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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9. 2019

연애와 결혼, 그리고 억압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와 비슷하다. 영화는 솔로들을 한 호텔에 가둬놓는다. 45일 안에 커플이 되지 않으면 동물이 된다. 이를 피하려고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상대방과 궁합이 잘 맞는 이상형처럼 연기한다.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남자는 고의로 머리를 부딪힌다. 


극단과 과장이 가미됐다 해도 우리네 사는 바와 비슷하다. 결혼 적령기를 맞아 가족의 걱정과 뒤틀린 사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스펙과 조건이 어느정도 맞으면 언약을 해버리지 않나. 사실 이걸 비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순수한 만남인 척은 하면 안되지 않나. 서로가 다른 건 특별하고, 비슷하면 축복이라며 어떻게든 우리는 인연이라는 논리가 왜 이리 작위적인지..


우선 나이를 물어본 뒤 결혼했어요? 연애는 하세요? 이후 곧바로 "눈이 높으신가"로 끝나는 폭력과 무례가 결국 "당신은 얼마나 잘 사냐"로 귀결되게 되는 것이다. 늦게 결혼하면 애 키우는 게 힘들다는 설명은 얄팍하다. 조혼 가정 아이들은 과연 모두가 훌륭하게 자라났는가. 일생에서 육아의 경험은 소중하지만 내 새끼만 옳다는 일부 몰지각한 부모를 보면 나중에 나도 저리 될까 무섭다. 


서로가 좋아서 낳았으면서 노키즈존을 들어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것도 웃기다. 애 키우기 힘든 사회는 분명 변화해야 하지만 좀더 편하고 쾌적하게 음식점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나의 권리도 중요한 것이니까. 우리 애가 나중에 당신의 연금을 낸다하면 나는 지금 내 세금으로 당신 자녀의 교육비를 내고 있다고 응수하면 된다.  


둘 중 하나가 바람을 폈든, 섹스리스든, 권태기가 왔든, 파탄이 난 가정과 관계를 자녀의 미래 혹은 자신들의 사회적 평판 때문에 꾸역꾸역 유지하는 커플과 부부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그게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할말은 없다. 다만 이들은 본인들의 공허함을 감추기 위해 별로 관심도 없는 주변 사람에게 연애와 결혼의 필요성을 필요 이상으로 설파한다. 


삶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을 터인데 이를 특정 분야에서만 찾아왔던 눈먼 세대가 안타깝다. 어차피 다 행복하자고 사는 건데 부디 안타깝고 재미없는 자신의 사막같은 삶에 먼저 눈을 돌렸으면 싶다. 딱히 친하지도 않는 이가 귀엽지? 너도 빨리 애낳으라 하며 애기 사진을 도배할 때마다 차단 욕구가 드는 걸 간신히 참는다. 그냥 영혼 1도 없이 '너무 예쁘다. 인형같다. 천사같다' 하면 되는데 하나도 천사같지 않은데 거짓말 하기가 괴롭다. 특히 이 연애와 결혼, 전형적인 루트를 강요하는 건 한국사회가 유별난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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