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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15. 2022

우영우가 던지는 질문


극중에서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를 앓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다. 동시에 천재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녀는 배려를 필요로 하지만,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일반인 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동료 변호사의 "우영우가 약자라는 건 착각"이라는 말은 이런 설정 때문에 비롯된다. 


그녀는 복합적인 인물로 표현된다. 그녀가 자폐를 앓게 된건 불운이다. 반면 뛰어난 기억력을 갖게 된 것은 행운이다. 둘다 그녀가 원해서,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다. 


시청자들은 우영우를 보며 혼란스럽다. 편견을 깬다. 우리는 약자를 도와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그녀는 똑똑하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으며, 서울대 법대를 나온 아버지를 뒀고, 아버지의 빽으로 유명 로펌에 취직했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유명 로펌 대표이자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그녀는 약자지만 동시에 약자가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필부보다 너무나 잘난 그런 인물이다. 도대체 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게 맞을까,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의 의도는 쉽게 파악된다. 레즈비언(성소수자)과 자폐인, 법을 잘 몰라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 국가 개발사업으로 피해를 보는 지역 사람들, 경쟁 기업의 횡포로 문을 닫는 중소기업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장애인과 일반인의 사랑이라는 민감한 부분까지 건드리며 이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과연 너의 삶에 이런 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무리 우영우가 뛰어난 인물이어도 일단 그는 소수자니까.


나는 그나마 열린 마인드로 살고 있지만 만약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았는데 자폐나 장애인 배우자를 데려오면 너무나 싫을 것 같다. 김치국 특유의 그 눈치와 멸시가 싫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겪게 될 난관이 싫다. 그를 위하면서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런 것도 현실인데 내 자녀가 겪을 그 고통이 생각나서 차라리 일반인과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 내 마음속 생각이 이러한데 과연 우영우와 일반인의 극중 사랑을 응원할 수 있는가. 그건 그냥 판타지이고, 겉과 속이 다른 나의 도덕적 이상을 만족하기 위한 자기위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영우를 보면서 새로운 걸 배웠다. 자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자폐인들끼리 소통이 쉽게 된다는 것도 편견이며 우리 사회는 아직도 편가르기 선나누기 차별짓기 구별짓기로 점철돼 있다. 약자로 보이는 이들도 뜯어보면 뒤에서 갑질하고 다니는 양아치일수 있고, 내가 선의로 일을 벌여도 결과는 악의로 귀결될 수 있다.


우영우가 겪는 시련과 고난은 그 나이대 모든 젊은이가 겪는 것과 비슷할 수 있지만 성숙하지 못한 우리네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더 가혹한 눈치와 상처를 준다. 본인의 삶이 순전히 행운인 건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우영우를 보며 몇차례 눈물을 흘렸다. 그가 첫 변론에 앞서 배심원들에게 양해를 구할 때, 그가 자신을 챙기는 친구에게 '봄날의 햇살' 같다고 할때 눈물이 났다. 아무리 천재여도, 잘났어도 그는 자신이 소수자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고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꿈틀거린다. 탄생과 동시에 주어진 운명을,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사과하는 모습은 마음이 퍽 쓰라리는 장면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나와 다른 사람을 조금더 이해했으면 좋겠다 싶다.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이해하고 반추하며 그녀의 성장을 응원했던 사람들이 드라마를 떠나 현실에서도 다양성을 존중했으면 싶다. 또 약자이면서 강자인 이들에 대해서도 끝없이 질투하고, 음모를 꾸미고 부딪치고 맞닿으며 고민하고 곱씹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배타성이 근본을 이루는 이 김치 사회에서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모두가 어차피 사는 거 개같고 뭐같지만 똑같다는 인식이 박혔으면 좋겠다. 우리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특이한 이들을 모멸하고 멸시하는가. 마음껏 질투하고 싸우고 하며 그들을 하나의 구성원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내가 거침없이 그들을 선택하고 내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렇게 성숙한 사회가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위해 나와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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