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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21. 2022

'심심한 사과' 논쟁이 우려되는 이유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두고 논쟁이 붙었나 보다. 잠깐 설명하면 지난 20일 서울의 한 카페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성인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과 관련 “예약 과정 중 불편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며 사과글을 올렸다.


이후 트위터에는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너네 대응이 아주 재밌다” “심심한 사과 때문에 더 화난다.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주느냐”라는 비판글이 쇄도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카페 측이 사용한 ‘심심한(甚深한,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의 뜻을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의 동음이의어로 잘못 이해하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사흘'이나 '금일'이라는 말을 제대로 몰라 빚어졌던 혼란이 재탕되면서 모두가 또한번 젊은 세대를 향한 문어교육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예견된 수순이다.


우리나라는 참 재미있다. 한편에선 MZ세대가 뜨니 그들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의 언어 생활에 맞춘 마케팅까지 쏟아진다. MZ세대가 쓰는 말을 맞추는 테스트가 유행이 되고, 잘 모르면 꼰대라는 힐난도 받는다. 반면  심심한 사과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문맹국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 된다. 


모든 발단은 젊은 세대가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한자 학습이 과연 필요한가 생각하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미디어나 신문, 각종 책과 수험서, 안내문 등에 한자가 도배됐던 과거에는 한자 학습이 필수였다만 지금은 다르다. 영상이 뜨고 활자가 지는 지금 한자보단 영어가, 또 코딩 능력 등이 사회와의 소통 영역을 늘려주는 중요한 학습 영역이 되고 있다.



반면 우려도 분명하다. 꼰대스럽게 MZ 세대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생길 것 같아서 그렇다. 한자는 함축적이다. 한글로 길게 풀어써야 하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반추'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뜻한다. 굳이 풀어쓸 필요도 없이 '나는 그일을 반추했다'고 하면 깔끔하게 상황이 정리가 된다. 용을 그린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의 '화룡점정'을 대신할 수 있는 말이 어디있을까. 


과거 중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한자어는 우리네 언어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잡아서, 아무리 뽑아내려해도 깊게 뿌리내린 나무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동생(同生)이나 총각(總角), 호랑이(虎狼)와 배추(白菜)에 이르기까지 고유한 한글인 줄 알고 썼던 말들은 사실 한자어다. 우리가 늘상 쓰는 '미안'이라는 말도 한자어다.  未安이라는 한자로 이뤄졌는데, '내가 평안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언어 체계는 오랜 세월을 거쳐오며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데 영향을 미쳐 왔다. 영상의 시대가 온대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휴대전화로 소통하고 온라인 활동이 강화돼도 결국은 우리가 말을 통해 소통할 거다. 이때 한자어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의사 소통 작용은 점차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상황. 너무 안타깝고 처절하지 않은가.


한자 교육을 받은 기성세대는 혀를 끌끌차고, 젊은 세대가 '잘난체 하지 말라'고 응수하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보기엔 문맹국을 떠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연대와 유대를 스스로 끊어낼까 두렵다. 


당장 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할 수도 없고, 유튜브가 점령한 이 시대에 책 읽기만 강요할 상황도 아니기에 해법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소통의 속도는 마하급인데 어떤 말로 소통할지 모르는 지금, 기술의 발전이 망치고 있는 인간 사이의 대화를 어떻게 복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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