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브런치에 정권이나 정치 관련 글을 올리면 무수한 사람들이 들어와 댓글이나 메일로 욕을 했다. 그래도 나는 기자고, 쓸만한 주제가 이런 거밖에 없어서 꾸준히 올린다. 브런치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누군가는 이런 영역의 글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새 올라오는 글이 다 똑같아 보여가지고..
우선 나는 지난해 12월 계엄사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정권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혼돈에 빠진 대한민국을 잘 보듬고, 좋은 정책과 잦은 소통을 통해 부디 국가를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놔 줬으면 한다. 이와 별개로, 최근 대통령실의 대 언론 방향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이 몇 개 있었다. 6년 가까이 정치부를 하기도 했고, 특히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입기자로 4년간 일했던 경험에 비추어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브리핑 생중계. 대통령실은 국민과의 소통과 경청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에 발맞춰 브리핑룸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브리핑 생중계를 도입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브리핑 투명성을 높이자는 제안 때문이라고 한다.
생중계의 맹점은 기자의 자기 검열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특히 정권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질문이 어떻게 비칠지를 고민하게 된다. 기자라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하라고 속 편히 얘기하는 치들도 있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문재인정부 때도 아무것도 아닌 기자의 제스처 하나를 두고 얼마나 두루두루 지적하고 욕을 했는지.. 기자도 공인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숙명이고, 감내해야 한다. 징징대면 안 된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다.
근데 기자도 사람이고, 자신의 얼굴과 소속 이름이 생중계된다면 겁을 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날 선 질문보다는 약한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
나는 매번 기자들이 알 권리 운운할 때마다 실소를 해 왔다. 아니 우리가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궁금증을 듣고, 대신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기자나 언론사가 궁금한 걸 물어보고 있는데 그걸 국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자찬하는 게 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일부 대형 언론사나 일부 유명한 기자들이 알 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극혐해 왔다. 그냥 기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대신 상식에 비추어, 다수의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할게 뭔지를 생각은 먼저 해보겠지만.
기자로서 브리핑에 참여해 보면, 이런 핵심 질문은 초반에 다 나온다. 이제 그런 질문을 변주해서, 뭔가 감추고 얘기하지 않으려는 브리퍼와 밀당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제되고 세련된 질문이 다 끝나고 뭔가 아프고 디테일한 질문도 나온다. 소위 긁는 질문이다. 분명 예의는 갖춰야겠지만, 그래도 정보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비아냥도 대보고 해야 한다. 남들이 묻지 않는 민감한 질문도 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관심사가 하나가 아니기에, 이렇게 다양한 질문 - 대통령실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는 -이 나와야 그나마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생중계를 통해 자신이 드러나고, 정치 과잉인 대한민국에서 그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날 걸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기자가 어떻게 맘속에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겠나. 그러니까 자꾸 대통령실이 기자를 압박하고, 아름다운 질문만 하도록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거다. 브리핑 생중계는 겉으로 보기엔 투명한 국정 소통의 일환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따져보면 더 다양하고 아픈 질문을 막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실은 백브리핑을 없애고, 모든 브리핑을 실명으로 보도 가능하게 바꿨다. 여기서 잠시 설명.
브리핑의 종류부터 좀 설명하면, 우선 온브리핑. 카메라들이 들어와서 찍는 공식 브리핑이다. 보통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거나, 중요한 공식 발표는 온브리핑으로 진행해 왔다. 이어 대변인이나 춘추관장이 "온브리핑 종료하고 이제 백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나 사진기자분들은 퇴장해 달라"라고 한다. 그러면 바로 백브리핑이 시작된다. 이때는 온브리핑 내용에 대한 설명, 좀 민감한 내용이나 디테일한 참모들의 논의과정 등을 설명한다.
백브리핑 내용은 실명으로 쓸 수 없는 게 관례였다. 암묵적 룰이 있는데, 청와대 대변인이나 춘추관장 급은 핵심관계자, 수석급 이상은 고위관계자, 행정관 이하 급은 그냥 관계자 등으로 나눠서 처리한다. 물론 단독 기사를 쓸 때는 수석한테 듣고 취재원 보고를 위해 핵심관계자로 처리하는 등의 테크닉도 이어진다.
온브리핑과 백브리핑은 쿼터 따는 게 가능하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2일 ""라고 밝혔다. 이건 온브리핑 기사다. 근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라고 설명했다. 이건 백브리핑을 기사로 처리한 거다. 여기에 더해 딥백브리핑이 있다. 이건 쿼터를 따는 게 불가능하다. 백브리핑보다 더 딥하고 민감한 정보를 다룰 때 사용한다. 이때는 그냥 대통령실은 ~~~ 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녹여서 처리한다.
난 처음 청와대 출입을 하면서 왜 이렇게 브리핑을 복잡하게 할까 궁금했다. 그냥 지금 이재명정부가 하는 대로 다 공개하고, 다 실명처리하면 되지. 근데 그게 불가능했다. 청와대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민감한 정보가 다 모인다. 우리나라를 운영하는 최고 높은 기관 아닌가. 그러다 보니 공개되는 정보가 정말 제한적이다. 기자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청와대 내부 정부의 3%도 모른다는 얘기도 있다. 취재가 안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민감한 외교사안, 새어 나가면 국익을 해칠 수도 있는 정보가 무수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기자들도 제대로 취재가 안된 상황에서 쓰는 기사들이 많다. 사실 나도 그랬다. 아예 없는 얘기를 쓰는 건 아닌데, 디테일한 취재가 아예 막혀있다. 그렇다고 기사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니 설익은 기사가 나간다. 필연이다.
그때마다 청와대 참모들은 전화를 했다. 이런 부분이 틀렸고, 사실은 이렇다고 설명을 해줬다. 그러면서 기사에 반영을 해달라고 했다. 이때 실명으로 쓸 수는 없다. 그들도 일부 틀린 기사로 인해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 바로잡기 위해 정보를 준 거지만, 자신이 드러나는 건 부담스러워했다. 그때마다 딥백브리핑을 소화하는 식으로 기사에 반영했다.
언뜻 보면 백브리핑을 없애고, 온브리핑만 하고 실명으로 기사를 쓰게 하는 방법이 매우 투명해 보인다. 다만 온브리핑에선 그저 설익은 정보만 나온다. 민감한 얘기, 딥한 정보를 생중계로 말할 리가 없다. 그냥 좋은 이야기, 아름다운 미담, 수박 겉핥기식의 일방적 정보전달만이 이뤄진다. 브리퍼 실명을 걸고 기사가 나가는데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불가능하다. 그러면 기사는 다 설익은 채로 나가게 되고, 이건 결국 또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방해하게 된다. 사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그저 대통령실이 주는 기사만 소화하게 된다. 추가로 취재를 하라고? 정보를 갖고 있는 쪽이 일방적으로 "브리핑에서 다 얘기했잖아요"하는데 무슨 취재가 되겠나.
결국 이재명정부 대통령실이 취임 직후 마련한 대 언론 방향은 겉으로는 투명해 보이지만 결국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나도 기자라 너무 기자 입장에서 말하는 것 같지만, 언론의 존재 이유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대신해서 정부에 질문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이고 이번 정부의 언론 정책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건 확실하다.
들어보니, 대통령실은 홍보소통수석은 1진 이상 전화만 받기로 했다고 한다. 2진 이하 기자는 대변인과 부대변인 위주로 전화하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보통 대통령실은 각 회사마다 2~3명의 기자가 출입한다. 1진은 반장으로, 보통 15~20년 차 이상 기자다. 2진 이하는 연차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니까 기자와 청와대 참모가 급에 맞춰 소통하겠다는 뜻이다. 일반 기업이면 이런 방법이 효율적일 듯하다.
내가 문재인정부 청와대에 나갈 때도 대놓고 명시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기조가 있었다. 수석급 이상 참모에게 전화하면 "너네 1진 기자랑 통화했다"라고 하고 끊었다. "저한테도 얘기를 좀 해주세요" 하면 "너네 회사 내부서 소통이 잘 안돼? 1진이랑 사이 안 좋아?" 이런 식으로 나왔다.
수석급 이상과 대변인 이하는 말할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 자체가 다르다. 권한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변인은 모른다고 해도, 수석은 뭐라도 좀 얘기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책임의 문제다. 그러면 2진 기자는 맨날 "청와대는 입장 없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하는데 또 1진 기자는 다른 식으로 정보를 듣는다. 효율화라고 하지만 2진 이하를 철저히 무시하는 이런 모습에 나는 신물이 났고, 누가 뭐래도 높은 참모들에게도 맨날 전화했다. 1진이랑 통화했다고 하면 1진은 1진이고 나한테도 좀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연차 차이로 가르는 게 어딨나. 그냥 열심히 하고, 남들이 안 하는 질문하는 기자는 더 인정을 해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디 현재 대통령실 출입하는 2진 이하 기자들도 이런 천편일률적인 방침에 순응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또 열심히 취재했으면 좋겠다. 수석들 한테도 전화하고 비서실장한테도 하고, 심지어 대통령한테까지 더 연락하고 했으면 좋겠다. 참모들이 난색을 표하고 어려워할 만큼 저돌적으로 취재했으면 좋겠다. 세상은 움츠리지 않는 기자의 기사를 통해 조금씩 바뀐다.
나는 문재인정부 초반에 너무 쫄았다. 모든 게 어렵고 눈치가 보이고, 나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내가 보는 게 칼럼이고, 내가 쓰는 게 기사였다. 다들 나보다 대단한 것 같았지만 또 그렇지도 않았고, 청와대 핵심 참모인줄 알았는데 사실 별거 아닌 경우도 있었다. 취재도 안되고 눈치 보이고, 무시당하고, 가끔 말도 안 되는 누명까지 써야 하는 대통령실 2진 기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뛰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