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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9. 2019

한국 언론이 '보스턴글로브'가 되려면

영화 스포트라이트 감상기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뒤늦게 봤다. 피곤한 상태였는데 엄청 집중해서 봤다. 소설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을 때와 비슷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자 관련 소설·영화·드라마 플롯은 사실 빤하다. 참기자 한명 혹은 여럿이 등장한다. 권력의 쉴새없는 압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발로 뛰어 세상을 바꿀 특종을 한다. 현실의 유혹은 끊임없이 그를 옥죄지만 뿌리치고 대의를 향해 전진한다... 아 아름답고 숭고하다! 항상 이런류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묘한 열등감과 죄책감에 일부러라도 피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현실과의 비교가 이어졌다. 햇병아리가 왈가왈부하기 민망하지만 그래도 젊고 어리니까 이런 얘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①우선 한국 언론에 스포트라이트 팀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것. 영화 속 팀은 우리네 언론으로 치환해보면 특별기획팀(주말기획팀 말고) 정도 될 거 같다. 큰 그림을 보고 오랜 시간을 들여 큰 건 하나를 뽑아내는, 언론사 내에서도 독립적인 구조다. 다른 팀과도 뭘 취재하고 있다는 얘기를 안 할 정도니까. 장관 청문회 등을 앞두고 잠시 꾸려지는 검증팀과는 달리 상시 운영되는 조직이다. 이런 팀을 두고 있는 회사가 거의 없는 걸로 안다. 인력 부족 보다도 아마 성과 혹은 수익 문제가 아닐까 싶다. 기자 몇 명을 팀에 보내놨는데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는다. 아니, 몇 달간 헛수고를 할 수도 있다. 안 봐도 비디오인게, 다른 팀에서 “아니 저 특기팀 도대체 뭐하냐. 놀고 먹는거 아니냐”라고 할 거고 큰 사건 터질 때마다 또 팔려 갈 거다. 당장 주말 기획 막을 사람도 부족한데 몇 달간 하나만 파라고? 어림없는 소리라는 말이 나올 거다. 그러면 자연스레 세상을 바꿀 뉴스도 안 나온다. 데일리 뉴스 쓰면서 같이하는 대형 기획의 질과 비교하면 답이 나올 듯.


②아이템 선정의 문제. 기자들은 매일매일 아침 보고를 한다. 오늘 내가 무슨 기사를 쓸 것인지, 집회나 시위․중요 기자회견이나 판결은 뭐가 있는지를 적어서 알리는 거다. 팀장이 받아서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순으로 올린다. 이후 윗선(데스크)에서 아이템을 취합해서 기사로 쓰게 한다. 주니어의 눈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안이 갑자기 커지는 경우도 왕왕있다. 경험과 연륜의 차이다.

보스턴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이 ‘카톨릭 계에 만연한 아동 성추행’ 취재를 시작한 경위는 정반대였다. 국장이 지시한 기사다. 중요한 건 자신의 Private한 경험이나 필요에 의한 게 아니고,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사회에 숨겨져 있는 만행을 고발하라는 차원의 하향식 지시였다는 거다. 내가 누구 교수랑 친하니까 가서 인터뷰해라, 얼마짜리 광고를 준 회사니까 좀 좋게 써줘 이런 식이 아니었다. 널려있는 잡기 중에 어떤 게 문제인지 고르는 작업을 경험 있는 기자가 날카롭게 캐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개인보다 시스템에 집중하자는 국장의 얘기였다. 개인을 지적하면 꼬리자르기와 함께 한순간의 헤프닝에 그치지만 시스템에 주목하면 사회 구조를 바꿀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연히 몇 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증거를 확보해야 할 거다. 다 잡은 특종을 타사에 놓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뒤로한 채 이러한 거시적 청사진을 그리는 회사 윗선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③의욕의 문제. 쉬는 날에도 회사에 나오고, 퇴근 후에도 전화 돌리고… 영화가 좀 오버한 부분이 있겠지만 내가 저 팀에 있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다. 사안 자체가 크고, 문제가 됐고,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기자들의 자부심이 영화 내내 느껴졌다.

무엇보다 역할 분배가 충실했다. 기획 내내 조언을 구할 취재원, 구체적 케이스를 소개할 취재원 등을 나눠 각개격파 한다. 연차가 높은 팀장은 골프를 치든, 고급 술집에서 고급 취재원을 만나든 다양한 방법으로 고공 취재를 한다. 다음 연차의 기자(차장쯤 될 듯)는 정교한 문서취재를 한다. 서고를 뒤지고 자료를 찾으며 취재원을 좁힌다. 그 밑의 기자가 중요 취재원을 직접 만나고 마지막 기자는 피해자들 취재를 맡는다. 노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매일 만나서 회의하고 그날의 성과를 정리하고 내일 누구를 맡을지 다시 고민한다. 팀 플레이는 이렇게 하는 거다. 한밤중에도 신나서 팀장에게 전화하고, 팀장은 격려하고 추가 지시하고… 이렇게 ‘옳은’ 방향의 기사를 작성하고, 팀 전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돈 따위 더 받지 않고도 추가 노동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윗선, 그러니까 사장과 회장 혹은 편집국장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할 거 같다. 이거 욕먹을 텐데, 우리 독자들이 항의 할 텐데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지금같이 모든 언론이 죽어간다고 하고 기레기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점에 너무 이상적인 얘기일지는 몰라도.


④처음 입사했을 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퇴근 시간도 따로 없고 잦은 술자리에 매일의 일과가 불확실했다.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마다 불안하다. 지금도 그렇다. 큰 일이 터지면 어딘가로 또 가야하기 때문이다. 선배는 무섭고, 내가 잘 하고 있는지도 갈피는 안 잡히고… 답답한 나날이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연봉과 성과급 이야기를 종종 접하면서 가끔은 내가 왜 이 직업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세월호 당시 한 유가족에게 맞을 뻔 했던 기억, 별거 아닌 기사로 협박전화를 받을 때, 지인의 얘기를 듣고 기사를 썼는데 제보자로 색출된 지인이 회사나 기관에서 짤릴 뻔 했던 경험들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은 건 영화 속 그런 보람들 때문 아니었을까. 스포트라이트 팀처럼 이렇게 큰 건을 쓴 적도 없고 앞으로 살면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사로 인해 조금이나마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허세와 자만심이 시궁창같은 내 생활을 지탱해주는 버팀목 아닐까 한다. 군대보다 심한 조직 문화 가운데도 내 기사로 위의 사람과 싸울 수 있다는 것도. ‘님’자 없이 부장, 국장 이라고 할 때마다 타 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놀람섞인 눈빛을 즐겼던 기억도 가끔 난다.


⑤위에 주저리 주저리 써놓은 건 어쩌면 핑계다. 나야말로 오글거리는 말도 자주하고, 허세 넘쳤던 언시생 때가 더 나은 인간이었던 거 같다. 얼마 전부터 ‘아랑’에 올라오는 글이나 갓 입사한 수습들이 내뱉은 포부, 예를 들면 ‘세상을 바꾸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하는 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현실을 잘 모르네’ ‘현실을 좀 알게 해줘야 겠다’ ‘애가 말만 잘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년의 경험이 준 또 다른 허세와 허무주의다. 요즘에는 그냥 내가 기사 쓰는 직장인 아닌가 하는 자위도 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살고 싶었던 내 마음만이라도 다시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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