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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pr 23. 2023

재벌과 똥개


나는 소위 재벌들의 평소 성격이 너무 궁금하다. 태어날 때 부터 챙겨주는 사람, 부리는 아랫 직원이 넘쳤을 테니 어느정도의 오만함은 기본으로 탑재했을 테다. 그래도 모두가 한진 조현아 같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떤 식으로 아랫사람을 부리고, 다루고, 장악하는지 의문이 든다.


노잼의 연속이었던 넷플릭스 '퀸메이커'를 중간에 하차하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어차피 재벌로 태어나지 못한 흙수저들은 이른바 '부림'을 당하기 위해 미친듯이 경쟁해야 한다. SKY 대학을 나오고, 언어도 능통해야 하며 센스도 있어서 입사 초기부터 눈에 띄어야 한다.


나는 과거 삼성전자 미전실 입사 시험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이재용 부회장이라고 가정하고 편지를 쓰는 시험이다. 해외 정상이 만찬을 주최했는데 중요한 일정 때문에 못 가는 상황이다. 당연히 영어로 써야 하고, 편지의 격식도 알아야 하며 이 부회장의 평소 문체나 어투도 숙지하고 있어야 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 최고의 엘리트만 모이는 삼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야 오너 일가를 근저에서 모실 수 있다. 수억원의 연봉과 여러가지 떡고물이 주어지는 자리지만, 조금이라도 삐걱대면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는 곳이다. 오너 일가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신상은 일반 직원들은 잘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아무리 인생은 경쟁의 연속이라지만 성공의 욕망을 품은 흙수저 기업인들의 삶은 참 피곤할 것 같다.


극중 재벌 기업의 경영기획실장을 맡은 김희애는 오너 일가의 병신같은 악행을 다 처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그들이 경영을 해야 수십만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이 먹고 살수 있다. 그러니 다 감내해야 한다고. 대기업 총수 석방을 요구하는 재계가 만날 써먹는 논리다. 총수가 부재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대한민국의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결국 기업 직원 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피해가 온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말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그럼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어차피 재벌이라 수많은 변호사 붙여가며 싸웠는데도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나온 것은 빼박 잘못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재벌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고, 감옥에서 나온다면 흙수저 사이에서 우리는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대를 살고있다는 패배의식이 퍼질 것이다. 경제적 측면을 따지면 그들을 풀어줘야 하는데, 사회적 측면에서 재벌의 석방은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준다. 경제 활력을 살려도 사회의 활력은 저해한다. 친재벌 정권은 전자를, 좌파 정권은 후자에 중점을 뒀다. 결국 어느 것에 방점을 둘 것인가의 문제이지, 한쪽이 맞고 다른쪽은 틀리다는 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땅콩회항 사태 당시 대한항공을 계속 취재했는데 홍보팀은 거의 손을 놓은 상태였다. 실성한 조현아의 칼춤같은 기행이 연이어 보도되면서 홍보팀 조차 실드칠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회사를 떠난 이도 많았다고 한다. 아무리 돈을 버는 기업이라도, 저런 금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양심상 맞지 않다는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이의 밥줄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해야 겠다만 평생 오냐오냐 자란 이들이 회사 이미지를 망쳐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애초에 그럴 능력이 없는 이들이 운명의 장난 혹은 신의 농간으로 태어날때부터 과분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운이라 하면 할말 없지만 그냥 이 세상에는 너무 불합리한 일들이 참 많은 듯하다.


우리는 왜 존경받는 대기업 오너를 찾기 힘든 걸까. '당당히 실력으로 1등을 하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1등을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하라'던 구본무 LG 회장님 같은 재벌은 왜 더 나오지 않는 걸까. 타고난 특권을 그저 누리는 게 아니라 샘솟는 책임감으로 몸담은 기업과 직원들을 똥개로 보지않는 그런 어른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직원들이 신나서 회사를 자랑하고, 오너를 마음속으로 따르고, 전 국민적인 성원과 응원을 받는 그런 재벌의 출현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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