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an 25. 2023

대단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9월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주변 기기 계약 절차 간소화 협정을 맺었다. 그해 11월에는 조달전략팀 직원들이 미국 웨스팅하우스 본사를 방문했다. 두 달 전 이런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정보공개청구 사이트에 대국민 공개용으로 올라온 한수원 내부 문서를 보고 작성한 기사였다.


당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황주호 한수원 사장과 통화했다. 황 사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 보고받은 것도 없고, 내용이 제가 아는 것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본보 보도가 나간 이후 따로 해명자료를 내지 않았다. 사실상 보도를 인정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해 10월 한수원을 상대로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와 원전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할 만큼 큰 이슈였다. 그런 상황에서 황 사장이 한수원의 웨스팅하우스 관련 동향을 몰랐다면 원전 공기업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고, 알고도 거짓말을 했다면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처사다.


이참에 전근대적인 한수원의 조직문화도 바꿔야 한다. 기자가 황 사장과 통화한 직후 한수원 홍보팀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 곤란하다”고 날을 세웠다. 왜 자신들을 안 통하고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느냐고 성난 목소리로 질책을 했다. 아니, 그쪽으로부터 받은 번호도 아니고 그럼 홍보팀에 허락을 맡고 임원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사장이 거의 대통령급이다. 자신들이 곤란해졌다며 쏘아붙이는데 청와대와 국회, 경찰 출입할 때도 이런 식으로 깡패처럼 구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럴 것이다. 수습시절부터 상대방의 지위와 직급을 가리지 말고 국민을 대신해서 질문하라고 배웠다.


한수원은 기사를 쓸 때마다 문의하면 “국익을 해치지 말아달라”고 했다. 누군가와 협의 중인 사안이고, 에너지 안보에 악 영향을 끼친다며 나를 매국노처럼 몰아갔다. 한수원한테 들은 것도 아니고 따로 확인한 내용을 마지막으로 크로스체크 하는데도 그랬다.


실제로 인터넷에 한수원을 검색하면 봉사활동 기사나 기술혁신 기사, 사장 인터뷰 기사밖에 없다.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정보가 철저히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 사장 연봉은 2억원이 넘고, 정규직 1인당 평균연봉은 9000만원에 달한다. 다 국민 혈세다. 세금에서 타온 넘치는 돈으로 언론사에 막대한 광고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 기자를 찍어누른다.


같이 술먹고 밥먹고 하면 동지가 되고, 동지라면 좋은 기사만 써야 한다는 식의 구시대적 홍보 방식으로 일관하는 한수원을 보며(지방에선 아직도 이게 먹히나 보다) 아무리 원전과 에너지가 중요해도 베일에 감춰져 있는 저 오만한 기관부터 개혁해야 윤석열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정부가 원전 산업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한수원 특유의 서열주의와 비밀주의가 계속된다면 원전 부흥은커녕 제2, 제3의 원전비리가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기관이라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한것 같기도 하다. 일반화하긴 어렵겠다만 대다수의 지방은 공기업, 공공기관과 지방정부, 언론이 거의 한몸처럼 움직인다. 공기업 덕에 지역 상권이 살아나고 언론도 광고를 받고 서로 공생하는 거겠지만 그만큼 견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흠을 보듬어주고 숨겨준다. 한수원이 그런 기자들이랑 술이나 먹고 재밌게 놀면서 살다보니 정신을 잘 못차리는 것 같기도 하다.


관련 칼럼이 나가자 댓글에 '기레기야 니가 뭐라고 사장이랑 통화하냐.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얘기가 많았다. 재미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서 만난 두부집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