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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와 대의

by hardy


브런치에 정치 관련 글을 올리면 구독자가 떨어진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으나, 기자로서 단상을 남기는 공간인데 정치 얘기를 안 쓸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의견이 다르다 해도, 공감가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만, 못 참겠다 하시면 그냥 구독을 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무튼..


이재명 대통령이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모양인가 보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한 것을 두고 일부 지지자가 "역시 대통령님 대단한 결단이다" "심사숙고끝에 정사를 바로잡고 있다"고 표현한 걸 보고 조금 웃겼다.


애초에 대통령실이 제대로 검증을 못해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자를 지명했고, 논문 표절을 비롯한 각종 의혹이 불거졌고, 후보자가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얼토당토한 입장을 내놨고, 국민 분노는 더 커졌고,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대통령실이 뒤늦게 나선건데 결단은 무슨 결단. 그저 제 3자 입장에선 정부 출범 초반부터 인사에 제대로 실패한 거로 밖에 안 보인다. '윤석열보단 낫다'고 하면 할말 없는데, 어느편도 아닌 입장에선 사실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거 하나 없게 느껴지기도..




강선우 후보자 관련 의혹은 계속 터지지만 보좌관 갑질이 제일 큰 것 같다. 보좌진에게 집 쓰레기를 버리게 하거나 자택 변기 고장 수리를 부탁했다는 것. 보좌진에게 이삿짐 나르기를 시키거나 대리운전을 지시한 의혹도 제기됐다. 당선 이후 5년 간 보좌진을 46번이나 교체한 이력도 있다. 보좌진을 바꾸는건 의원의 권한이긴 하지만 다른 의원실에 비해 그 횟수가 과도하다는 게 포인트였다. 국회 보좌관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강선우 방이 유명하긴 했다고 한다.


강 의원 자체가 21대 국회에서 이른바 '태움 방지법'을 발의하는 등 약자를 위한 갑질 근절에 나서왔는데 본인 스스로가 약자인 보좌관에게 갑질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국민의힘 뿐 아니라 민주당 보좌진들도 강 의원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내놨으니 말이다. 이 사태를 먼 발치서 지켜보며 내가 수년전 썼던 칼럼도 생각났다. 참 달라진게 없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1875


여기에 더해 강선우 의원은 언론에 제보한 보좌관을 색출해냈다. 2차 가해다. 갑질을 해놓고선, 을이 꿈틀하니 아예 밟아버린다.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은 그를 임명할 모양이다. 국정 초반 동력을 이어가고 주도권을 잡으려면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모양새긴 하다. 1명은 실수로 볼 수도 있다. 이진숙까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장관 후보자가 2번 연속으로 낙마하면 더 이상 실수가 아닌 게 된다. 야당에 휘둘리는 모양으로 비칠 수 있다. 또 강선우 후보자는 국회 출신이고, 국회의원 프리미엄도 있다. 이런 다양한 상황이 맞물려서 강선우 논란은 일방적으로 일단락 되는 듯하다.





난 강선우 관련 뉴스를 계속 보면서 인사청문회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민주당 쪽에서 능력 검증과 도덕성 검증을 나누고, 능력 검증 부분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대한민국 사람들만큼 도덕적인 사람들도 사실 없을 것이다. 정도 많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민주화 이후 법과 제도를 누구보다 잘 지키는 이들이 우리 국민들이다. 그러니 우리를 대표하거나 우리의 삶을 바꾸는 정책을 총괄하는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기준도 높을 수 밖에 없다. 사실 후보자의 이력만으로 국민들이 그의 능력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사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니 대통령실이 임명을 했을 거다.


그리고 만기친람의 국정 운영이 보편화된 대한민국에서 장관 하나가 능력이 아무리 있다고 뭔가 크게 달라질 거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적어도 대중이 수용하고 인정할만한 도덕성을 갖춘 인사를 임명하는 것이 옳다. 능력은 당연히 있어야하고, 도덕까지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너무 까다롭고 어려울 터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나날이 선진화되고 있는데, 거기에 맞춰야 정부도 선진국 정부가 되는 것이다.


강 의원이 장관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의 실체가 드러날 일도 없었을 거다. 당연히 언론이 검증을 하고, 뭔가가 터져나온다. 후보자가 해명도 한다. 그걸 바라보며 국민은 생각을 하게 된다. 수용을 할 수 있는 부분인지 아닌지. 강 후보자 말고 이번에 다른 장관 후보자들도 크고 작은 의혹이 있었는데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라서다. 일반 국민이 일개 국회의원을 제대로 알긴 하겠나. 강선우 의원 자체도 유명한 의원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뉴스를 보고, 해명을 듣다보니, 국민 대다수가 이건 아닌데 싶으니까 이렇게 반대 분위기가 커진 거다. 단순히 국민의힘 의원들의 주장에 동조한게 아니다. 국민들이 훨씬 더 똑똑하다. 난 이번 국면에서 국민의힘의 무존재감을 다시한번 느꼈다. 내란을 떠나서, 진짜 일을 못하는 것 같다. 야당으로서 제대로 정부를 공격하지도 못하고, 스타 플레이어도 없다. 스스로 자생하지 못하면 파멸하는게 맞는데 그러면 또 민주당이 제멋대로 날뛸거 같아 걱정이 된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한국 정치판만큼 위험한 게 없어 보인다. 그게 곧 독재의 시작 아닐까 싶기도.





상식적인 사람이 바라볼때 분명한 문제가 있음에도 지지자들이 기를 쓰고 실드를 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대의 때문일 터다. 이재명정부는 사상 초유의 계엄 사태를 딛고 출범했다. 정신나간 이의 정신나간 선택으로 추락할 뻔한 대한민국을 다시 정상 궤도 위로 올려놔야 한다.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이다.


그럴려면 국정 초반부터 추진력있게 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잡음을 없애야 한다. 또 그럴려면 강선우 의원이 무사히 여가부 장관이 되어야 한다. 야당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분위기가 되면 안된다. 그러니까 "국힘 의원 보단 낫다"는 말이 자동반사처럼 나오는 거다. 아니 내란당이랑 굳이 왜 비교를? 우리는 지금 강선우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다.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도 여전히 내란 주도 세력에게 휘둘리고 있는 야당 같지도 않는 야당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대의를 쫓다보니 진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잊고 있다는 거다. 약자의 권리 보장, 누구나 마음껏 일할수 있는 일터 만들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당당하게 이를 알릴 수 있는 그런 사회 구축.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워온 대중과 소위 진보 인사들이 꿈꾸던 나라였다. 수십년간 어렵게 그런 나라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는데,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당에서 이런 논란이 계속 터진다. 그럼에도 정치에 경도된 일부 지지자들은 보수 정당이나 세력이 너무 싫으니까 이런 가치는 쏙 빼놓고 실드를 친다. 그러고선 그런 가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내란 세력 혹은 수구 꼴통으로 몰아세운다. 뭔가 주객전도된 처사 아닌가?


그러니 지금 민주당을 진보 정당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진보를 내세우지만 정작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법안이나 정책을 만들지 않고 있다. 만들 수 있는데, 안 만든다. 그러니 지지할 수 있는 정당이 없고 정치 혐오가 가속화된다.




MZ 세대의 등장과 함께 나는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이들에겐 대의 보다 소의가 중요하다.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진영 논리는 지겹고 어렵고 진부하다. 쌍팔년도 얘기다. 대신 일자리를 늘려서 나의 취업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나 정당을 선호한다. 대학 등록금을 좀 더 싸게 해주거나 해서 본인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거나 좀더 살기 좋아졌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정당 말이다. 맨날 정치인들이 말로만 떠드는 그 민생, 그 민생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세대다.


뭔 얘기만 하면 진영 논리로 싸우는 4050 세대를 이어 이들이 사회 주도 계층이 되면 대의만 내세우는 이야기는 더 공허해 질 터다. 잘 파악도 안되는 공직자의 능력이나 이런것 보다는 그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약자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또 미래세대를 위해 어떤 법안을 냈고 스스로 타의 모범이 되도록 살아왔는지 등이 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강선우 사태는 이런 시대적 전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증거일 수 있다. 더 치열하게 대중의 눈높이를 체크하고, 정무감각을 더 키우지 않는다면 진보든 보수든 금세 자멸할 것이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보좌관들 얘기다. 의원 앞에서 보좌관은 을이 맞다. 근데 그들은 과연 사회에서도 을인가?


청와대와 국회를 출입하며 수백명이 넘는 국회 보좌관을 만났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인사 청문회 시즌마다 매일 아침 의원실에서 회의도 하고 토론도 했다. 그중에는 의원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열망 넘치고 유능한 이들이 많았다. 반면 허세만 차고 능력도 없이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뭐가 얘기가 되는지도 모르고, 그냥 말도안되는 자료 하나 던져주고선 기사 언제나가느냐고 보채거나, 내가 너희 회사 선배 기자 누구랑 친하다고 하면서 신입을 깔보는 그런 사람들. 의원 지역구에서 의원 대신 득세하면서 이권을 챙기는 그런 보좌관도 많다.


공무원이나 기업인에게 전해 들은 보좌관의 갑질 사례는 무수하다. 부처 국장급 공무원이 3~4시간 넘게 비서관을 기다리는 건 예사다. 기업 대관쪽에 공연 티켓이나 공짜 골프를 넌지시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호가호위 하는 보좌관도 있다. JTBC가 초창기에 만들었던 허무맹랑 드라마 '보좌관'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던 이유다. 국정감사 때마다 피감기관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는 그놈의 가을독사는 왜이리 많은지. 만났던 보좌관들마다 가을독사가 다 자신을 모티브로 했다는데 좀 어질어질했다. 사실 살인적인 노동강도 탓에 사명감 없으면 못하는 직업은 맞는데, 그만큼 스스로가 갑질에 익숙해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영감(의원)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피감기관이나 기업 등에 푸는 걸까?


아무튼 보좌관들도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좀 돌아봤으면 한다. 본인들이 국회에서나 을이지, 국회 밖의 사람들에겐 갑이지 않나. 본인들이 피감기관에게 강선우 의원같은 행태를 하고 있진 않은지도 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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