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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25. 2019

동아일보 입사시험의 추억

수습 시절 강북의 한 경찰서 기자실에서 뻗어있다. 


이메일을 정리하다 2011년 동아일보에서 온 메일을 발견했다. 당시 나는 문화일보와 동아일보 입사 최종 면접에서 연달아 떨어졌다. 길게는 3달간 이어진 시험 과정에서 멘탈이 흔들리던 차였는데 결과를 받고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온종일 누워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역량강화팀장은 '30명의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라는 메일을 보냈다. '탈락자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서 일을 할수 없었다. 건승을 빈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누굴 가지고 노나' 했는데 지금 보니 퍽 진심이 담겨 보였다. 실력이 부족한 내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나 싶다.


동아일보 시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1500명 넘게 지원했고 서류와 필기, 1차면접을 거쳐 30명을 추렸다. 이후 5일간의 실무평가와 최종면접을 거쳐 7명의 신입 기자가 선발됐다. 나는 떨어진 23명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필기 논술 주제는 '소설가 공지영에 대해 논하라' 였다. 조지 오웰의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쓸 때에는 한결같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는 구절로 시작해 공지영을 옹호했다. 작문 주제는 '섬'이었다. 나폴레옹의 '세인트헬레나' 부터 가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까지 인용하며 외로움에 대해 썼다. 나 스스로는 동아와 논조가 맞지 않고, 작문도 좀 인위적이라 떨어질줄 알았으나 다행히 붙었다. 1차 면접에는 그 유명하신 김모 논설위원이 들어왔다. 참다참다가 "직접 뵈니 너무나 부드러우시네요"라고 드립을 날렸는데 분위기가 싸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면접도 통과했다.  


하이라이트는 5일간의 실무평가다. 탈북자를 초청해 집단인터뷰를 하고, 영어로 된 영상을 보고 기사를 쓰고, 통계자료를 보고 기사를 쓰고, 새벽 3시에 문자로 전송된 주제를 보고 르포 기사를 썼다. '강남스타일의 새벽'이라는 문자를 보고 가락시장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서 탔다. 뭘 쓸까 생각이 안나서 시장 안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는데 긴장돼서 손이 떨렸다. 폐지 줍는 사람들로 야마를 정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뻔했던 것 같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을 인터뷰하라'는 지시도 있었는데 누굴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심층면접에서 한 선배는 "박세환 씨는 우리 회사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척을 해요. 같이 일하기 피곤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간게 죄냐"고 말을 못하고 면접장을 나와서 현직 동아일보 선배한테 전화했다. 주차장을 서성대면서 한없이 울었는데 그 선배는 참 친절하게 받아주셨다. 세월이 지나 기자가 된뒤 심층면접에 들어왔던 선배한테 "이런 얘기 하셨었어요"하자 민망해 했다. 면접장 의자 밑에는 크리넥스 휴지가 있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많이들 울었다고 했다.


동아일보 인턴 필기시험 글이 동아일보 블로그에 게재돼 있다


나는 아직도 언론고시생 시절이 그립다. 오만과 치기도 많았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가끔 힘들고 지치고 욕도 먹고 협박도 당하지만 기자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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