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신입 기자들과 대면식을 진행할 때였다. 한 후배가 고민을 토로했다. 아무리 취재를 해도 자신의 기사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겁이 나고, 자신 있게 기사를 쓰기가 어려워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어차피 기자도 인간이고, 실수도 할 수 있기 때문에 100% 까지는 아니라도 99%의 정확도 달성을 위해 최대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확인을 한 뒤 기사를 쓰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말은 그리 했어도, 나도 그 후배와 생각이 같다. 언론중재위원회를 가거나 소송까지 당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내가 쓰는 기사의 힘을 잘 알기에, 13년 간의 기자 생활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취재원에게 확인하고, 문서로도 재차 확인하고, 크로스체크까지 마쳤어도 소소한 팩트가 틀린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겸손해진다. 열심히 노력해서 취재했지만, 내 기사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되, 그 최악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겸허해져야 한다. 난 아직도 이렇게 다짐한다. 기자 생활을 계속 이어간다 해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출입처에서 만난 선후배 가운데 유독 자신감이 넘치는 분들을 보면 좀 신기하다. 자신의 기사나 취재에 대한 자부심이 세고, 애사심이 강한 기자들이다. 출입처를 뒤 흔들고 있다는 자신감, 출입처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고, 출입처의 권력자 혹은 실세 취재원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그런 믿음이 행동에서 피어난다. 어찌 보면 그만큼 열심히 취재를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사실 여부를 검증했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렸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성향 차이도 있을 듯한데, 아무튼 그런 기자들이 단독도 많이 하고 특종도 하고 사회를 이끌어가고, 세상을 바꾸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내가 출입처에서 인정받는 기자라도 그런 자신감은 드러내지 못할 것 같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겸허하고 겸손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많이 배운다. 난 그런 조용하고 내공 있는 기자들이 화려하고 쉽게 눈에 띄는 이들보다 더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더 롱런하는 기자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다른 언론사나 다른 매체 기자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최대한 피한다. 언론의 제 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단 나 자신이 누굴 비판할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팀을 맡을 당시 하루가 다르게 타사에서 단독 기사가 나왔다. 어떻게 취재했든, 출입 기자가 노력해서 다른 언론사가 입수하지 못한 정보를 듣고 재차 확인해서 쓴 거다. 그만큼 노력했으니 존중하고, 손뼉 쳐야 한다. 나만큼 남들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오히려 나보다도 더 열심히 한다.
내가 출입처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없으니 경쟁은 계속 발생하고, 매일 이기고 지고 하면서 하루가 흘러간다. 동등하게 열심히 노력하는 다른 기자를 내가 어떻게 비판할 수 있나. 결국 겸허하고 겸손하면 누굴 비판할 시간에 자기 자신을 반추 또는 성찰하게 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남들에게도 배우고, 나 자신에게 체득시켜 굳이 티 내지 않아도 알아서 남들이 인정하고, 또 존중하는 그런 존재로 커가자는 게 나의 모토다. 아마 대부분의 기자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언론사의 편집권은 각 매체에 있다. 똑같은 사건이 발생해도 각 매체의 성향과 편집방향에 따라 기사가 다르게 나간다. A 사건이 보도될 수도 있고, 안 나갈 수도 있다. 한정된 지면, 한정된 방송 분량 탓에 선택과 집중은 필수다. 그러니 "너희는 왜 이걸 안 썼느냐" "너희는 이걸 왜 이렇게 썼느냐" 할 필요도 없다. 비판하는 매체도 편집 혹은 보도국 회의를 거쳐 기사를 내보냈을 거고, 그 책임은 스스로가 진다. 다른 매체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기사를 놓쳤으면 언론계 혹은 독자 혹은 시청자들이 지적할 거고, 그 언론사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거다.
모든 매체가 똑같은 기사를 똑같은 논조로 똑같은 논거를 통해 쓰면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다 똑같은 기사만 쓰면 그거야 말로 독재정권 하의 땡전뉴스다. 다양성이 사라진 죽은 미디어다. 그러니 지금 한국의 언론 구조야 말로 어찌 보면 건강할 수도 있다. 보수 매체가 있고 또 진보 매체가 있고, 그 가운데 중도 매체가 있다.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 말로 다양성이 생명인 민주주의를 더 확대 재생산하는 일이다. 물론 극우나 극좌 성향의 이상한 매체가 근거도 없는 걸로 기사를 써대는 건 지양해야겠지만.
얼마 전 MBC가 다른 방송사를 비판하는 리포트를 내보낸 적이 있다. 논거는 이렇다. 계엄을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이 궤변을 늘어놓았고, 다른 언론사들이 별다른 비판 없이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는 것이다.
[YTN 온라인 기사 (지난 3월 8일)]
"윤 대통령은 오늘 오후 6시 20분쯤 관저에 도착한 후 반려견들을 안아주고 김치찌개로 저녁 식사를 하며‥"
든 방송이 생중계에 나섰습니다.
[KBS '뉴스9' (지난달 11일)]
"거리에서 지지자들과 직접 인사를 나눴고, 차 안에서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메시지도 냈습니다.>"
[채널A '뉴스A' (지난 2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변호인단에 "탄핵 공작에 맞서 국민이 승리할 것"이라며 함께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핵 심판의 기준이 헌법재판관들의 정치 성향에 좌우될 것처럼 호도했고,
[TV조선 '류병수의 강펀치' (지난달 3일)]
"고성이 오가면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또다시 3명의 보수 재판관들이‥"
막연한 추측을 그럴싸한 전망으로 포장하기도 했습니다.
[SBS '8뉴스' (지난 3월 27일)]
"인용 5명 대 기각 또는 각하 3명으로 의견이 갈라져 있는 상황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MBC는 그러면서 '헌정을 뿌리째 뒤흔든 내란 사태에도 많은 언론은 쉬운 길을 택했다. 상식과 궤변을 동등하게 다뤄주는 형식적 균형으로 판단을 회피하면서, 위헌과 불법이 명백했던 계엄을 논쟁적 사안으로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탄핵 심판 관련 기사 8100여 건 중 양측의 주장만 나열한 이른바 '따옴표 기사'가 30%가 넘는 2500건이나 됐다고 부연했다.
근데 사실일까? 이런 보도들을 보자.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902266
https://www.youtube.com/watch?v=A9ea_Zgzpws
https://www.youtube.com/watch?v=YRdprerz4YU
https://www.youtube.com/watch?v=EjI-QEb0qLM
https://www.youtube.com/watch?v=ui95mqsx5Po
MBC가 비판했던 SBS, 채널A, YTN, KBS, TV조선의 계엄 관련 보도 중 하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번 계엄을 두고 경고성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놨고,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는데 이를 지적하는 팩트를 보도하는 리포트들이다. 계엄을 지적하고, 그 실체를 파헤치는 이런 보도는 수없이 많았다.
앵커가 대놓고 워딩과 말로 누군가를 비판해야만 참 언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각 매체가 입장이 있더라도 통상 기자는 아예 적나라하게 누군가를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제삼자로서의 위치를 견지하며 팩트를 파헤치고, 그 팩트를 바탕으로 기사를 씀으로써 무언가를 반박한다. 위에 언급한 리포트들은 결과적으로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는 팩트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그렇다면 이들 매체에게 함부로, 쉽게 "윤 대통령의 궤변을 그대로 보도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 하나.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윤석열에게 쏠려 있는데, 그쪽의 워딩과 반응을 보도하지 않을 수 있나? 여러 개의 리포트 중에 하나 정도만 할애해서 윤석열의 입장도 싣는 것이다. 그다음 또 자체적으로 취재한 팩트를 바탕으로 계엄의 부당함과 계엄 실행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계엄 이후 대다수 방송사의 뉴스가 구성돼 왔다.
근데 리포트 하나만 꼭 집어서 무비판적으로 보도를 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지적하는 지극히 편협한 미시적 사고에 불과하다. 리포트나 기사에 노골적으로 비판을 넣으면 참기자 또는 참언론인가? 오히려 발로 뛰어 팩트를 통해 계엄을 지적하는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보다 고차원적인 기사가 아닐까?
문득 세월호 때가 생각난다. 사건 발생 직후 MBC 출신인 이상호 기자라는 분이 팽목항에서 마이크를 잡고 울분을 터뜨리며 "연합뉴스! XXX들. 내 후배였으면 내 손에 죽었어"라고 소리쳤다. 나는 현장에 있었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이상호 기자는 정부의 수색상황을 연합 등 매체들이 그대로 받아 적었다며, 제대로 수색을 하고 있는지 검증을 해서 기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는 취지다.
아니 근데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하루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그런 심층 취재를 언제 하나. 일단 정부가 몇 척의 배와 몇 명의 인력을 수색에 투입했는지 기사를 쓰면서 또 시간을 두고 견제와 감시를 통해 실상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면 되는 것 아닌가? 불과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이상호 기자가 지적했던 류의 정부 비판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검증기사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부 발표도 함께 보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취재도 하는 것이다. 세월호 현장에서 수개월 발로 뛴 나로서는 이상호 기자의 울분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번 MBC의 보도 행태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메이저 매체라고 좋은 내용의 보도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 매체 소속 기자라고 모두 실력이나 인성, 능력이 메이저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더 겸손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성찰하고 반추하는 것이 옳다. 모두가 같은 논조로 기사를 내는 것은 그저 독재다.
또 계엄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목도하며 각 언론사는 한결같이 이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며 계엄 선포 과정의 허구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이런 노력 자체를 아예 없던 것처럼 매도하고, 생각도 없이 윤석열의 말을 그냥 받아만 적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정치적 선호 혹은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언론계의 한 일원으로서,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MBC는 이 리포트를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한 걸까? 확신범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