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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혁신할 수 있을까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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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명한 언론학자나 대학 미디어학부 교수들, 국내 미디어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 한국 언론을 지탄하며, 언론사의 혁신 방안을 논하는 모습을 보면 어김없이 실소가 나왔다. 뉴욕타임즈 혁신보고서를 말 그대로 맹신하며 왜 한국 언론은 서구 언론처럼 변화하지 못하느냐는 식의 논거가 자주 나온다. 각국 언론의 시발점과 자라온 토양 자체가 달라 비교하기가 애매한데, 현실은 모르고 이상만 쫓는 탁상공론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들의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 기자들의 취재 방식이나 보도 행태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다. 기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오랫동안 쌓이고 퇴적돼온 언론계의 고질적인 악습이 많다. 변하고 싶은데,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이 아니라 언론계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 탓에 그동안의 관행을 한번에 깨부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조그마한 것부터 혁신하고 바꾸면서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데 싱크탱크같은 역할을 하는 언론계 구루라는 집단이 너무 현실과 괴리된 얘기만 제시하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또 멋있는 척 하는 구나" 하는 식으로 넘겨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미디어의 혁신을 논하는 토론회나 좌담회는 생각보다 매우 자주 열리고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맨날 나오는 사람들이 나와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그들이 과연 미디어 전문가인지부터가 난 헷갈린다. 현직 기자나 PD, 아나운서를 잘 아는지, 자주 만나서 현실을 듣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대안과 변화를 도출한다면 수용할 수 있다. 근데 듣다보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러니 한쪽에선 계속 제안만 하고 일선 현장에서 바뀌는 건 없고, 미디어 전문가를 자칭하는 이들만 계속 서로 어울리며 카르텔을 공고화 해 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혼없는 제안만 계속할거면 이런 토론회는 도대체 왜 여는 걸까 싶기도.


이 와중에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언론의 위기와 혁신방안'을 개최한대서 따로 자료집을 요청해 받았다. 미디어오늘이 기사를 썼는데 너무 어렵고 현학적이라 그냥 내가 원자료를 받아 이해하는 게 빠르겠다 싶었다.




토론회에선 A교수님이 '뉴스 콘텐츠 품질의 양극화'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내용을 쉽게 요약해 보겠다.


그는 일단 이달의 기자상이나 한국기자상, 관훈언론상을 받은 몇가지 보도를 들며 좋은 기사는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양극화다.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는 좋은 기사를 쓰는 매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매체도 있다. 하나의 매체 내부에서도 좋은 기사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기사도 올라온다. 이런 뉴스의 이원화 현상을 인지하고, 이에 맞춘 혁신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근데 이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좋은 기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A교수가 언급한 기사들은 대부분 기획취재팀이 맡았다. 데일리하게 쏟아지는 기사는 일선 부서 기자들이 발로 뛰며 쓰고, 그 시간에 좀 여유를 두고 심층 취재를 하는 조직을 둔 언론사에서 좋은 기사가 나온 것이다. 외국 유수 언론과 달리 한국 언론은 기자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렇게 데일리한 업무에서 빼서 심층취재를 하기 위해선 인력이 부족하다.


모든 기자가 한달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여유를 갖고 취재하면서 사회를 바꿀만한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한다. 기회가 되면 상도 받고 싶다. 그런데 모두가 그럴수가 없다. 누군가는 독자를 위해 매일매일 현장기사를 써야 한다. 그러니 일선 부서에선 볼멘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애초에 난 상을 많이 받았다고 좋은 기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 받아야 좋은 기사라는 한국 언론의 괴이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본다. 마치 보도 환경 자체가 상을 위한 취재로 전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A교수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뉴스 품질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뉴스 이용자도 문제라고 역설했다. 기사 자체의 질이 아니라 정치적 호불호에 따라 기사를 판단한다는 거다. 이재명 지지자라면 이재명에 대해 좋게 평가한 기사를 좋은 기사라고 생각하듯이. 아울러 좋은 뉴스와 좋은 수익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콘텐츠의 품질 상향이 광고비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조회수나 클릭수가 더 돈이 되기 때문에, 연예인 관련 기사 저급 기사 등이 횡행하는 것이다. 뉴스는 당연히 공짜여야 한다는 한국 대중의 인식도 여기에 한몫한다.


나는 A교수가 어떤 해법을 내릴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의 해법은 이렇다.


1. 좋은 뉴스가 이용자에게 더 많이 전달되도록 뉴스 유통과 노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

2.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플랫폼의 상업적 기준을 저널리즘 중심적 기준으로 바꿀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3. 기존의 뉴스 저관여자(젊은 세대 포함)들이 고품질의 뉴스를 더 많이 소비하고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4. 청소년과 성인에 대한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 왜곡된 뉴스 판단 기준을 바로잡고 좋은 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줘야 한다.

5. 언론인의 전문직주의와 공적 책무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6. 뉴스 생산 관행을 이용자 친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7. 뉴스룸 내부 교육과 소통 활성화로 제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8. 경영진과 뉴스룸 리더십의 장기적 안목과 지원이 필요하다.

9. 장기적으로 언론사 수익 모델 개선은 필수적이다.


다 너무 좋은 내용이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좋은 뉴스가 이용자에게 전달되도록 노출방식을 바꾸라는데 어떻게? 언론사의 기사가 대부분 네이버나 카카오를 통해 공급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는데 유통 경로를 지금와서 어떻게 바꿔야 하나.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뉴스의 질을 담보하라고 어떻게 압박할 수 있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제대로 되고 있긴 한가? 언론사 수익의 60% 이상이 광고인데 이걸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미국이나 일본 일부 큰 언론사처럼 부동산 임대사업 등을 하라는 건가? A교수가 제안한 해법 중 대부분은 언론사 자체라기보단 기업이나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더 좋은 컨텐츠, 더 좋은 기사를 만들기 위해 언론사도 더 노력해야 하지만 애초에 수익구조나 유통 시스템이 언론사가 뭘 어떻게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진 토론문도 다 확인해 봤다. 그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긴 호흡을 두고 쓴 상을 받은 기사들보다 어쩌면 데일리하게 나가는 기사들의 질을 올려야 한다. 근데 기술혁신의 저주 탓에 기자 하나가 써야 하는 기사의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과거에는 신문 지면 기사만 썼다면 이제 온라인 기사까지 써야 하는 식으로.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분산되니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이를 위해 AI를 활용해 큰 분석이나 이런게 필요없는 기사는 AI에게 맡기고, 대신 심층 취재를 기자가 하는 식으로 이원화를 해야 한다는 것.


일견 맞는 말이다. 이미 날씨나 증권기사는 AI가 맡는 언론사도 있다. 그런데 통계나 숫자를 다루는 경제부나 산업부 기사 말고, 말과 사건을 다루는 정치부나 사회부에선 사실 AI가 크게 역할을 하기 힘들 것 같다. 사람 대신 가서 취재원에게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부서는 기자와 취재원간의 오랜 관계에 의해 기사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다. 그럼 AI와의 협업이 쉽지 않을텐데 혁신을 어떻게 이뤄야 할지 궁금하다. AI 때문에 전세계, 전 분야가 난리지만 그럼에도 AI와 언론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매뉴얼이나 이런게 안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는 기자 일부는 이런 혁신 논의 자체가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등따시고 배부르니 허황된 이야기만 한다는 거다. 누구는 영혼 갈아가며 일하고 있는데, 네가 매일 생산하는 기사는 질이 떨어진다고 하면 곧바로 '너는 기자로서 도대체 뭘 했다고 잘난척이냐'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아쉽지만 이게 현실이다. 솔직히 나도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런 토론회에서 말로만 혁신을 할게 아니고, 독자나 시청자에 앞서 언론사 내 다른 구성원을 어떻게 설득할 건지, 힘들고 지쳐도 이런 혁신을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 나갈건지에 대한 청사진부터 그려야 한다. 기협이나 언론재단이 앞장서서 이런 소통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맨날 토론만 하고 달라지는 건 없고 해서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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