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un 24. 2023

KBS 수신료 유감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징수 방침을 공식화하자 KBS는 '공영방송 길들이기' 프레임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언론사인 KBS의 논조를 정권이 좌지우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또 수신료 수입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국가기간방송사로서 재난 대응을 비롯한 책무를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고 항변하는 중이다. 각종 여론조사서 국민 60~90% 가까이가 분리징수에 찬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KBS가 제대로 일을 하고, 사회를 향한 기능을 했다면 이런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다.


KBS는 이번 사안을 언론 탄압 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면서 다른 언론들이 함께 동참해서 정권의 횡포에 대항해주길 바라는 듯한 시선도 엿보인다. 그에 동감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아마 대부분의 언론인이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평소에는 탱자탱자 놀고 먹다가 이럴때만 또 나서서 사회정의를 앞장서서 지켜나가는 선구자인 척 한다.


10년 넘게 다양한 현장을 돌면서 목도한 KBS 기자들에 대한 기억이 좋지가 않다. 물론 열심히 하고 뛰어난 취재력을 갖고 있으니 1등 매체인 KBS에 들어갔겠지만 일단 현장에선 잘 보이지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신문의 기사를 베껴서 리포트를 만드는 경우도 수없이 목도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브리핑이 잡혔다거나 하면 의기양양하게 현장에 나타나 "저 KBS 인데요"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KBS면 뭐 어쩌라고? 딱 KBS는 현장서 그런 이미지다. 1등 매체라 제보가 쏟아지니 그 중에 골라서 기사를 쓰는데 솔직히 취재 현장에선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난 K 기자들이 노력에 비해 과도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배 아프고 능력 있으면 이직하라고 지적하면 할말은 없다만..


몇년 전 온라인뉴스부에 있을 때 또 한번 수신료 인상 논란이 불거졌다. 난 K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왜 수신료를 올려야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력도 구상도 없으면서 그냥 당위만 강조했다. 그래서 지적하는 기사를 많이 썼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754053&code=61111111&sid1=pol&cp=du1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5556986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4820319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539417&code=61121111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5481253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5548586


어찌보면 같은 언론계를 지적하는 거라 고민은 많이 됐다. 그러나 KBS는 일반 언론사가 아닌 공영방송사이고, 어찌보면 국민의 돈을 받는 공무원 조직이라 기사로 지적했다. 그러자 KBS 홍보팀에서 전화가 왔다. 팀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그는 대뜸 "당신 몇년 입사야"라고 했다. KBS 기자로 일하다가 홍보팀으로 옮긴 아재였다. 그는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며 기사 구성 등을 지적하며 꼰대질을 했다. 하도 미친듯이 전화를 하길래 기사를 일부 고쳐줬다. 그러자 갑자기 부드러운 말투로 언제 한번 식사를 하자고 했고 나는 바로 거절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선후배 운운하며 갑질을 하나. 역시 KBS에는 공영방송 특유의 정신나간 상명하복 문화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생각, 그리고 매번 이런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국내 유일의 농촌드라마였던 '산넘어 남촌에는2'나 인간극장, 전국노래자랑, 러브인아시아, 국악한마당, 현장르포 동행, 생로병사의 고향, 6시 내고향, 열린 음악회 등 KBS의 주옥같았던 프로그램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른 지상파 방송에서 시청률 탓에 기획조차 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KBS는 만들어 왔다. 다양성을 기치로 사회에 공익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수신료가 그 바탕이 됐다는 사실까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각종 역사 드라마나 고품격 다큐 등은 KBS 직원들이 수신료 뿐 아니라 사명감까지 담아 만든 소중한 컨텐츠들이다.


그러나 그런 KBS의 장점이 희석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새로운 영상 플랫폼은 넘쳐나는데 KBS가 공익 뿐 아니라 시청자의 눈을 끄는 컨텐츠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뉴스는 더 볼 게 없다. 검언유착 논란과 관련해 오보를 내는 등 실수도 연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2020년 한 해 억대 연봉을 받은 KBS 직원은 총 4800명 가운데 2226명에 달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 맞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대규모 인력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호봉제로 그들이 받는 봉급은 올라갔는데 딱히 주어진 일은 없고, 준공무원이니 함부로 내보내지도 못한다. 그런데 KBS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합산되기 때문에 사실상 전 국민이 세금 성격으로 내고 있다. 컨텐츠의 질이 떨어져서 외면받는데 억대 연봉자는 수천명에 달하니 국민 입장에선 좋은 방송 하라고 수신료를 냈는데 결과는 실망스럽고 자구책은 내놓지도 않으면서 직원들 배불리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수년전 한 KBS 직원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밖에서 우리 직원들 욕하지 말고 능력과 기회가 되면 사우가 돼라”고 언급해 공분을 샀다. 그래 너희들 참 부럽다. 근데 노력에 비해 과도한 혜택을 입고 있는 현실을 좀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간 기업들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너무 온실속에서 안일하게 살고 있으신 건 아닐까. 그러니 계속 보도와 방송의 질이 급전직하하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을 비롯한 진보언론들이 아무리 KBS를 실드쳐도 이번 수신료 분리징수 이슈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은 그들과 다른 입장을 내고 있다. 정치 논리로 아무리 프레임을 나눠봤자 국민들이 실사구시의 눈으로 KBS를 보고 있다. 우리가 돈을 낸만큼 KBS가 제대로 일을 하느냐는 기본적인 질문에 국민들은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논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답이다. 작금의 사태는 KBS가 자초한 일이자,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함포고복하며 지내 온 KBS 기자 PD 아나운서 기술직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달라지면 KBS는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생기는 거다. 반면 또 그놈의 공영방송의 존재, 수신료의 가치 운운하며 정신승리하면 폭망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려는가. KBS가 잘해서 1등매체가 된 게 아니듯이 수신료는 분리징수로 가고, 스스로의 실력으로 공영방송임을 입증하고 증명하고 인정받아 새로운 살길을 도모할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는 누가 키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