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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11. 2022

수능 만점자에 지방대를 권했다고?


한국에서 학벌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금수저와 연예인의 입학 특례나 입시 비리 논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가 가장 크게 힘을 발휘하는 분야가 교육과 병역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 분야는 무너지더라도 저 두 분야에선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과 절차,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는 수능 혹은 대학 입시가 노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런 룰을 깨거나 위반하려는 행위를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인다. 한국전쟁 이후 지옥같은 가난을 경험했던 어른들의 '배워야 산다' 정신은 MZ세대로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성공의 첫 단추가 대학이라는 명제는 그래서 쭈욱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학벌 사회 타파라기 보단 다양한 방식의 성공이 가능한 사회 분위기 조성에 있을 것이다. 수능이나 입시가 아니더라도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다채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무작정 학벌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구호나 외침은 현실 도피일 수 있다. 


5년전 교육부 출입 당시 특목고 등의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간부가 자녀를 서울 강남의 고액학원에 보내 영재학교에 입학시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온갖 비판이 쏟아졌으나, 난 좀 마음이 아팠다. 사교육을 없애자고 외치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자기 자식에겐 사교육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교육시스템 하에서 내 자식이 열심히 공부하고 또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영위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게 부모 마음 아닌가. 그러니 정부에서 아무리 사교육 근절을 외쳐봐도 부자 동네에선 스카이캐슬이, 상대적으로 평범한 동네에서도 저렴한 그룹과외가 유행하는 것이다. 심지어 달동네 공부방에도 학생들이 넘쳐난다.


난 그래서 아무런 대안없이 무턱대고 학벌을 없애자는 사람을 경계한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혜택을 입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번의 시험이 평생을 좌우하는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명문대 입학 이외에도 다른 성공 방식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학벌주의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독재자가 나타나서 모든 대학의 입시점수를 동일화시키지 않는 이상. 페북에서 한때 유행했던 '학벌주의에 반대하며 학벌을 기재하지 않습니다' 열풍이 그래서 공허하다. '나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학벌 기재 거부 운동에 동참할거야' 하는 돌아이도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87112


나는 평소에도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의 신뢰성과 기사의 질, 중립성에 대해 기대가 없었지만 최근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수준 미달의 쓰레기 글을 읽고 분노가 치밀었다. 독자분들의 안구 건강을 위해 간단히 요약해 본다. 필자는 부산 출신의 수능 만점자에게 부산에 위치한 지방대에 진학하라고 권했다. 그가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서울 중심의 한국사회 구조를 바꿔달라는 얘기였다. 지방 출신인 수능 만점자가 서울에 가면 별거 아닌 존재가 될 수 있으니, 지방대를 나와 지방의 소중한 인재가 되어달라고 했다. 필자 주변의 사람들은 경악했고 결국 수능 만점자는 서울대에 진학했다.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나 필자의 자녀는 수능 만점을 받아 서울대에 갈 실력이 안 되고, 순교자로서 지인의 자녀에게 지방대행을 권유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걸 짐짓 자랑스럽게 기사로 적어둔 꼰대력도 상당하다고 생각했다. 수능 만점이라도 서울에 가면 평범해질 수 있으니 지방에 머물러야 한다는 개같은 논리는 도대체 뭘까. 좀더 명망있는 학교에서 명망있는 교수에게 수업을 듣고, 더 큰 기회를 노리는 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똑똑한 학생이 개인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학벌주의를 타파할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스스로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명색이 그래도 시민 기자라면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기획기사를 발굴한다든지, 서울 중심의 사회 구조가 낳고 있는 폐해를 집중 조망하는 식으로 지방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균형 발전 혹은 서울 집중 현상 해소라는 목적을 위해 개인의 선택권 희생을 강요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기사로 적어내려가는 그 만용이 너무 놀랍다. 제발 지방대에 가도 좋은 인맥과 더 큰 가능성,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를 기사로 써주시라.



그렇다고 내가 학벌 맹신주의자는 아니다. 최근에 페북에서 '서울대 나와서 제일 좋은점'이라는 글을 보고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서울대생의 지능에는 상한이 없기 때문에 서울대생은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능에 상한이 없는 정말 천재들은 외국대학에 가있지 않을까. 서울대생의 뇌를 다 열어본 것도 아닌데 지능을 운운하는 모양새가 좀 웃겼다. 그냥 한국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모여있으니 학점 받기가 어렵고, 이에 따라 남을 잘 무시하지 않고 존중한다고 하면 되었을 것을 그냥 자랑질하려고 글을 갈겨놨으니 웃음이 나오는 수밖에. 서울대생이라고 다 논리가 정연하지 않다는 걸 또 한번 느낀다. 


서울대생은 괴물이 아니고 그저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보다 좋은 혜택과 기회를 누리는 게 맞지만 내가 더 노력하면 그들을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만회의 폭을 넓히고 늘리기 위해, 그런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어떤 기사를 써야할지 더 고민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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