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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19. 2023

남의 슬픔에 공감하기


오송 지하차도에서 사고가 벌어진 당시 나는 오송역에 있었다. 잠시 서울에 들렀다가 다시 KTX를 타고 내려온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역 주변이 다 물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오송역 근처 차도에서 침수가 벌어졌으니 버스나 택시를 절대 타지 말라는 거였다. 그제서야 뉴스를 검색했다. 오송역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떨어진 차도에서 사고가 나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좀더 일찍 도착했다면 나도 위험했을 수 있다. 희생자들이 겪었을 고통과 공포가 짐작이 가지않는다. 그저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또다시 벌어진 황망한 사고에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휴일에도 가족을 데려다 주고, 일하러 가다가 벌어진 참사였다. 열심히 살려고 나선 길에 물폭탄이 쏟아질지 누가 알았겠나. 아무리 물이 빠르게 들어찼어도 시민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지자체와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지난해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고 관련 공무원을 징계했지만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답답하다.


사고 이후 비슷한 양태가 벌어지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5일 골프를 치다가 폭우로 1시간여만에 중단했다.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에 그는 "대구는 다행히 수해 피해가 없어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주말을 보내고 있다"며 "주말에 테니스를 치면 되고 골프를 치면 안 된다는 그런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수백키로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사고였고, 대구시장인 그는 대구 지역 상황에만 충실하면 된다. 틀린 말은 아닌데 느낌이 쌔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부 시민이 홍준표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아무리 나와 상관없대도 조금이라도 공감을 해주면 안되겠느냐는 거다. 하루 골프 안 친다고 세상이 망하나. 내 생활 반경에서 일어난 사고이고, 나도 위험군에 속해있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남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맡고 있는 지역 사람들은 안전하다 -> 난 맡은 일을 다했고, 골프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홍준표의 논리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홍준표는 '국민정서법에 따라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쏘아붙였다. 가끔 과도한 여론이 정부와 정권에 포퓰리즘식 정책을 행하하도록 압박하는 건 문제다. 하지만 수십명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전 국민이 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자가 하루라도 좀 자세를 낮추고 조심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그게 그렇게 타파하고 지적해야 할 포퓰리즘인가? 평소 사이다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호쾌한 그이지만, 이로써 그의 정치생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겠다. 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번 수해도 문재인정부 시절 안전시설 투자 부족 문제로 모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사람들이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있긴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차 책임은 청주시, 충북도에 있겠지만 일단 윤석열정부 내에서 일어난 사고 아닌가. 스스로 책임지고 고개 숙이고, 재발 방지를 먼저 논하는 게 맞지 책임이 아니라고 전 정권 탓하는 일부 모습은 참 처연하다.


2021년 부산시장에 출마했다가 처절하게 발린 정규재 전 한경 주필이 최근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윤석열정부를 실드치고 시장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그는 숫제 희생자들이 무능력하고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사고가 났다고 하고 있다. 그밑에는 수십명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맞는 말'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저런 싸이코패스가 경제신문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보수의 지성 소리를 듣고 아직도 잘먹고 잘사는 걸 보면서 한가지 느낀게 있다. 


아니 우리가 많은걸 바라나. 아픈 사람들, 슬퍼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잠시만, 제발 잠시라도 공감해주는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정규재 본인은 물이 차오르는 지하차도에서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가? 저렇게 감정과 동감능력이 없어야 이 힘든 세상에서 그나마 성공할 수 있는 걸까.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기 전에 일단 잠깐 앉아서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기도할 수 없는 걸까. 그만큼 우리는 비인간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언제 누구에게 닥쳐올지 모를 재앙을 이기려면 모두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 차가운 머리만 가지고는 우리는 살수 없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기를, 또 속을건 알지만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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