는 강을 바로 목도할 수 있는 위치였다. 여기저기에서 은은한 나무냄새가 났다. 엄니는 꽤나 만족한 눈치였다.


우리 테이블을 맡은 분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성이었다. 파랗고 수수한 유카타 비슷한 옷을 입고 갈색 모자를 썼다. 그녀는 수줍게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코스를 설명해줬다.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했다. 오죽하면 엄니가 '무릎 아프셔서 어떻게 해. 그냥 편하게 하셔도 된다고 얘기해'라고 할 정도였다. 일본어가 짧아 전달하진 못했다. 



코스는 약 2시간가량 이어졌다. 그녀는 세 차례 가량 직접 끓인 우롱차를 내왔다. 나는 그녀에게 엄니의 첫 일본 방문이라고 했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일본과 쇼라이안을 찾아주셔서 영광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그림이 취미인듯한 사장님이 만든 엽서를 선물로 건네주었고, 음식이 입에 맞으시냐고 연신 물었다. 어머니는 계속 그녀의 무릎을 걱정했다. 아마 괜찮다고해도 계속 무릎을 꿇고 손님을 응대했을 것이다. 그만큼 너무나 친절했다.


코스가 끝나고 그녀는 계산서를 가져왔다. 금액이 써있는 부분을 돌려 뒤로 한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엄니는 "참 세세하게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어스름이 깔리고, 고소한 두부와 나무 냄새가 어우러진 가운데 마음까지 따뜻한 시간이었다. 배불러서 마지막으로 나온 밥을 좀 남기려고 고 했는데 엄니가 "저렇게 친절한데 남기면 안된다"고 해서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맛있는 요리와 진심을 다하는 서비스가 이 요리집을 그만큼 유명한 곳으로 만들었으리라. 우리 뒤 테이블의 중국사람들도 꽤나 만족한 듯 보였다. 식사 값으로 총 13만원 가량을 냈지만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첫 식사를 풍요롭게 해준 그 중년 여성분과 쇼라이안에 참 감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어둑어둑했다. 추적추적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활기찼던 아라시야마가 삽시간에 어둠에 빠진 모양새였다. 사람도 돌아가고 주변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우산을 쓰고 엄니와 걸으면서 쇼라이안에서 만난 중년 여성처럼 열정과 진심을 다해 일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문화라고 해도, 우리가 배울건 배워야 한다는게 엄니의 말이었다. 평소 엄니는 일본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직접 체험해서 가치관이 바뀌는 경험을 하는 게 참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더 많이 돌아다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삶을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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