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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9. 2019

이 시대에 '신문기자'로 사는 법

영화 '신문기자' 감상기 


기자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소설은 빠짐없이 보는 편인데 최근 또 하나의 언론관련 영화가 개봉했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기자 중에서도 신문기자를 다뤘다는 점이다. '요새 누가 신문을 봐'라는 말이 횡행하는 이때, 디지털과 4차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지금 고리타분한 신문기자를 다룬 영화가 고맙고, 소중하다.


영화 신문기자는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소설은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모치즈키 이소코라는 도쿄신문 기자가 썼다. 영화는 현실과 닮은 내용이 많다. 아베 정권의 학원 스캔들, 총리와 친한 전직 기자의 성폭행 논란 등을 다뤘다. 

     

2017년 가케(加計)학원은 소속 대학교에 수의학부를 만드는 것을 정부로부터 허가받고 지난해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 수의학부 신설 허가가 난 것은 52년만이었다. 가케학원 이사장과 아베 총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의혹이 커졌다고 한다. 특혜 논란이 일었다. 당시 모치즈키 기자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기자회견 때 관련한 질문을 던졌고, 부실한 답변이 돌아오자 23번이나 관련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정부의 눈 밖에 났고 정부 측은 '사실 오인으로 인한 질문을 거듭해 기자회견의 의미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공유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항의문을 기자단에 전달했다고 한다.


영화에는 성폭행 사건을 감추려는 정권의 모습도 나온다. 2017년 일본에서 논란이 됐던 사건이다.


기자를 꿈꾸던 여성 시오리(28)는 2015년 3월쯤 일본 민영방송 TBS 워싱턴 지국장 출신 언론인 야마구치 노리유키(51)에게 취업 상담을 했다. 기자가 되는 법을 물었다. 야마구치는 같이 식사를 하자고 꼬드겼고, 그해 4월 3일 오후 8시쯤 한 꼬치집에서 만났다. 함께 술을 마시다 2차로 초밥 전문점을 찾았다. 오후 9시20분쯤 시오리는 갑자기 기억을 잃었다. 술을 잘 마시는 그녀는 의외였다고 했다. 정신을 차린 건 4일 오전 5시쯤 근방의 한 호텔에서였다. 그녀는 고통으로 눈을 떴고, 야마구치에게 강간당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술에 몰래 약을 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택시 기사와 호텔 벨보이의 증언, 호텔 폐쇄회로TV(CCTV), 속옷에서 채취된 DNA 등 관련 증거가 모아진 끝에 야마구치는 2015년 8월 26일 불구속 입건됐다. 그러나 2016년 7월 22일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시오리는 “말도 안된다”며 불복 신청을 했고, 결국 2017년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했다. 남 앞에 나서기 꺼리는 일본인의 특성을 고려하면 큰 용기를 냈다.


문제는 정권의 개입여부였다. 야마구치는 지난해 TBS를 퇴사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TV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국정운영 내막을 담은 저서 '총리'를 지난해 발간하며 아베 총리와도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TV에서도 아베를 옹호하는 발언을 여러 번 했다. 시오리는 불기소 처분이 나오기까지 정권의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법률과 수사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이 범죄를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일갈했다. 영화는 관련 일화를 조명하며 총리 산하 내각정보조사실이 피해자를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여성'으로 만드는 과정도 보여준다. 


실제로 일본사회는 우경화하고 있다. 일본 언론도 총리 내각에 유리한 기사를 많이 쓰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올해 4월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일본은 67위를 기록했다. 아베 정권 2차집권 이전(2011년 32위)에 비하면 큰 폭으로 추락한 것이다. 


정부 비판적인 영화 '신문기자'도 제작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반정부 이미지가 붙는 것을 꺼려해 출연을 고사했고, 결국 한국배우 심은경 씨가 주인공을 맡았다. 우익 신문들은 영화 개봉 소식을 아예 전하지 않았지만 트위터를 중심으로 영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가도를 밟고 있다고 한다. 21세기에 정부가 철저히 언론과 미디어를 통제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다른 관객들은 지루해하며 코를 고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매우 집중해서 봤다. 이런 포인트가 있었다. 정부의 부당한 지시를 견디지 못한 공무원이 자살했다. 기자들이 장례식장에 몰렸고 공무원의 딸에게 "기분이 어떻니"라고 묻는 모습. 세월호 시절이 오버랩됐다. 젊은 기자들은 윗선의 지시에 따라 유족들에게 붙었고 사연과 기분을 물었다. 기레기 다운 모습이지만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고로 죽은 자식들을 마음에 품은 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짓이었지만 우리의 일이기도 했다. 정부 근처에서 뻗치기를 하다가 관료의 출근길에 따라 붙어 질문을 하는 일본 언론의 풍경도 생소했다.


또 하나의 관점은 정보를 독점한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다. 영화는 사실을 보도한 언론을 향해 진실을 은폐하고 오보로 몰아가는 정부의 모습이 나온다. 국가 유지를 위해 보안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진실조차 둔갑하는 정부의 대응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한 청와대 직원이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회의에서 아침자 조간 보도가 보고되면 '그럼 이제 오보로 만들어야겠네'라는 반응이 많다"고. 정부가 어떤 정책을 검토한다고 보도가 나면 아예 좌초시키거나 하는 식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보도가 나가면 "사실이 아니다"라고만 한다. 어떤 부분이 사실이 아니고,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기자는 철저히 '을'이다. 정보를 가지고 있기 않기에 최대한 취재한 부분을 가지고 기사를 쓰지만 100%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청와대와 같은 기관을 상대로는. 최선을 다해 발로 뛰지만 국정원이나 청와대를 상대로 100% 맞는 기사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아예 기사를 쓰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보'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기자가 마지막 사실확인을 위해 전화를 하면 온 정부가 "어떤 기자가 어떤 기사를 내보낸다"고 공유하며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도. 참 어려운 싸움이다.



기자와 제보자의 관계도 눈길이 갔다. 정부를 공격하는 큰 기사를 쓰려면 제보가 필수다. 다만 기사가 나갈경우 정부는 제보자를 색출하고, 그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높다. 제보자가 나라를 위해 희생을 감수할 지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사안을 보도할 경우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큰 결심을 한 취재원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기사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옛날 생각도 나면서 영화를 참 재미있게 봤다. 투덜대면서도 후배가 물어온 기사를 꼼꼼히 첨삭해주고, 생각해주는 선배 데스크와 기자의 모습. 맘속으로 응원하며 동료를 위해 자료를 뽑아주는 동료 기자의 자상함. 집에 가서도 기사를 생각하는 젊고 당당한 젊은 기자의 패기. 또 조직의 부당함을 인지하고 열심히 발로뛰는 젊은 기자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젊은 공무원. 남편의 아픔을 딛고 남편이 맘속에 품은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료를 건네주는 일반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악몽같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협업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기사가 나가기 전날 미리 인쇄된 지면본(우리는 '대장'이라고 한다)을 후배에게 건네주는 선배의 모습. 그리고 다음날 윤전기를 통해 뽑힌 신문들이 조용히 각 지역에 배달되는 장면이 있다. 1면 탑에 실린 특종은 그렇게 기자의 손끝에서 데스크의 첨삭을 거쳐 온 국민에게 전달된다. 그 엄숙한 의식과도 같은 장면을 조용히 따라가는 카메라 워크가 좋았다. 굳이 매체로 나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송기자와 인터넷기자도 각자의 전달 루트를 통해 열심히 발로 뛴다. 다만 영화를 내 첫 기사가 신문에 실린 그날의 감격과 부담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신문을 비롯한 구 매체의 힘이 세고 기자수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일본과는 비교가 좀 어렵겠지만.. 다만 아무리 세상의 변화가 빠르고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고, 활자매체가 망해간다해도 나는 신문기자를 계속 할 것 같다. 이런 고리타분한 작업과 정성이 그래도 우리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7년차, 좀더 좋은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 더 숙고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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