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un 18. 2023

에너지 복마전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요금 결정체계 개편 용역을 법무법인 태평양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최근 보도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전력과 관련한 전문기관이 즐비한데 굳이 대형 로펌에 전기요금 관련 용역을 준 것 말이다. 알아 보니 산업부에서 일하던 변호사가 태평양으로 옮겼고, 그 변호사가 주도해서 일을 따낸 거였다. 내부 절차를 밟았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전기요금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쓸 만한 기사라고 생각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611158?sid=101


산업부에서 에너지 분야 취재를 하다보니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말이겠다만, 에너지 업계야 말로 이해관계가 참 복잡한 동네다 싶었다.  에너지는 우리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영역이다. 여름엔 냉방, 겨울엔 난방 없이 살수 있나. 전기가 없으면 우리네 비즈니스는 올스톱된다. 그러다 보니 태양광, 풍력, 화력, 원자력, 수소 에너지 등을 포함한 파이가 너무 크다. 각 업체의 이해관계가 촘촘한 거미줄처럼 맞물려있다. 정부의 정책 결정 한번에 업체의 미래가 결정된다. 수조원의 이권도 왔다갔다한다.


특히 전기, 가스 요금등 에너지 공공요금이 모든 국민에게 부과되다보니 관심도 많고 논란도 치열하다. 전력수급계획, 국토종합계획, 신재생기본계획, 수소경제이행기본계획 등 수많은 에너지 관련 기본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이 들썩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산업부 에너지 관련 부서들의 경비는 참 삼엄하다. 다른 일반 부서와 비교할때 출입도 엄격히 통제되고, 기자들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워낙 일이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묘한 현상을 발견했다. 태평양 로펌 기사를 취재하면서 에너지 분야 주요 취재원-주로 에너지학과 교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로펌이 에너지 용역을 맡아도 전문성에 문제가 없을까 하는 내용이었다. 신기한게 전화하는 교수들마다 태평양 A 변호사를 칭찬했다.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들 중 한명은 아예 태평양과 용역을 나눠서 맡고 있었다. 나머지 교수들도 A 변호사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에너지 분야가 특수하다보니 전문가가 한정돼 있고, 그들 일부가 정부 산하 기관장도 맡고 하면서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쁘게만 볼것은 아니다. 오랜시간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다. 에너지 분야 교수 숫자가 적은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근데 유독 에너지분야가 인의 장막이 더 크고 공고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소위 아는 사람들이 정책을 총괄하고, 용역도 맡고, 조언도 하고, 평가와 심사도 하는데 팔이 안으로 굽지 않을까 싶다. 대중의 관심은 크지만 깊이 있는 정도까지 알기는 어려운 에너지 분야를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나눠 먹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원전 분야가 그렇다. 대통령의 원자력 멘토라고 불리는 B교수는 정부 출범이후 한 원자력 산하기관장을 맡았다. 그는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전 경희대 교수) 등과 자전거를 같이 타는 사이다. 자전거 모임 멤버를 보면 내로라 하는 원자력 업계 인싸들이다. 그들이 휴일에 취미생활을 뭘 하든 알바는 아니지만, 인맥으로 묶여있는 에너지 업계 전반의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전문성을 무기로 수조원을 주무르는 그들은 과연 누가 견제하는가. 원전비리 이후 원전감독법이 만들어졌고, 감사원이나 산업부 감사관이라는 조직도 있지만 요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오히려 정부보다 에너지 산하기관의 힘이 더 큰것 같다. 대통령실이 원전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 한다면 제2의 원전비리가 또 터질지 모를 일이다.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있다. 역대 정권별로 에너지 믹스는 다르게 책정돼 왔다. 에너지 믹스란 전력 발생원의 구성비를 뜻한다. 전력을 어떤 방법으로 생산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정답은 없다. 탈원전을 표방했던 문재인정부는 이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렸고, 윤석열정부는 이를 번복해 원전 비중을 키우는 추세다.


한때 잘나갔던 태양광은 비리의 온상처럼 되고 있다. 각종 비리나 특혜가 드러나고 있다. 정권에서 힘을 주다보니 수많은 돈과 지원책이 투입되고 그 와중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만약 다음에 민주당 정권이 집권하고 원전 분야를 파보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다. 원전 건설 재개 등을 위해 편법을 쓰거나 직권남용 스러운 일을 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검찰수사 등이 부연될 것이다. 정권별로 반복되는 에너지의 비극이다.


그래서 나는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정치 논리를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우리네 권력구도에선 만기친람이 빈번히 이뤄지고, 에너지 분야도 대통령실이나 여당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어진다.


나는 올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국면에서 부처 출입기자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산업부에선 전혀 확인이 안 되니 아침마다 여당 의원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게 일이었다. 그마저도 모 유력 통신사에 여당발 워딩 하나가 뜨면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받아 썼다. 세종 기자 업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장관이 내일 직접 발표하는 것도 산업부는 엠바고를 걸었는데 여당 누군가가 얘기하자 바로 풀렸다. 엠바고 지키는 사람만 바보다. 나는 국회 사람들이 정말 서민을 위해 고심한다고 절대 생각 안 한다. 무기력한 정부와 표에만 관심있는 정치권의 대환장 콜라보에 국민만 피해를 본다. 이럴 바엔 정부가 왜 있는 걸까. 그냥 다 해체하고 여의도에 전권을 넘겨주고 의사당 근처 사무실에서 의원실 확인 전화만 응대하면 되지.


아무튼 그들만의 리그가 강화되고, 정치권의 입김도 강해지면서 에너지 복마전 현상은 더 심화될 것 같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에너지 믹스는 무엇인가 하는 치열한 고민은 그 안에 없다. 그러니 국민들이 나서서 더 공부하고 에너지 독립과 투명한 에너지 시스템 도입을 더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목받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