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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같지도 않은 기자들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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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나는 기자를 두고 실속이 별로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남보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월급이 확 오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이 너무 작다. 사실 기자도 직장인이니 당연한 일이다. 더 나아가, 기자는 일반인과 비교해 다양하고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지만, 어차피 기사를 쓰기 위한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 이걸 가지고 내 사리사욕을 채우는 순간 이해충돌이 빚어지고, 그때부터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브로커이자 양아치가 된다. 그러니까 결국 실속이 없어야 하는 게 기자인거다. 그래야 기자다운 기자인거다.


옛날엔 그렇지 않았다. 전설처럼 떠돌아다니는 얘기가 많았다. 과장이 좀 섞였어도 대부분 사실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어느 지역 재개발 재건축을 들어가는데, 출입기자 일부에게 미리 정보를 뿌려서 기자들이 그 일대 집을 사고 차익을 누렸다는 이야기. 이건 그냥 취재원이 기자에게 밥을 사거나, 해당 언론사에 광고를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과거에는 이런 언론 특혜가 많았다고 들었다. 요새는 다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믿었다.


그러다 경찰과 금융당국이 최근 일부 기자들의 주식 선행매매 범죄 정황을 수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난 많이 놀랐다. 나 같은 일반 기자들은 당장 내일 쓸게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살았는데 기자라는 직업을 이용해 저렇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저딴게 기자라고 힘을 주고 다녔구나 하니까 부아가 치밀었다. 왜 저런 사기꾼 양아치들 때문에 나같은 평범하고 선량하게, 성실하게 하루하루 사는 기자가 단체로 욕을 먹어야 하나. 기자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도 너무 쪽팔리고 부끄럽다.


이들의 수법은 이랬다. 한 상장사가 삼성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장 마감 전에 출고한다. 당일 상장사 주가는 30% 급등해 상한가를 친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이 주식을 다량 매수한 뒤 호재성 기사를 썼다. 이후 매도해 상당한 시세 차익을 본다. 이런 짓을 11달 동안 반복하며 10개 종목에서 5억원 이상 벌었다는게 금융당국의 수사 결과다. 이런 특징주 기사를 쓴 기자가 무려 2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일부 기자들이 공모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여러 명이 한 그룹으로 움직이면서 특징주 기사를 비슷한 시점에 잇따라 출고했다. 그래야 SNS 등을 타고 빠르게 퍼져 주가가 더 크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자 배우자까지 참여해 특징주 선행매매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대부분 경제지 기자들일 것이다. 주식 기사를 일간지에 비해 더 많이 쓰고, 비중도 크기 때문이다. 독자나 국민이 아닌,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기사를 싸지르면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상이 너무 쉽고 만만해 보였을 터다. 죄에 합당한, 크고 무거운 처벌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는 사실 이해가 잘 안 간다. 제대로 일을 하는 기자라면, 저런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할 시간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일이 편했으면 1년 가까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저 기자들이 소속된 매체도 황당하다. 수개월에 걸쳐 저런 식의 좀 이상한 기사가 나가는데 데스크 선에서 왜 안걸러졌을까? 데스크도 한 패라서 그럴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굳이 주식 선행매매뿐일까. 저런식으로 알음알음 정보를 얻고 이를 활용해 뒤에서 잇속을 챙기는 기자들이 더 있을 것이다. 나름 또 머리를 쓰면서 누릴거 다 누릴 것이다. 실속을 챙기면서 기자랍시고 고개 들고 다닐 것이다. 근데 본인들도 사람인데, 후배들 보기 낯뜨겁지 않나. 누구보다 기자를 하고 싶었고, 기자가 된 이후에도 나름 내 위치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보도하고 해 온 입장에서 저들이 기자가 되면서 기자를 간절했던 누군가가 기회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분통이 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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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단수의 수법 이외에도 기자들의 비위는 여러차례 세상에 알려졌다. 2022년엔 가짜 수산업자한테 돈을 받고, 고급 차량을 무상 이용하고, 유흥접대 서비스를 제공받고, 수산물도 받고, 골프채도 받고 한 언론인들이 대거 기소됐는데 그중 일부는 현업에 복귀해서 아직도 잘 먹고 잘 산다. 대장동 민간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의 대주주 김만배씨(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과 수억원의 돈거래를 했던 언론사 기자들도 있었다. 다들 에이스라 불렸던,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고 유명한 기자들이었다. 아마 평소에 후배들에게 기자란 무엇인지, 취재란 무엇인지,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지 잔소리하고 가르쳤던 사람들 일게다. 기도 안 찬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이런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일부는 영원히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묻힐 것이다.


상술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기자에게 한눈팔 시간은 없다. 일이 지루해지고, 오만해지며,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다른 게 눈에 들어오고 그때부턴 정무감각이 작용하지 않는다. 범죄가 아니라 형님 아우한테 잠깐 도움을 받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점점 범죄가 더 깊고 커져만 간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기자들이 점점 더 타락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나다를까, 주식 선행매매 기사 댓글에는 또 기자들을 욕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모든 기자들이 저런식으로 뒷돈을 챙긴다는 식의. 할 말도, 변명도 없다. 또 어찌보면 성실한 기자들이, 인생 갈아가며 남들과 다른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는 기자들이, 기자같지도 않은 저런 기자들과 비교해 실속없이 남는 거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외치지만 그래도 가오는 돈에서 나온다고 맘속으로는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돈이 필요하면 대기업으로 옮겨서 정당하게 돈을 벌든가 하면 될 것 아닌가. 기자로서 대접은 받고 싶고, 기자라는 자존감과 유니크함은 챙기면서 동시에 돈도 많이 벌고 실속까지 얻으려하니 이런 사달이 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택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살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 욕심이 기자 같지도 않은 기자를 만드는 배경이라고 본다.


나는 어차피 돈 보다는 다른 걸 선택했다. 대기업도 가기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기자의 꿈을 안고 일간지에 들어왔다.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주는 경제지도 생각조차 안했다. 그냥 사회나 정치분야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십년넘게 기업과 비교해 적은 월급을 받으며 사는 내 모습이 실속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힘들었지만, 그 가운데 즐겁고 행복한 날도 있었다. 내 기사로 법이 바뀌고 제도가 나아지면 그렇게 배가 부르고 기뻤다. 나 같은 기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좀 바보 같더라도, 좀 기자 같은 기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 20대와 30대가 부정당하지 않도록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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