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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15. 2019

대통령 광복절 연설문 분석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광복절 행사 메시지일 것이다. 보통 신년사와 3/1절 절 기념사, 8/15 경축사, 국회 시정연설 등 4가지를 가장 큰 연설로 꼽는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수석보좌관회의와 격주로 진행하는 국무회의 모두발언, 지방 경제행사 연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은 이 4번의 연설에서 본인의 정치철학을 밝히고 국민과 함께 만들고 싶은 나라의 국상을 역설한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8/15 경축식을 앞두고 긴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교착상태인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과는 어떤 외교전을 벌일 것인지. 일자리 문제와 주 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 현안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지.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독립과 광복의 기쁨 등 과거로 출발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며 종국에는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지 궁금했다.



올해 대통령 광복절 연설의 큰 줄기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였다. 이를 위해 자유무역을 통한 책임 있는 경제강국 실현, 한반도의 '교량국가'화, 남북 평화경제를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 등 3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일본 문제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 국면에서 대일 강경 발언은 최대한 자제했다. 다만 "일본이 대화의 길로 나온다면 그 손을 잡을 수 있다. 일본도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우리와 함께 이끌어가자"며 화해의 시그널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매우 잘 쓰여진 연설이라고 생각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한달 반 가량 대국민 설문조사까지 진행하며 연설문 작성에 '올인'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관련 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문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하루 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 과거사 문제에 집중하고, 광복절 경축사에선 한·일 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강조하는 ‘투트랙’ 기조를 유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당시 경축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 협력은 결국 북·일 관계 정상화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일본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특히 과거사 갈등과 관련된 내용도 없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일본을 향해 “역사 문제의 경우 인류의 보편적 가치 등에 기해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지난해 경축사에서 여성의 독립운동을 주요 주제로 다뤘다. 문 대통령은 “여성의 독립운동은 깊숙이 묻혀 왔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등 수출 규제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독립의 정신을 기리는 광복절에는 오히려 품격있고 우아하게 일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제스처를 선택한 것 같다. 날선 공격의 발언보다 훨씬 더 아프고 강하게 일본을 압박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북한 문제

문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최근 북한 미사일 도발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쏘는데 무슨 평화 경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또 “평화경제를 통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만들겠다. 우리의 역량을 더 이상 분단에 소모할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지만, 그 역시 궁극의 목표는 대결이 아니라 대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북한과 동요 없이 대화를 계속하고, 일본 역시 대화를 추진하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북한과 어느 세월에 경제협력을 해서 일본을 이기겠다는 것인가”는 야당 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서 남북 상호 간 이익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평화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새로운 한반도’의 문을 활짝 열겠다”고 강조했다. 또 “광복절을 맞아 임기 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다짐한다”며 “그 토대 위에서 평화경제를 시작하고 통일을 향해 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경축사에서도 남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당시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한달 남겨둔 시점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은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며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북핵 위협이 줄어들고 비핵화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던 역사적 경험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또 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연설에는 "북미 간 실무 협상이 빨리 재개 되어야 한다"고만 언급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협상 조건보다는 빠른 협상 재개 등 시점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문제

청와대는 이번 경축사를 ‘광복절 경축사 중 최초의 경제 연설’이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연설의 상당부분을 경제와 연결지어 풀어냈다. 책임 있는 경제 강국과 북한과의 경제협력, 남북 철도 공동체를 통한 교량국가화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 준비를 위해 참모들과 회의를 하던 중 "국민께 경제 관련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경제 연설은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가 크게 작용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중심으로 민정비서관실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정무 비서관실을 국회의원과 원외 위원장들을 대상으로 “대국민 메시지가 어떻게 나가야 한다고 보나”고 물었다. 응답자들은 ‘혁신과 평화’, ‘도전에 성공한 국가’, ‘완전한 기술 강국’, ‘개방하여 지속 성장하는 국가’, ‘자유무역 통해 세계와 함께 성장하는 모범적인 국가’ 등 경제의 역동성을 강조하자는 의견을 냈다.  


문 대통령은 다만 남북 평화경제를 언급하면서도 "향후 30년간 남북 경제협력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 170조원에 달한다"며 경협 확대 드라이브를 예고했던 지난해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남북 경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리 정부가 중심이 되어 평화경제, 한반도의 교량국가화 등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에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언급도 없었다. 대신 "부산에서 시작하여 울산과 포항, 동해와 강릉, 속초, 원산과 나진, 선봉으로 이어지는 환동해 경제는 블라디보스톡을 통한 대륙경제, 북극항로와 일본을 연결하는 해양경제로 뻗어 나갈 것"이라며 경협보다는 국내부터 시작하는 사업을 언급했다. 또 "여수와 목포에서 시작하여 군산, 인천을 거쳐 해주와 남포, 신의주로 향한 환황해 경제는 전남 블루이코노미,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신산업과 개성공단과 남포, 신의주로 이어지는 첨단 산업단지의 육성으로 중국, 아세안, 인도를 향한 웅대한 경제전략을 완성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지역 경제사업도 언급했다.



#개인적 소회

한국 정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자명하다. 지난해 줄기자체 달려왔던 한반도 비핵화 국면은 일단 멈춰섰다. 북중러-한미일 구도가 고착되는 가운데 일본과 수출 전쟁을 벌이게 됐다. 미국은 방위비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고, 러시아 혹은 중국과의 관계도 녹록치 않다. 일자리 지표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 등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반발과 함께 곧 있을 총선 국면으로 청와대에 대한 집중도가 더 떨어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집권 3년차 정국 돌파의 해법으로 경제, 남북 협력 경제를 언급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대통령이 지난해 경축사에서 언급한 북한과의 협력은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난국을 타개할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된 나라(one korea) 건설이라는 비전에 있어 자신이 거름을 다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참모들과 함꼐 수많은 밤을 세워가며 썼던 이 비전들이 실체화 될 수 있을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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