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영(53)은 한 지방자치단체 노인 복지 공무원이다. 기초연금 업무를 맡고 있다. 65세 이상이 되어 새로 지급 대상이 된 가구의 소득을 따지고, 심사하는 역할이다. 소득 기준이 넘는데 찾아와서 난리를 치는 노인들이 많다. 내가 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희생을 했고, 높은 사람과 친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기영은 역전의 용사다. 민원계의 고인물이다. 친절한 공무원으로 도지사 표창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는 한껏 고개를 숙이고 어르신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러면 노인들은 금세 수그러든다. 기영은 '들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한번만 듣는 척 하면 편하다'고 후배들에게 가르친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과도한 민원인의 갑질은 사라지지 않고, 기영과 같은 베테랑이 아닌 Z세대 공무원들은 쉽게 지친다. 그들에게 조언을 하며 기영은 자신이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기영에게는 23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기영은 아들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그의 아들은 소위 '히키코모리'다.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아들은 기영과 달리 숫기가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교복이 찢어지고 눈에 멍이 든 채로 귀가하길래 물었더니 친구들이 때렸다고 한다.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던 거였다. 아들은 등교를 거부했고, 잘 타일렀지만 자해까지 하려고 했다. 결국 포기하고 잠시 쉬라고 했다. 그랬던 게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기영의 아내는 주부다. 식사를 만들어 아들의 방 앞에 두면 문을 빼꼼 열고 밥상을 들인다. 이후 문 밖으로 다 먹은 밥을 내놓는다. 그리고 문을 다시 잠근다. 이후 컴퓨터에 빠진다. 롤과 로스트아크,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등을 섭렵하다가 지겨워지면 유튜브를 본다. 넷플릭스도 본다. 그러다 눈이 아프면 자고 다시 일어나서 엄마가 해준 밥을 먹는다. 운동을 안하니 살은 100kg이 넘었다.
기영은 아들이 항상 골치였다. 명절 때마다 기영은 문밖에서 아들을 설득했지만 따라나서지 않는다. 친척 자녀들은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다는데 비교가 됐다. 7급 공무원 출신인 기영은 자신에게 자부심이 컸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역시 공무원인 아내와 결혼했다. 아들이 저렇게 되자 아내는 공무원을 그만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기영은 생각했다.
딱히 아들과 사이가 나쁜것도 아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때 낚시도 다녔고 등산도 많이 갔다. 놀이동산에서 솜사탕을 먹으며 환하게 웃는 아들의 사진은 지갑 한켠에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랬던 아이였는데 학교폭력 가해자들 탓에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학교에 항의했지만 가해자와 그의 부모들은 별다른 처벌도 받지 않고 졸업했다. 왜 우리 아이만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때 기영은 아들에게 프로게이머를 제안한 적이 있다. 롤티어가 높은 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페이커와 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면 관련 대학도 진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은 조금 호응했다. 기영은 정말 친한 불알친구들에게만 아들의 일을 얘기했다. 롤 티어 그랜드마스터를 달성하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입에 침을 튀겼다. 하지만 아들은 곧 시들해졌다.
기영은 한때 열쇠장인을 불러서 아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 적도 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기영은 거대해진 아들이 암흑속에서 하얀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는 장면을 목도했다. 아들은 갑자기 괴성을 질렀고, 주변의 과자 봉지를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저 끌고 거실로 나오기만 하면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오랜 기간 켜켜이 쌓인 아들의 마음은 그렇게 굳게 닫혀있었다. 결국 다시 나와 문을 닫아 주었다.
그날은 유난히 어려운 날이었다. 까다로운 민원인이 유독 더 까다롭게 굴었고 부서장은 요새 일처리가 별로라며 채근했다. 기영은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오다 하늘위로 노을빛이 드리운 것을 보았다. 아들과 함께 갔던 놀이동산이 떠올랐다. 바이킹을 타고 활짝 웃는 아들을 사진기로 찍는데 그때 아들의 눈동자에 비쳤던 노을빛 같았다.
맥주를 한 캔 사서 집으로 왔다. 기영의 아내는 교회에 가고 없었다. 아들이 방 밖에 나오지 않은 이후로 아내는 수요 예배, 금요 예배도 갔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아들에게 세상과 맞서싸울 힘을 달라고, 우리 부부가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자비를 배풀어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기영은 아들의 방문 앞에 걸터앉았다. 맥주의 쓰린 맛이 기영의 입을 타고 들어갔다. 맥주보다 삶은 더 쓰린 것이었다. 기영은 조용히 나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유퀴즈 보니까 어떤 아버지는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고 재단을 만들었대.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게 말이야. 그 아버지는 아들을 한번만 꼭 더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도 나는 네가 살아줘서 너무 고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꼭 한번 문을 열고 옛날처럼 활짝 웃어줬으면 좋겠다." 아들이 듣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아내가 집에오면 맥주캔을 보고 힐난할 것이었다. 그래도 기영은 생각했다. 개같은 새상에 이런 넋두리 할 사람 하나 있는 게 참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