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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Mar 06. 2023

엘리트 집단의 욕심


어디까지 가나 싶었는데 확실히 선을 넘은 것 같다.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에 검사 출신 변호사를 기용했다. 900조원에 이르는 연기금의 투자기업 주주권에 대해 조언하는 자리다. 경제, 금융, 연금 전문가가 맡아온 자리다. 역대 정권마다 검찰 공화국 논란이 불거졌지만 이렇게 대놓고 검찰 출신으로 요직을 꾸리는 정부는 보지 못했다. 세련되게 하지 않고 그냥 대놓고 한다. 특수부 검사가 수사하듯이 무대포로 인사를 꾸린다. 마치 불도저가 수백대의 차를 다 깔아뭉개고 맹렬히 돌진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들 학폭 논란으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는 경찰을 대표하는 국가수사본부장으로 한때 내정됐다. 금융감독원장,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교육부 장관정책보좌관, 서울대병원 감사 등도 검찰 출신이 독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출신에 따라 우리는 요직을 차지하는 엘리트가 달라지는 것을 수없이 목도해왔다. 


쿠데타를 벌인 전두환 노태우는 자신들과 동고동락한 군인들과 나라를 운영했다. 기업인 MB는 친기업을 내세우며 재계 출신을 적극 기용했다. 진보 정권에선 운동권 인사들이 주요 포스트를 주도했고, 검사 출신 대통령은 후배들을 대놓고 중용하고 있다. 모두가 엘리트지만, 성격이 좀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전례에 비추어 동류의 엘리트가 자리를 나눠먹고 자기들끼리 정사를 논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정부의 끝을 잘 안다. 파국 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국의 엘리트는 스페셜리스트다. 제널러리스트가 아니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이뤘을지언정, 모든 분야에 통달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고 돈을 벌고 대성하면서 자신감을 넘어서 오만을 체득한다. 아, 우리가 이렇게 똑똑한데. 우리가 이렇게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데 국정을 맡아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학연과 고시, 혹은 인맥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 청와대나 대통령실, 국가 주요 자리를 하나둘씩 점령하면 자연스레 핵관과 비핵관이 나누어진다. 비핵관은 핵관이 되기 위해 비위를 맞추고 쓴소리를 멈춘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고 아부와 아첨, 정신승리와 자기위로만 남는다. 약점과 치부를 애써 감추니 권력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갈 수록 현실을 모르게 된다. 저잣거리의 곡소리는 들리지 않고 구주궁궐 내의 짜릿한 풍악소리만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나선 폭동이 벌어지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지만 이미 목이 날아간 이후다. 우리네 정치는 이런 세태를 반복해 왔다.


나는 그래서 국정을 수사로 연결짓고, 범죄를 단죄해온 검사들이 한국의 적폐를 잘 도려내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낼수 있다는 윤석열정부가 계속 이런 기조를 이어간다면 100% 실패한다고 본다. 정순신의 사례처럼 검사 출신들의 민낯이 대중에게 공개될테니 말이다. 수사와 정사도 다르다. 수사는 기본적으로 선과 악이 있다. 벌해야 할 범죄자가 있다. 반면 우리가 사는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조를 단순한 악으로 치부하고 귀족노조만 문제삼으면 법의 사각지대에서 노력하는 노동자의 삶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번 정부는 자꾸 누군가를 벌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고 한다. 일견 맞는 측면이 있는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닐 터다. 난 오히려 검사 출신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라는 점을 최대한 숨기고, 정치인으로서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의 정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으신 듯 하다. 수사의 정치, 단죄의 정치는 단기간에는 힘을 발휘하지만 집권 3~4년차가 넘어가면 결국 빛이 바랠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도 검사가 운동권보다 낫다지만, 글쎄. 누가 낫고 말고를 따질 게 있나. 어차피 엘리트로서 성격만 달라질뿐 정권이 바뀔때마다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공동체일 뿐인데. 검사들이 성공적으로 검사 때를 벗고, 검사 물을 벗고 정치인이나 공직자로 변신하면 다행이겠다만 정권 출범이후 그들의 행태는 일선 지검때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법치주의에서 법이 중요하지만 법에 목숨을 걸다보면 도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민심이 들끓는데도 정권은 "불법이 아닌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정권을 기점으로 검찰 집단의 중앙 정치 진출이 차단될 것이라 본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커졌던 검찰 만능주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의롭던 검찰도 국가 맡겨놓으니까 똑같네 하면, 신비의 집단이었던 검찰도 그냥 그저그런 엘리트 집단으로 치부될 것이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이제 대놓고 검찰을 중용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후배들이라며 편애하는 모습을 접고 보다 조심하고 적재적소에 그에 걸맞는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냥 정말 좀 안타깝다.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 전부가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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