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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언론부터 질문하라"

by hardy


뉴스로 접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대선 출마 선언 현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다. 출마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해체 등에 이어 제주도에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를 옮겨오겠다는 황당무계한 공약도 내놨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대선 출마 회견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통일당 중앙 당사에서 열렸다. 황당무계한 공약 발표를 마친 전 목사는 "이제 기자들의 질문을 받겠다. 주제와 시간은 무제한"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혀달라"라고 안내한 뒤, 손을 들고 있던 한 여성 기자에게 질문 순서를 부여했다. 그러자 전 목사는 "아니야, 아니야. (손 든 기자) 권지연이죠?"라고 물었다.


전 목사가 언급한 권지연씨는 시민언론 뉴탐사 소속 기자였다. 오랜 기간 전 목사에 대한 탐사보도를 이어온 기자다. 뉴스에 의거해 이후 응답을 기록한다.


권 기자 : "(질문) 다 받으신다고 했는데 왜 제 질문은 (안 받나)"

전 목사 : "헛소리하지 말라. 난 권지연 질문은 안 받는다"

권 기자 : "그런 게 어디 있나"

전 목사 : "당신은 범죄인이야"

권 기자 : "(방금 한 발언) 명예훼손이다"

전 목사 : "나를 고발했잖아. 왜 당신부터 손을 들고 난리야. 메이저 언론부터 (질문하라). 메이저 없냐"


곧이어 뉴스 앤 조이 안디도 기자가 손을 들었다. 뉴스 앤 조이는 대형교회들의 각종 비리와 목사들의 성범죄, 혐오 설교 등 한국 교회 권력의 병폐를 들춰내는 보도로 이름을 알린 교계 전문 언론이다. 교계에서 상당한 공신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전 목사는 "뉴스 앤 조이도 메이저 아니잖아. 좀 예의를 지켜서 메이저 언론부터"라고 했다.


그러자 권 기자가 다시 말했다.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면서 언론을 (메이저, 비메이저로) 가리는 것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유통일당 관계자와 지지자들이 "권지연 조용히 해라"고 소리를 쳤다. 전 목사도 목소리를 높이며 "권지연 끌어내" "나가란 말이야"라고 외쳤다.


현장에는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도 있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전광훈 목사님!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 대통령 선거 나가시겠다는 분이니 언론 검증을 받으셔야 한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반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송이든,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모두 똑같은 언론이다. 차별하고 편파적으로 (질의응답을) 하면 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언론사를 향해 (급을 나누고) 질문 순서를 정한 것은 잘못됐다"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전 목사는 "전혀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런 해프닝은 매번 벌어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메이저 언론사를 운운한 적이 있다. 2021년 고발사주 의혹이 불거지자 그는 “앞으로 정치 공작을 하려면 인터넷매체나 재소자, 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고 국민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 가는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했으면 좋겠다. 인터넷 매체가 한번 보도하면 정당의 전·현직 대표와 의원, 위원장 이런 사람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떠든다”고 했다.


그의 발언을 들은 한 취재진은 “메이저 언론이 아니면 보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작은 언론, 메이저 언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뉴스타파나 뉴스버스가 하고 나서 (다른 언론사가) 달라붙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뉴스를 그런데(메이저 언론)에 줘서 독자가 많은 데서 시작하면 좋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KBS, MBC에서 바로 시작하든지”라고 특정 언론사를 거론했다.


윤 전 총장이 ‘인터넷매체’로 거론한 언론은 ‘뉴스버스’라는 신생 매체였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윤 전 대통령(당시 검찰총장) 측근으로부터 여권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을 받아 정당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뉴스버스의 대표는 조선일보 출신 이진동 기자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취재했던 기자다. 김의겸 당시 한겨레 기자가 진두지휘한 기획물 시리즈나 JTBC의 태블릿 PC 보도도 대단했지만 사건을 처음으로 접하고 취재한 것은 이진동 기자였다. 그가 조선일보를 나와 뉴스버스라는 매체를 차린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참 대단한 기자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마이너 소리들을 그럴 게재가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캡처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사 숫자는 6000여 개에 달한다. 이중에 메이저 매체라고 하면 어느 곳이 포함될까. 놀랍게도 공직자나 국회의원, 교수나 법조인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의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어느 사람은 KBS SBS MBC 등 지상파 3사나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경향신문 등 5개 일간지까지가 메이저라고 한다.


또 다른 이는 5개 일간지에 한국 국민 서울 문화 세계일보를 합친 10대 일간지까지가 메이저라고 본다. 종편을 포함하는 이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메이저 매체를 지칭하는 정확한 기준이나 일관된 관행 따위도 없다. 그냥 이현령비현령이다. 그런데도 보통은 5700개 매체 가운데 10위가량에 들어야만 메이저라고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연히 큰 언론매체는 영향력도 크고, 기자도 상대적으로 취재 교육을 더 잘 받고, 기사도 더 신중하고 조심히 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선 메이저를 운운하는 일부 국민들의 마인드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사실 또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상대적으로 작은 매체 기자라고 실력까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건 언론판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너무 쉽게 말을 한다.


언론사 시험은 제대로 알고 떠드는 건가? 1년에 많아봤자 7~8명, 적게는 3명 뽑는 곳이 언론사다. 정말 가고 싶은 언론사가 있어도 만약 공채에서 떨어지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시험은 4차 혹은 5차까지 이어지고, 즐비한 명문대 지원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모든 대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거긴 1년에 계열사까지 합쳐서 수백 명은 뽑지 않나. 그러니까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언론사에 들어가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그냥 서류, 필기, 1차 면접, 실무평가, 최종면접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공채 과정을 계속 준비하며 합격하는 언론사에 다니는 게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루트다. 별거 아니라고? 와서 해보고 얘기하시라.


매체를 가지고 기자 전부를 평가하는 미개한 관행이 계속되는 건 아마 한국뿐 일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공채 시스템이 별로 없고, 대부분 조그마한 매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큰 매체로 계속 옮기는 그런 구조다. 회사보다 기자 개개인의 능력에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매체가 기자를 잡아먹는다. 아무리 뛰어나고 취재를 잘하고 해도 조금 작은 매체에 있으면 어이없는 경우를 쉽게 마주치게 된다. 큰 매체 기자들은 취재원과 카르텔을 형성해 조그마한 매체 기자들이 진입하는 걸 원천 차단한다. 그러니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형님 아우님 하면서 봐주기 관행이 정착되는 것이다. 모든 매체와 기자에 적용할 논리는 아니겠다만, 내가 13년간 보아온 언론판은 대개 그렇게 굴러갔다.


나는 명확 치도 않은 메이저 마이너 매체 기준을 들먹이는 권력자들의 저변에 숨어있는 그 의도가 훤히 보이는 듯하다. 자신을 공격하고 지적하는 매체는 마이너라 부르며 논란을 최소화하고 메신저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반면 큰 매체를 자신의 편으로 삼아 비판과 지적을 찍어 누르고 자신에게 유리한 기사로 신문 지면과 방송, 인터넷을 도배해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뻔한 술수다.

사실 나는 직간접적으로 취재원들의 노골적인 매체 편향 혹은 뜬금없는 줄 세우기 발언을 경험하면서 많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 자신을 책망하곤 했다. 열심히 발로 뛰어서 조선일보 한번 이겨보고 싶다, 취재원들에게 지상파 방송사 기자들보다 더 잘하고 열심히 하는 기자로 각인되고 싶다고 재차 다짐했다.


그런데 십 년이 넘게 지나 보니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얘기가 되고 정말 진심으로 일에 빠져서 업무를 잘하는 에이스 취재원은 쉽게 기자들의 급을 나누지 않는다. 적어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기자 개개인의 노력과 열정을 평가하지, 매체만 가지고 함부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다.


매체로 기자를 줄 세우고, 메이저 마이너 운운하면서 정작 본인은 제대로 일도 못하는 그런 취재원은 망하게 되어있다. 그런 사람은 이미 다 망했다. 큰 매체 기자를 대놓고 편애하고, 그들과만 잘 지내면 이득을 보겠지 하는 마인드 자체가 틀려 먹었기 때문이다. 과거 언론매체가 몇 곳 없던 때는 그런 방식이 통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난 지금 이 시간에도 엄청나게 큰 매체는 아니지만 각자 속한 언론사에서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뛰는 모든 언론인을 응원하고 싶다. 우리들의 열정과 인생은 저딴 치들에게 함부로 재단당할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각자 처한 환경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일부 기자들이 얼마나 숭고한지, 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우리가 만든 더 나은 내일에 그들은 없을 것이다. 별 못 배워먹은 치들이 벌이는 메이저 마이너 논란 때마다 상처받는 건 열심히 뛰는 우리 기자들이다. 힘내라고, 고개 숙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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