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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Sep 25. 2022

완벽하지 않은 사람

오륜비전빌리지 전경

교회 수련회를 다녀왔다. 34세부터 40세까지 미혼 청년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경기도 가평의 한 수련관에서 진행했다. 서울을 벗어나니 끝없는 산자락이 펼쳐졌다. 하늘은 새파랗고, 녹음은 푸르고, 햇살은 따뜻했다.


저녁 집회가 시작됐다. 찬양팀이 CCM을 인도하는데 중간에 합이 잘 안맞아 음악이 비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자 오히려 격려와 응원의 박수가 나왔다. 목사님은 그 환호가 찌릿했다고 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인간이기에 실수가 발생하고, 괜찮다며 독려하고 다시 함께 찬양하는 모습에서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서로 보듬는 우리네 삶이 보였다는 것이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입사 이후 10년간 나를 따라다녔다. 지옥같던 수습 시절 이후 어느 출입처를 가든 '내가 뭔가를 빼먹고 발제한 건 아닐까' '나만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런 위기감은 후배를 대하는 나의 모습에까지 영향을 줬다. 내가 보기엔 나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아 무수히 잔소리를 하고 지적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내가 그나마 그들보다 완벽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온 오만이었다.


나이를 먹고, 그나마 좀 철이 들고 나니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고, 완벽한 기자는 더더욱 없으며 모두가 부족하니 서로 많이 얘기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최선의 길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는 것.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을 보듬으면 서로의 장점이 극대화될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또래의 일반인들과 대화하며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애초에 30대 중후반인데 결혼을 안, 또는 못했다면 아직도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나를 잘 모르는데도 보는 눈이 높다거나, 결혼을 안했으면 아직 애라는 식으로 쏘아 붙인다. 오지랖이 배려로 탈바꿈하는 대한민국에선 수백년이 흘러도 결혼 공격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수련회에서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의 고민도 결혼을 비롯한 생계 문제였다. 이제 곧 중년이 되는데 삶이 불안하고 위태롭다는 얘기다. 가구 배달을 하는 A씨도, 수제청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B씨도, 해외 물류 영업을 하는 C씨도 그랬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 이외에도 나의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어떻게 하면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맞장구 치고 공감한 뒤 나름대로의 조언을 했다. 그들은 "역시 기자님이라 상황 파악이 빠르다"고 했지만 그들과 내가 똑같이 완벽하지 않은 미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함께하면 조악하나마 해법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거칠게 없었던 기자 초년병 시절


나도 요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청와대를 포함해 6년 가까운 정치부 생활 가운데 남은 것은 자괴감이 크다. 인생을 갈아넣어야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하고, 그렇게 해야 이름을 떨치고 좋은 기자가 되는 상황에서 '굳이 내가 왜?'라는 의문이 샘솟고 있다. 나는 왜 별것도 아닌걸로 이렇게 끙끙 앓아야 하나. 나는 왜 휴일에도 불안감에 휩싸여 전전긍긍 해야 하나.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완벽하지 않아서 해법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이 미디어 바닥이, 인정사정없는 이 언론계가 과연 나한테 맞는 옷일까 하는 고민이 피어나고 있다. 내가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가 있지 않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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