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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n 04. 2023

공무원과 현실감각


지난주에 기획재정부 국과장급 공무원 세명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각자 기수에서 행정고시 수석을 했다고 한다. 행시 패스 부터가 어려운데 1등을 했단다. 그들은 모두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젠 좀 익숙해졌다. 처음 기재부 와서 사람을 만나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관료 대부분이 대한민국 슈퍼 초엘리트였다. 청와대나 국회, 사건팀이나 복지부 출입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서울대 경제학과 수석 졸업, 행시 수석, 미국이나 영국의 세계적인 명문대 석박사 들이 즐비하다.


기재부의 한 사무관 얘기가 와닿았다. 그는 지방 출신이다. 해당 지역에서 1등을 해서 서울대를 나왔고 행시를 봐서 기재부로 왔다. 이후 계속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모든 부처가 그렇겠지만 특히 기재부는 경쟁이 치열하다. 똑똑한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한다. 주말에도 회사로 나오고 밥먹듯 야근을 한다. 예산과 세금 등 돈을 다루는 부처라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정책을 바꾸면 곧바로 국민 생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국가적 관심도 크다. 기재부 출입이라 그런가, 처음에는 기재부가 돈줄을 쥐고 사회 여기저기 갑질을 하는 것 같았는데 겪어보니 이들도 참 힘들게 산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비인간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그래도 일부는 냉철한 마인드로 돈이 새는 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질문이 따라붙을 것이다. 경제부처에 대한민국의 브레인이 다 모였는데 왜 경제가 이모양 이꼴이냐고. 나라를 망하게 하고 싶은 공무원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출 부진으로 무역적자는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대내외 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중이다. 물가는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이 마저도 국제 에너지 가격 안정화에 따른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지난 1년간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올렸다. 유류세를 내리고, 할당관세 품목도 늘렸다. 종합부동산세나 소득세 법인세 제도를 손봐 과도한 세부담을 줄였다. 기업 투자를 통한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늘리고 나랏빚을 줄이고자 확장재정 기조를 건전재정 기조로 바꿨다. 재정준칙도 만들어 국회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30조원이 넘는 세수 빵꾸와 체감 물가 상승이다. 다들 경제가 좋지않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된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서울대 출신 똑똑이들이 모여서 온갖 시나리오를 예측해가며 경제 정책을 짜는데 사는게 나아지지 않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반도체 가격 하락이나 러-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국제적 변수를 제외하더라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기재부 사람들도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이른바 '인의 장막' 때문은 아닐까. 난 매번 기재부가 허공에 외로이 둥둥 떠 있는 섬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재부 예산실은 항상 바쁘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예산안 통과를 설득하려는 각 부처나 공공기관, 지자체 사람들이 쉴새없이 드나든다. 재정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커트하고,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쓰기 위해 심의하는 곳이 예산실이다. 그러나 보니 어느 정도의 갑질이 몸에 배어있는 듯 하다. 예산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나 관료들만 상대하다보니 예산실 사람들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예산이 무엇인지 잘 알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예산안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데 급급한건 아닐까. 달라는 대로 다 퍼주라는 게 아니고 그들의 업무에서 가끔 영혼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너무 잘나고 똑똑한 사람만 있는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간다. 전 국민을 위한 나라 예산을 만드는 집단이 대한민국 상위 1%라서 전 국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돈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나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기재부는 차관 인사를 앞두고 있는데 설왕설래가 대단하다. 그만큼 인사 적체가 심하기 때문이다. 나도 여기저기서 들은 얘기를 두고 기재부 사람들 앞에서 신나서 썰을 풀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아니, 그래서 차관이 바뀌면 나라가 뭐가 달라질까. 어떤 라인이 득세하고 누가 연쇄적으로 OECD 대사를 가느니, 관세청장으로 임명되는지가 뭐가 중요한가. 코로나가 끝났는데도 소상공인들은 힘겨워하고 있다. 서민들도 죽을 맛이고, 전세대출 피해자 소식은 계속 들려온다. 어쩌면 나도 엘리트님들과 항상 같이 지내다보니 내가 어떤 기사를 써야하는지 눈이 가려진 것 같다. 공무원들에게 현실감각 없다고 욕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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