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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n 19. 2023

소는 누가 키우나


나는 지난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에 대한 환자나 직원들의 글을 찾아 읽으며 눈물이 났다. 주 교수 덕분에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는 글이 정말 많았다. 대동맥 환자를 위해 오랜 기간 병원 옆에 살았고, 매일 응급환자 수술에 매진했으며, 자신보다 환자를 위해 살아왔던 주 교수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났다. 참 대단한 분이다. 사회의 인재이자 등불이었다. 


그와 관련된 기사는 많이 없었다. 그 흔한 인터뷰조차 잘 없었다. 묵묵히 병원에서 수술실에서 환자를 살리는데 전념했기 때문이리라. 굳이 비교할 일도 아니지만, 미디어를 종횡무진하며 의사보다는 방송인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과 사뭇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 와중에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의 SNS가 울림을 줬다. 노 전 협회장은 '주석중 교수의 빈자리는 누가 채울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서울아산병원 A교수가 거론되지만 그는 해외연수가 예정돼 있다. 미국에 가서 대동맥수술 관련 전문지식을 더 쌓고와야 환자를 더 잘 돌볼수 있다. 이대서울병원 송석원 교수와 강남세브란스 C교수도 후보군이다. 


문득 든 한가지 의문. 왜 이렇게 후보군이 적은가. 대동맥 환자는 연일 늘어나지만 흉부, 심장혈관외과 전공의는 1년에 20명 정도 배출되는데 그친다. 대동맥 전문은 그 중에서도 일부에 그친다. 노 전 협회장은 대동맥을 맡아 환자를 살려야할 심장혈관흉부외과 의사들이 지방흡입이나 통증치료, 정맥질환 진료, 지방종 제거 등을 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노 전 협회장은 자신의 대동맥이 찢어진다면 지체없이 이대서울병원으로 가서 송석원 교수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에게 모든 환자가 몰리고 있으니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만약 대동맥 질환이 나 혹은 가족, 소중한 이에게 발생한다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명의 한명의 희생과 노력으로 특정 질환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필수의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그 고난의 길을 쉽사리 의사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러니 하다. 대한민국이 의대에 열광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준비반이 만들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사의 수는 늘어나고, 의사가 되려는 청춘은 폭증하는데 대한민국 의료의 질은 계속 떨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꼰대처럼 얘기하면 성형외과, 피부과 등을 맡아 돈도 많이 벌고 좀 편하게 살고 싶은 의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노력해서 의사가 된 이상 돈과 (상대적인) 워라밸로 보상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를 위해 평생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가 없다. 왜 당신은 주석중 교수와 같은 훌륭한 의사가 되지 않느냐고 힐난하기가 어렵다. 비판할 수는 없는데, 또 주석중 교수님, 이국종 교수님 같은 분은 필요하고 더 많아져야 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614466?type=journalists 


최근 기획재정부 내부 게시판 관련 제보를 받고 기사를 하나 썼다. 기재부 업무가 너무 힘들고 승진도 어려워 다른 부서로 전출가고 싶은 직원들이 많다. 다만 다른 부처에서 같은 직렬이나 직급의 직원이 기재부로 전출을 와야 나갈 수 있다. 오려는 사람이 없어 전출도 사실상 막혀있다. 그러자 반발의 목소리가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다. 야근을 밥먹듯하고 화장실에 못갈 만큼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게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할지 짐작이 간다.


다만 대한민국의 예산과 세금을 담당하고 미래 먹거리를 찾으며 경제 전반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기재부는 없어서는 안될 조직이다. 업무 환경을 아무리 개선한대도 다른 부처와 비교하면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한 사무관은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집에 갔다가 3시간 후인 5시에 다시 나와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구성원들 모두가 화가 날 만도 하다. 다만 그래도 누군가는 예산과 세금 정책을 정리하기 위해 시간을 갈아넣어야 한다. 한 공무원의 희생이 국민들의 편의로 이어진다.


따지고 보면 의료나 재정 등 우리나라의 주요 업무가 이런식으로 이뤄져 온 듯 싶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고, 개인의 희생이 차곡차곡 쌓여 성과를 내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애국심, 사명감이 그 원동력이 됐지만 이른바 MZ 세대에겐 잘 어필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모두가 꺼리지만 또 누군가는 그 업무나 분야를 맡아야 나라가 돌아가는데 눈에 보이거나 잡히는 보상은 없다. 어떤 보상이 필요한지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도 없다. 소비자들은 생산자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왜 이렇게 진료가 안잡히느냐' '공무원들 철밥통인데 불친절하다'고 비판하기 바쁘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되면 정말 무섭고 두려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듯 하다. 과연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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